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패비휴(顚沛匪虧)
엎드려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아주 급한 때라도 꿋꿋이 선비는 체모를 지켜야 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顚 : 엎드러질 전(頁/10)
沛 : 자빠질 패(氵/4)
匪 : 아닐 비(匚/8)
虧 : 이지러질 휴( 虍/11)
출전 : 천자문(千字文)
엎어지고 자빠지는 걸 전패(顚沛)라고도 하는데, 논어 이인(里仁)편에 이 말이 나온다.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군자는 밥 먹기를 끝내는 동안에도 인자함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니, 아주 급한 때라도 꿋꿋이 인자해야 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더라도 또한 그래야 한다.
이 문장을 이용한 게 천자문(千字文)의 ‘절의염퇴 전패비휴(節義廉退 顚沛匪虧)’다.
‘節義’는 절개와 의리이다. ‘廉退’는 청렴하게 생활하고 물러날 때가 되면 과감히 물러나는 일이다. 즉, 뜻이 있는 선비는 절개를 지키고 의리를 좇으며 청렴결백하여 이익을 멀리하고 물러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이지, 엎어지고 자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 다음은 김기의 절의염퇴(節義廉退)는 전패불휴(顚沛匪虧)하라는 글이다.
절개와 의리와 염치와 겸손함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지러뜨리지 말아야 한다.
절의염퇴(節義廉退)는 전패불휴(顚沛匪虧)하라는, 이말은 “절개와 의리와 염치와 겸손함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지러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욕심은 생명의 빛을 막고 부패의 습기를 부른다. 그래서 욕심에 찬 이들은 잠시의 영화를 탐하여 악취 풍기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세상도 썩게 만든다. 욕심이 없으면 신성한 빛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절의와 염치와 겸양의 미덕이 가득 생겨 늘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다. 부패한 삶보다는 당당하고 생기 넘치는 삶이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지금 부귀의 언저리에서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 죽을 때까지 어슬렁거리는 이들은 절의염퇴를 숭상하던 옛 사람들의 눈에는 필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리라.
⏹ 다음은 임철순의 전패불휴(顚沛匪虧)의 글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늘어나고 괴담이 번지면서 공포와 불편이 커지는데도 정부의 대처는 우왕좌왕 허둥지둥이었다. 전돈낭패(顚頓狼狽), 엎어지고 자빠지며 갈팡질팡하는 형국이었다.
전(顚)은 엎어지는 것, 돈(頓)은 자빠지는 것이다. 낭패(狼狽)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고 성질이 흉포하지만 꾀가 부족하다.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고 순하며 꾀가 많다. 걸을 때면 패가 주도해야 하는데, 서로 고집을 피울 경우 움직이지 못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목은 이색은 48행이나 되는 시 자송사(自訟辭)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汝之軀矮而陋兮
人視之若將仆也
視旣短而聽又瑩兮
中人聲而左右顧也
네 몸 왜소하고 못생겼음이여, 남 보기에 곧 넘어질 것 같으리. 보는 게 짧은 데다 듣는 것도 어두워, 남의 소리 들으려면 좌우를 돌아보네.
惟吾之顚頓狼狽兮
莫知主善之克一也
夫惟一之罔知協兮
禽獸之歸而何擇
중간 부분에 오직 나만 전도낭패함이여, 선을 주로 삼는 순일함을 몰랐어라. 오직 순일함에 합할 줄 모름이여, 저 금수의 무리와 무엇이 다르랴”라고 했다.
자세히 읽어보면 자부심의 표현이다.
▶️ 顚(엎드러질 전/이마 전)은 형성문자로 顛(전)의 본자(本字), 颠(전)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眞(진, 전)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顚(전)은 ①엎드러지다 ②뒤집히다 ③거꾸로 하다 ④미혹(迷惑)하다 ⑤넘어지다 ⑥미치다(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닿다 ⑦차다 ⑧채우다 ⑨머리 ⑩이마(앞머리) ⑪정수리(머리의 최상부) ⑫꼭대기 ⑬근본(根本) ⑭근심하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넘어질 도(倒), 정수리 정(頂)이다. 용례로는 엎어져서 넘어짐으로 위와 아래를 바꾸어서 거꾸로 함을 전도(顚倒),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전말(顚末), 뒤집혀 엎어짐 또는 뒤집어 엎음을 전복(顚覆),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을 전패(顚沛), 굴러 떨어짐을 전추(顚墜), 넘어져서 구름을 전락(顚落), 하는 짓이 사리에 어긋나고 망령됨을 전망(顚妄), 나무가 쓰러지고 뽑힘을 전발(顚拔), 몹시 지쳐서 쓰러지고 병이 듦을 전췌(顚瘁), 그리던 사람을 만나서 엎어질 듯이 기뻐함을 전희(顚喜), 몹시 가난하여 어찌할 수가 없음을 전련(顚連), 앞뒤를 바뀌 어그러 뜨림을 전착(顚錯), 굴러 넘어짐이나 일이 어긋나서 실패함을 전질(顚跌), 엎어져서 넘어짐을 도전(倒顚), 진저리를 친다는 말을 기전(氣顚),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서 정신이 없음을 주전(酒顚), 엎드려 넘어짐을 부전(仆顚), 일의 순서가 뒤바뀌고 이치에 어그러짐을 이르는 말을 전도괴천(顚倒乖舛), 엎드려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전패비휴(顚沛匪虧), 왼쪽으로 넘어지고 오른쪽으로 거꾸러짐을 좌전우도(左顚右倒),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하여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섬을 이르는 말을 칠전팔기(七顚八起), 주인은 손님처럼 손님은 주인처럼 행동을 바꾸어 한다는 것으로 입장이 뒤바뀐 것을 이르는 말을 주객전도(主客顚倒), 관과 신발을 놓는 장소를 바꾼다는 뜻으로 상하의 순서가 거꾸로 됨을 두고 이르는 말을 관리전도(冠履顚倒),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뜻으로 마음에 맺히고 근심이 되어 마음 놓고 편히 죽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사부전목(死不顚目), 열 번 엎어지고 아홉 번 거꾸러진다는 뜻으로 숱한 괴로움을 겪음을 이르는 말을 십전구도(十顚九倒) 등에 쓰인다.
▶️ 沛(비 쏟아질 패/늪 패)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市(시, 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沛(패)는 ①(비가)쏟아지다 ②내리다, 내려 주다 ③물리치다, 배척(排斥)하다 ④넘어지다, 쓰러지다 ⑤늪, 습지 ⑥기(旗), 깃발 ⑦성대(盛大)한 모양, 왕성(旺盛)한 모양 ⑧성(盛)한 모양, 많은 모양 ⑨큰 모양 ⑩가는 모양 ⑪빠른 모양 ⑫몹시 성내는 모양 ⑬비오는 모양 ⑭흐르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비나 폭포 따위가 쏟아지는 모양이 매우 세참을 패연(沛然), 정성으로 말미암아 크게 감응함을 패응(沛應), 숲이 우거져 들짐승이 숨어 사는 곳을 패택(沛澤),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을 전패(顚沛), 엎드려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전패비휴(顚沛匪虧) 등에 쓰인다.
▶️ 匪(비적 비, 나눌 분)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튼입구 몸(匚; 그릇, 모진 상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非(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匪(비, 분)는 ①비적(匪賊: 떼지어 다니는 도적) ②대(나무) 상자(箱子) ③문채(文彩: 아름다운 광채) ④채색(彩色) ⑤아니다 ⑥문채(文彩)나다 ⑦담다 ⑧넣다, 그리고 ⓐ나누다(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무장을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살인이나 약탈을 일삼는 도둑을 비적(匪賊), 비적의 무리를 비도(匪徒), 비적의 우두머리를 비괴(匪魁),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음을 비거(匪據), 유배지를 이르는 말을 비소(匪所), 분수 밖의 것을 탐냄을 비여(匪茹), 절조가 굳은 것을 비석(匪石),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에 충성을 다함을 비궁(匪躬), 비적의 무리들이 일으킨 소요를 비요(匪擾), 비적을 토벌함을 초비(剿匪), 비적과 내통함을 통비(通匪), 오래 전하여 남아 있는 비석을 잔비(殘匪), 무장을 하고 폭동과 약탈을 일삼아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을 적비(賊匪),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이르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돌처럼 심지가 굳고 절조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비석지심(匪石之心), 성을 내지 않고 타이른다는 말을 비노이교(匪怒伊敎), 엎드려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전패비휴(顚沛匪虧) 등에 쓰인다.
▶️ 虧(이지러질 휴)는 형성문자로 亏(휴)는 간자(簡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雐(호, 휴)와 亐(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虧(휴)는 ①이지러지다(불쾌한 감정 따위로 얼굴이 일그러지다) ②부족하다, 모자라다 ③줄다, 기울다, 이울다 ④탄식하다(歎息) ⑤저버리다, 배신하다, 해 입히다 ⑥손해(損害) ⑦유감스럽게도 ⑧~이면서도 ⑨실례하지만, 무례(無禮)임을 알지만 ⑩다행(多幸)히, 덕분(德分)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지러질 결(缺), 이지러질 건(騫)이다. 용례로는 부족이나 손실을 휴손(虧損), 이지러진 달을 휴월(虧月), 일정한 수효에서 부족이 생김을 휴흠(虧欠), 부분 일식과 부분 월식이 일어나는 현상을 휴식(虧食), 마음이 상함을 휴정(虧情), 계산 따위가 줄어 없어짐을 휴공(虧空), 손해를 입음이나 이지러져 없어짐을 휴상(虧喪), 이지러져 없어짐을 휴실(虧失), 초목 따위가 무성하여 햇빛을 가리오 보이지 않음을 휴폐(虧蔽), 일식과 월식을 휴식(虧蝕), 이지러짐과 꽉 참 또는 모자람과 가득함을 휴영(虧盈), 손해를 입음을 끽휴(喫虧), 못 쓰게 되게 떨어지고 이지러짐을 폐휴(弊虧), 일식이나 월식에 해나 달이 가리어지기 시작하는 일을 초휴(初虧), 천체의 빛이 그 위치에 의하여 증감하는 현상을 영휴(盈虧), 쌓는 공도 한 삼태기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함을 이르는 말을 공휴일궤(功虧一簣), 한 삼태기의 흙을 쌓지 않고 그만두어 산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 거의 이루어진 일이 한 번의 실수로 허사가 됨을 이르는 말을 일궤지휴(一簣之虧), 달이 차면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만즉휴(月滿則虧), 꽉 차서 극에 달하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 짐을 영즉필휴(零則必虧), 엎드려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함을 전패비휴(顚沛匪虧)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