빈자리가 허전해서 돌아보니 어제는 제법 모여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 나가는 느낌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간이역을 무 정차로 지나가는 덩치 큰 기차만큼이나
세월은 무서웠고 두려웠다,
붉은 꽃이 누렇게 질려 멍이 들고 버티다 더는 못 버티고
그냥 주저앉는다,
저 가여운 여정 그걸 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눈물겹도록 매달리고 싶지만 용납되지가 않는 고집이다,
집착도 무관심도 저들의 사전에는 이해를 구할 수가 없다,
얼룩진 소매에 덕지덕지 묻은 세월의 때가 아플 만큼 지쳐 있다,
창오지를 문풍지로 바른 빈틈은 큰 바람은 걸려도 작은
바람은 걸림 없이 오간다,
그런데 그 작은 바람이 더 시리다,
바늘로 손끝을 찌르듯이 차갑다,
그럼에도 큰 것에는 대범하게 맞선다,
허리에는 큰 칼을 차고 잔뜩 몸을 부풀리고 본능적 방어일까,
아니면 의도된 발악일까,
기차가 지나간 레일은 그저 조용하다,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우성이 잠시 멈춘 것처럼,
하지만 세상의 침묵을 깨는 건 큰 것도 아닌 아주 작은 소리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조용해서 숨 쉬는 소리만 없으면 정체된 공간 같다,
양파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파헤쳐 내다보면 마지막은
기대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있을까 하는 기대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삶은 매일같이 반복의 날을 산다, 그날이 그날 같은,
한시도 쉬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파도처럼
삶은 본능인가 무의식인가,
즐거운 시간 보다 참아내는 시간이 더 많고 모으는 것보다
새 나가는 게 더 많지만 그것마저 아주 익숙해서 느낌조차
무시하고 산다,
그러면서도 신경은 날카롭고 아주 예민하다,
마치 싸움 닭처럼 공중에 맴도는 솔개를 경계하듯,
내일을 위해 맨 앞에 서가는 첨병처럼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산다,
빈자리가 허전해서 돌아보니 어제는 제법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