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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하나님 나라 논쟁
마태복음 12:1-50(신p.18) 찬송 288장 / 사도신경 / 찬송 303장 20241003
오늘도 마태복음 12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2장 말씀에는 예수님과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간의 논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논쟁의 핵심은 안식일 논쟁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논쟁입니다.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정리해서 하나씩 단계적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시고, 표적과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시고, 또 체험하게 하시고,
어제 마태복음 11장 말씀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마태복음 12장 말씀에는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논쟁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인들이지만 하나님의 일꾼들이 아니라 사탄의 일꾼들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읽어 보면 당신의 영적인 분위기를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는 먼저 “안식일 논쟁”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당시에 영적인 분위기는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적인 종교의식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지적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게 되고 또 이 말씀을 가지고 서로를 정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2:1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고치는 사역을 하면서 이 동네 저 동네 바쁘게 다니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허기를 면하기 위해 밀밭 사이를 지날 때, 밀 이삭을 비벼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율법을 가르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을 범하느냐? 하면서 비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2절 말씀에 보시면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율법을 어겼다”라고 지적을 합니다.
여러분 이 제자들이 곡식을 잘라 먹었기 때문에 곡식을 타작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안식일을 범하면, 십계명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에 투석형, 돌로 쳐죽일 만큼 무서운 죄가 됩니다.
사실 율법이라는 것은 잘 못된 것을 바로 잡고, 또 죄를 짓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준 것인데, 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대한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율법이라는 칼을 들고 사람들을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의 의미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안식일은 일주일 중에 하루를 쉬게 함으로 창조의 원리를 따라 하루를 쉬면서 생명이 회복이 되고, 또 그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예배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이고, 생명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섬기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약에 있었던 두가지 사건을 통해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3절 말씀에 보시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제사장의 떡, 진설병을 얻어먹은 사건을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다윗도 배가 고플 때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먹게 하셨다! 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성막에 드려지는 진설병이라는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먹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배가 고파서 제사장의 떡을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면서 그 떡을 다윗에게 주어 먹게 허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법이 생명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다가 안식일에 양식을 먹은 것을 법을 어겼다고 죽여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5절 말씀에 보시면
안식일의 번제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나무를 쪼개고 불을 피워서 번제를 드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백성들을 위해 속죄 함으로 이 백성들이 복을 받기 위한 그런 번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은 일이 아니고, 백성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6절 말씀에 보시면, 성전보다 더 큰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 예수님을 섬기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배가 고파 밀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자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위한 당연한 수고이기 때문에 말씀의 원리를 알면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7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을 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호세아 6:6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인 번제나 드리고 제물만 바쳤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사랑은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니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지금 이 바리새인들도 똑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라고 준 율법을 가지고 제자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2:27절 말씀에 보시면, 이 사건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2:27절 말씀에 보시면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주신 것이지, 사람을 죽이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이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안식일을 만들었는데,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안식을 제대로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 말씀부터 예수님께서 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10절 말씀에 보시면 “안식일에 회당에서 보란 듯이 손 마른 사람, 환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그때 여전히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고발을 합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고발을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11절 말씀에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도 마가복음 3:4절 말씀에 보시면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 즉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안식일의 의미를 설명할 때 늘 설명하는 것이 “앰블런스”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러분 도로에서는 법을 지켜야 하고 신호를 지켜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이 앰블런스는 다릅니다. 만약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이 앰브런스를 타고 간다면 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통순경이 앰블런스가 신호를 어겼다고 붙잡는다면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든지,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니 너희들은 돌에 맞아 죽어야 된다! 라고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악함을 드러내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라고 안식일 법을 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이 법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안식일의 문제가 오늘 우리의 주일성수의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문제를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안식일처럼 주일도 하루를 구별해서 세상의 일을 쉬면서 영육이 회복되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잘 못된 죄를 회개하고, 마음이 정결하게 되고, 또 육신의 안식을 통해 건강도 회복되고, 또 말씀을 배우며 믿음으로 결단하게 될 때 일주일 동안 또 기업의 복을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육이 회복된 사람들이 예배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불쌍히 여기고 그 영혼이 진정한 회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믿음을 가지도록 격려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예배에 빠졌다고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죄를 짓는 것이라고”정죄를 한다면,
여러분 그것은 안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의를 드려내려고 하는 교만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이 안식일의 의미와 주일의 의미를 여러분 잘 깨달으셔서 매 주일마다 안식을 누리고 또 회복을 경험하고 또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이런 믿음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 논쟁은 하나님 나라의 논쟁입니다.
여러분 22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는 사역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악한 귀신이 마음의 지배함으로 눈도 가리고 귀도 막아서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 보던 바리새인들이 이 예수님의 사역을 귀신의 사역이라고 비난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24절 말씀에 보시면“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원리도 잘 모르면서 나타나는 현상만보고,
예수님께서 귀신들의 왕인 “바알세불”의 종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로 말하면 무당처럼 일하는 거 아니냐? 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 바알이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이고 “세불”이라는 말은 “똥,오물” 이라는 말입니다. “오물의 주인”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사탙을 조롱하기 위해 부르던 이름입니다. 귀신들의 왕 사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여러분 26절 말씀에 보시면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27절 말씀에도 보시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너희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는데 너희 제자들도 그러면 귀신의 힘을 빌어 쫓아내는 것이냐? 아니지 않느냐? 그렇다면 너희의 제자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을 설명을 합니다.
나는 귀신의 힘을 빌어 쫓아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28절 말씀에 보시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귀신들이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귀신이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을 때는 그 마음이 귀신의 영역이지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이 귀신을 쫓아내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귀신들 때문에 생긴 병도 낫고, 눈도 보게 되고, 귀도 들리게 되는 이런 표적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귀신들이 그 귀신을 쫓아 내고 더 센 귀신이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더 악하게 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죄의 문제, 귀신의 문제, 고통의 문제, 질병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강한 자가 강한 자를 결박한 것이다”라고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29절 말씀을 보시면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20:2절에 천년왕국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됨).
여러분 예수님은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할 수 있는 분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탄은 마지막 종말 때 “영원한 불 못,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이 될 때까지“결박해서 하나님 나라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사탄과 귀신들을 심판하실 수 있지만 종말 때까지 그냥 내버려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탄과 귀신을 통해서 믿지 않는 자들을 가려 내는 도구로 쓰시려고 종말까지 그냥 남겨 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탄도 마지막 종말에는 멸망 당할 것을 알지만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을 유혹해서 같이 망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유일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땅에 있는 동안 온갖“즐거움과 쾌락과 재물과 음란으로 유혹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강한 자들은 돈과 권력으로 유혹하고, 또 약한 자들은 귀신을 보내 더럽고 추한사람으로 그냥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무 심하게 사람을 괴롭히거나 악하게 하면 결박해서 그냥 구덩이에 던져 버리십니다.
여러분 이게 예수님의 사역이고, 성령의 사역이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귀신이 쫓겨나도,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않고 그냥 비워두면 또 귀신들이 들어와 더 괴롭힐 수 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2:44절-45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여기는 떨어져서 기록이 되어 있지만, 누가복음 11:26절에는 연결되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사역은 “귀신의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이고, 사람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역”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또 대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사탄의 일꾼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 12:30절 말씀에 보시면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말씀하시고, “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4절 말씀에 보시면
“독사의 자식들아, 뱀의 자식,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도리어 반대하는 것은 “사탄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사탄의 말과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마음에 쌓은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36절-37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이 땅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가족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것은,
46절-50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누가 하나님의 자녀들인가?”하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칠 때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누가 내 가족이냐?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50절 말씀을 보시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때 말씀을 가지고 정죄하고,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대적하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의 사역자들과 직분자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사람이라도 세상의 관점으로 성경을 본 사람들은 말씀을 가지고 정죄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뻐하는 교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예수님의 논쟁을 잘 보시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깨달으시고, 내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복이 임함으로, 가정이 회복되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와 가정을 세워나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 이 나라와 민족이 평안을 누리고, 섬기는 교회의 교역자와 직분자들을 위해서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서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