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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일본 가까이에는 중국과 국경을 접한 조선이라 불리는 왕국이 있는데 먼저 이 왕국을 무력으로 정복해 일본 제국에 예속시킨 뒤 중국을 정복하는 데 필요한 군수품과 식량을 조선 땅에서 보급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바대로) 일거양득일 것 --- pp.37~38
[조선] 사람들은 살갗이 희고 활기차며, 대식가이고 힘이 아주 좋다. --- p.46
[아고스티뉴의 장수 사쿠에몬이 도라노스케에게] 아고스티뉴 주군이 조선의 수많은 지역과 성을 점령하고 그토록 많은 적을 물리치는 동안 너희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도망자인 양 어디에서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느냐. --- p.65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건너가 있는 병사들이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히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무장은 격노와 분개, 말할 수 없는 초조감을 참으며 견디고 있었다. 이들은 그 낯선 왕국의 적들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번민과 비참함에 빠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말미암아 많은 병사가 병들어 그야말로 내버려진 상태로 죽어가고 있었다. 더욱이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불행한 처지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중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들은 마음이 무거워져 대부분은 불확실한 영광이나 승리 이전에 차라리 죽음을 원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조선 땅에서 죽더라도 자신의 유골이 아주 비참하게 끝이 날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백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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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루이스 프로이스는 1563년 일본에 도착한 이후 1597년 나가사키에서 사망할 때까지, 전국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몸소 경험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계획하고 치르는 전 과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극소수 이방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남긴 『일본사』는 16세기 후반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유럽인이 작성한 대표적인 필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사』에서 한국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임진왜란에 관한 기술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지막 열 개의 장이 이 부분에 해당한다. 프로이스는 일본군의 전쟁 준비를 비롯해, 부산에 도착하여 조선의 성을 하나하나 점령하기 시작해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성을 공격하는 상황, 명군의 도래와 강화 협상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의 중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동양 삼국의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이 서양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는지 이해하는 데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 또한 근대 초기 서양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를 연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전쟁 당사자인 일본군 내부의 사정을 서술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아고스티뉴(고니시 유키나가)와 도라노스케(가토 기요마사)의 경쟁 관계에 대한 서술에서는 가톨릭교도인 아고스티뉴를 지지하고 비가톨릭교도인 도라노스케를 노골적으로 비난[“사악한 이교도인 도라노스케”(64쪽), “교활하고 술수로 가득 찬 위선자 도라노스케”(69쪽)]하여 서술의 형평성을 잃기도 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점 지쳐가는 일본군의 물질적·심리적 상태에 대한 서술은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패배가 외부의 요인뿐 아니라 일본 내부 상황도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역자들은 프로이스가 포르투갈어로 작성한 『일본사』를 번역하기 위해 포르투갈 국립도서관에서 1976년부터 1984년까지 8년에 걸쳐 간행한 총 5권 중 임진왜란 부분에 해당하는 제5권의 마지막 10장을 기본 자료로 사용했다. 이 판본은 주제 위키 신부가 포르투갈의 국립도서관과 아주다 도서관, 해외역사고문서관 등에 부문별로 흩어져 보관돼 있는 필사본들을 최초로 종합 분석한 것으로, 같은 시기의 필사본이 두 개 이상 존재하는 경우 대조해 누락되거나 오역된 부분은 바로잡고 일본 측 사료도 참고한, 그야말로 프로이스 『일본사』의 완결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