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 아버지께서 제주도 어느 오름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셨습니다. 운이 좋게도 응급처치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근처를 지나면서 빠른 조치가 이뤄졌고 다행히 현재 빠르게 회복 중이십니다.
쓰러진 첫 날 응급수술이 끝난 뒤 의사로부터 기본적인 사항을 듣고난 후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겠다고 하자 의사는 보호자 1명에 한해서 48시간 이내 PCR 음성확인서를 가지고 와야 병원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병원 앞 선별진료소 오픈시간에 맞춰 제주도에 도착해서 PCR 검사 받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검사소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육지에서 온 사람은 PCR 음성확인서를 받아도 병원에 못 들어간다고 말이죠. 그래서 병원 입구에서 문의해보니 실제로 그렇다고 했습니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PCR 검사 음성확인서를 가지고도 못 들어간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돌아가려고 하는 찰나 누가봐도 외부인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제주도민은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정확히는 제주도에 14일 이상 체류한 사람은 48시간 이내 PCR 음성확인서를 가지고 오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4일간 자가격리하고 PCR 검사 음성확인이 되면 들여보내 주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그냥 14일 이상 체류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 때는 아버지가 쓰러지고 바로 다음날이라 경황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굉장히 불합리적인 룰이라 생각됩니다. PCR 검사에 대한 불신이면 그야말로 누구나 14일간 자가격리 후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누구나 PCR 검사 음성판정이 뜨면 병원에 들어가게 해줘야 하는 것이죠. 제주도에 14일 이상 있었다고 해서 특별히 육지에서 온 사람보다 PCR 검사 결과의 신뢰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규칙인 것이죠.
게다가 철저히 검사라도 하면 그나마 이해하겠는데 1시간 이상 입구에서 스크리닝을 지켜본 결과 제주도민이나 제주도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상당히 관대했습니다. 육지에서 온 우리만 까다롭게 굴었죠. 솔직히 제주도민이라고 구라치고 들어가려면 들어가는 것도 가능해 보였습니다만 그래도 룰은 룰인지라 그냥 지켰습니다.
문제는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 환자의 의료기록을 요구했는데 병원측에선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육지에서 왔다고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놓고 말입니다. 환자 본인이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하루 전의 일도 기억 못하는 아버지께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두었습니다. 저도 친척, 친구, 지인 중에 의사도 있고, 솔직히 불합리한 일은 안 하리라 믿고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제 병원측에서 중간 정산을 해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폭발했습니다. 달랑 돈 520만원 입금하라고 계좌번호 보내더군요. 아무런 세부내역 없이 말이죠. 동네 음식점도 무슨 메뉴 얼마, 무슨 메뉴 얼마해서 총 얼마라고 나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신종 피싱인가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즘 피싱도 그렇게 성의없이 하진 않죠.
기본적으로 돈을 주고 받는 행위에는 신뢰가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자는 병원측이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신뢰를 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뢰를 보증하는 행위들로는 의사로부터 필요한 설명의 제공받는 것, 의료기록을 열람하는 것, 보호자가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 등등이 있죠. 그런데 이 병원은 시작부터 육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보호자에 차별을 행하고 신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몇몇 상호간의 신뢰를 보증할 수 있는 행위들이 제한되었죠. 그래놓고 병원측에선 일방적으로 무성의하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뭐 돈은 줄겁니다. 특별히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근데 이 황당한 룰과 무성의한 태도는 고쳐놓고 가렵니다. 적어도 제 다음 사람은 그런 일을 안 당했으면 하니까요.
첫댓글 지금 병원이 다 그래요. 외래라고 우기고 들어가는 방법 밖에는 ㅜㅜ
제가 아는 의사란 의사는 다 연락해보고 최근 병원 들어갔다 오신 분들 다 연락해봤는데 여기만 지랄이 맞습니다. 제주도 이 병원 제외하고는 어떤 병원도 48시간내 PCR 검사 음성뜨면 다 들여보내 줍니다. 적어도 1회성으로 로비는 들어가게 해주죠. 근데 로비조차도 못 들어가게 하더군요. 외래고 응급이고 다 어림없습니다. 더 웃긴건 제주도 사람이라고 하면 규칙이 굉장히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것이죠. 그냥 정직한 것이 죄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