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찜 먹어봤어요? 가오리는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라 전남지역에서 흔하게 해먹는 음식이에요. 그런데 충청도에 가오리찜이 내림음식인 종가가 있다고 하네요? 가오리 구하기도 힘든 지역일 텐데, 궁금하지 않아요? 어떻게 가오리를 먹게 됐는지?”
강레오 셰프가 말하는 곳은 충북 보은에 있는 보성 선씨 선영홍 종가다. 워낙에 100년 넘은 고택이 아름답고 장맛이 좋기로 유명한 종가인데, 내림음식 이야기도 풍성한 곳인가보다. 강 셰프를 따라 보은으로 향했다.
전라도식 가오리찜, 충청도식 대추죽
“저희 집 가오리찜이 궁금하시다고요? 맛보여드릴게요. 어서 들어오세요.”
섬돌을 내려서며 손을 맞이하는 이는 김정옥 종부(65)다. 종종걸음으로 부엌에 들어갔다 나온 종부의 손에는 잘 말린 가오리와 갖은 양념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다.
“가오리찜은 저희 집안에서 사시사철 흔하게 해먹던 음식이에요. 말린 가오리를 구해다가 꾸덕하게 쪄서 잘게 찢은 뒤 집간장·참기름·마늘·파·깨를 넣고 조물조물 버무리면 돼요.”
가오리는 말리면 감칠맛이 풍성해지고 식감은 쫄깃해져서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는 식재료다. 그래서 최소한의 양념으로 가오리 원래 맛을 살리는 것이 가오리찜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이라면 비법이라고.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맛은 간단하지 않아서 먹어본 사람은 다들 좋아한다고 종부는 덧붙인다.
“그런데 전라도 음식인 가오리찜이 어떻게 이곳 충청도에 있는 종가의 내림음식이 됐을까요?”
강 셰프의 질문에 종부가 웃으면서 답한다.
“저희 집안이 원래 전남 고흥에 있었거든요. 증조할아버지 때 명당을 골라서 여기 보은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때 장독에 든 장까지 다 싣고 옮겨왔는데, 이사 기간만 한달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고흥에서 터를 잡고 살던 집안이라 보은으로 이사를 온 뒤에도 전라도 음식을 흔하게 해 먹고 살았다는 설명이다. 여름에 해 먹는 민어나 전복장도 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음식이다.
“여름이면 작은댁에서 민어 말린 것을 가지고 오세요. 껍질은 벗겨서 쇠고기 넣고 돌돌 말아 쪄서 먹었어요. 부레는 미지근한 물에 불렸다가 쇠고기와 버섯으로 속을 채워서 순대를 만들고, 민어살은 쪄서 잘게 찢은 뒤에 집간장으로 양념해서 먹었지요. 전복장은 말린 전복을 불린 뒤에 간장 넣고 조렸어요. 요즘 같으면 장조림이랑 비슷하죠.”
물론 집안의 내림음식이 다 전라도식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 예로 충청도 음식이라 할 대추죽이 있다. 보은이 대추로 유명한 고장이어서인지 옛날부터 대추로 죽을 많이 쒀 먹었단다. 말린 대추를 푹 고아서 씨를 제거한 뒤 하룻밤 동안 불린 기장을 넣고 끓이면 대추죽이 완성된다. 계절에 따라 모과나 생강을 넣기도 하는데, 겨울이면 긴긴 밤 무료함을 달래주는 좋은 간식이었다고.
“다른 지역 며느리가 시집오면 그 지역 음식이 종가음식에 더해지는 것 같아요. 저희 시할머니는 서울 분이고 시증조할머니는 전라도 분이셨거든요. 게다가 지금 종가가 있는 곳은 충청도이니 자연히 우리 집안 음식에 여러 지역 색깔이 섞인 거죠. 전라도식 가오리찜에 충청도식 대추죽처럼요.”
좋은 재료, 기본에 충실한 조리법이 맛 결정
장맛 좋기로 유명한 종가이니 장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강 셰프가 나섰다.
“장이 많이 짜지 않고 군내도 나지 않고 정말 맛있는데요. 맨밥에 장만 넣고 비벼 먹어도 충분히 맛있어요. 비법을 좀 알려주세요.”
“비법은 없는데…. 장 담그는 법이야 다 같죠. 그래도 다른 점을 말하라면 저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메주를 많이 사용해요. 콩 80㎏ 한가마로 장을 담그면 간장이 20ℓ 정도밖에 안 나와요. 아마 다른 집의 절반도 안될 걸요.”
송홧가루가 날릴 때면 저녁마다 장독 뚜껑을 활짝 열어두는 것도 남다른 점이다. 아침이면 송홧가루가 뽀얗게 간장 위에 앉아 있곤 한다고. 간장을 따로 달이지 않아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 송홧가루 덕분인지도 모르겠다고 종부는 말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콩이에요. 좋은 콩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비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요령 피우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조리법을 그대로 지키는 거죠. 저희는 지금도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로 콩을 7~8시간 푹 삶아요. 그러면 색깔이 초콜릿색이 되는데, 그 물도 버리지 않고 장 담그는 데 사용해요. 콩의 단맛과 감칠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법인 것 같아요.”
황토방에서 볏짚 깔아놓고 발효시킨 메주는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바른 데서 말리고, 전남 신안에서 사온 소금은 10년 동안 간수를 뺀 후 사용한다는 종부. 이 집 장맛의 비법은 ‘며느리도 모르는’ 숨겨진 비방이 아니라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따라하지는 못하는, 정직함과 성실함인 듯하다.
보은=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도전! 강레오 셰프의 종가음식
달콤한 소스가 일품인 ‘닭산적’
강레오 셰프는 김정옥 종부가 들려준 종가음식 중 제사상에 올린다는 닭산적을 재현하기로 했다. 뼈를 제거한 닭 한마리를 넓게 편 뒤 조선간장과 마늘·물엿·맛술·유기농흑설탕을 섞어 만든 소스에 재워둔다. 짚불 향을 살짝 입힌 뒤 숯불에 소스를 발라가며 구우면 완성이다. 부드럽게 씹히는 육질과 달콤한 소스가 잘 어우러진 닭산적은 숯불 대신 팬을 사용하면 가정에서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고. 한가지 팁은 5호(500g) 정도의 작은 닭을 사용하는 것. 부위별로 두께에 차이가 거의 없어서 비슷한 시간 내에 균일하게 익기 때문이다. 더나 덜 익은 부분 없이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익은 살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강 셰프의 설명이다.
보성 선씨 선영홍 종가는
해상무역으로 거부된 선영홍의 후손
보성 선씨 참의공파 18세손인 우당 선영홍의 후손이다. 선영홍은 전남 고흥이 본향으로, 조선시대 말기 해상무역으로 거부가 됐다. 전국의 명당을 찾은 끝에 충북 보은군 장안면에 터를 잡고 고흥에 있는 가솔들을 이끌고 이사왔다. 현재 후손들이 지키고 있는 고택은 우당이 1919년부터 1924년까지 6년에 걸쳐 지은 집이다. 1만3000㎡(4만여평) 넓은 터에 99칸 대저택을 완성했다. 구한말 건축물 형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