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나는 프랑스의 작은 삼림지대를 다스리는 백작이다. 베르망두아의 백작 에르베르 카롤링거. 지금은 그렇게 불리고 있다. 지금은 일개 소백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서유럽 전역을 호령한 대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 나의 선조 샤를마뉴 대제는 일찍이 프랑크족을 규합하고 서유럽을 평정해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로 인정받았다.
그 피가 흐르는 한, 나는 이 조그마한 숲 속의 성에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나의 성에서 국경 너머 조금만 동쪽으로 가면, 선조께서 황제로 즉위한 아헨의 궁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나에게는, 그 궁전을 되찾고 프랑크족의 제국을 복원할 사명이 있다.
*To the Aachen 게임 규칙 및 목표
-시작 영주 : 1066년 시나리오 / 베르망두아 백작 에르베르 카롤링거
-철인 / 월경지 독립 : AI 한정 완전 / 커스텀 왕국, 제국 : 끄기 / 가족 생성 : 끄기 / 그 외에는 기본 설정
-목표 : 1. 아헨을 봉역의 수도로 삼기 / 2. 프랑크 제국 생성 / 3. '카롤링거 영토 수복' 결단 실행
1. 첫걸음
나는 지금이라도 로마 황제를 참칭하는 잘리어 가의 애송이를 처단하고, 아헨에서 대관식을 올리고 싶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먼저 프랑스를 평정할 필요가 있다. 나의 선조가 그러하셨듯이.
옆 동네 클레르몽의 백작 르노는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늙은이이다. 즉, 나의 위업을 위한 첫번째 희생양으로 가장 알맞다는 뜻이다. 그와의 전쟁은 카롤링거 제국의 재림을 위한 첫번째 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그는 성에서 내쫓기며 나에게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자기 땅도 지키지 못한 힘 없는 늙은이의 말에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2. 왕의 측근으로
나의 주군, 프랑스의 왕 필리프는 이제 막 성년이 되었다. 그가 성인이 되고나서 가장 먼저 취한 정치적 행보는 바로 기습전쟁이었다.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다. 필리프 왕은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섭정들의 입김에서 벗어나게 되자, 가장 먼저 그를 친 것이다. 잉글랜드의 왕을 칭하고자 한다면, 노르망디의 땅은 뱉어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프의 결정은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왕의 군세가 노르망디로 진격하자, 부르고뉴의 공작 앙리를 필두로 여러 봉신들이 합심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주군이 성년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그가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였다.
왕에게는 위기였지만,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내가 반란 파벌에 곧바로 가담하지 않고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왕이 먼저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왕은 나에게 집사장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반란 파벌을 막는 데 협력하길,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담하지는 말아주기를 바랐다.
마침 나는 다음 타겟으로 옆 동네 발루아의 백작 라울을 점찍어두었다. 그 역시 반란 파벌에 가담해 있었다.
그의 세력은 프랑스 전체를 놓고 보면 나와 비슷하게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왕성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봉신 중 하나였기에 그의 배반은 필리프 왕 입장에선 꽤나 골치아픈 것이었다. 나는 필리프 왕의 충신임을 표명하고 라울을 치기로 한다.
반란 파벌은 의외로 맥없이 무너졌다. 필리프 왕의 군사적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났다. 그는 윌리엄으로부터 노르망디 전체를 되찾지는 못하였지만, 루앙 백작령을 얻어내는 선에서 평화협정을 맺고는 바로 내부의 반란 파벌을 진압하는데에 힘을 쏟았다. 왕은 사방에서 왕성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차례로 격파했고, 반란 파벌의 수장들은 소세지처럼 줄줄히 묶여서 파리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나는 왕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한 대가로 라울의 봉토였던 발루아와 아미앵을 분봉 받았다.
현재 왕성이 있는 일 드 프랑스, 그리고 브리 프랑세즈와 보몽은 규범상 발루아 공작령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왕은 반란 파벌 진압에 공적을 세운 것을 치하하며 나를 발루아 공작으로 임명하였다. 관습상으로나마 왕의 직할령을 포함하는 공작령을 분봉 받은 것이다.
그만큼 내가 왕에게 인정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멀리 본다면, 이는 카페 왕가와 우리 카롤링거 가문 사이에 영토 분쟁의 소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우리 가문의 비원인 프랑크 제국의 복원을 위해 카페 왕가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충분히 힘을 키울 때까지는 왕가의 충신으로서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
3. 때를 기다리다
반란 파벌 사건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필리프 왕도 40세를 바라보도록 안정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이베리아 반도에 쏠려 있다. 히메네즈 왕가의 싸움에 껴서 어부지리를 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나는 비록 좁은 영토이지만 농지를 개간하고 성벽을 쌓으며 훗날을 위한 재산과 군사력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첩보장이 나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가져왔다.
현재 파리의 왕성에서 묵고 있는 멜리센다와 에우프로지나 모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천출인데다가, 궁정에서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꽤나 오랫동안 왕성에 머무르고 있는데, 사실은 에우프로지나가 멜리센다와 필리프 왕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회였다. 나는 첩보장이 가져온 증거들을 취합한 뒤, 서류 하나를 더 챙겨 주군에게 향했다. 주군과 나 사이의 봉신 계약서였다.
왕은 정무로 꽤나 지쳐 보였으나, 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해주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에 대한 신뢰는 변함 없는 듯 하다. 하긴, 갑작스레 세력이 커지고 왕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음에도, 나는 반란 사건 이후로 한 번도 주변 봉신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세력을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인 일이 없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나는 첩보장이 입수한 증거들을 왕에게 내밀었다.
"아름다운(?) 따님을 두셨더군요."
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옅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언제 주군께 해를 끼친 적이 있었습니까? 저는 그저."
봉신 계약서를 내밀었다.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주군과 주군의 후계자들이, 저와 제 후계자들로부터 제가 평생을 걸쳐 가꾼 이 농토를 빼앗지 말아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단지 그걸 계약서에 써놓고 싶었을 뿐입니다."
왕은 피식 실소했다. 내가 무언가 무리한 요구를 할까봐 내심 긴장한 모양이다.
"그런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공은 지난 반란 때 나를 도와 폭도들을 물리쳤소. 그리고 숲 밖에 없는 형편 없는 땅을 개간하여 비옥한 농토로 가꾸었지. 그 공을 내가 어찌 잊는 단 말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왕은 깃펜을 들어 계약서를 고쳤다. 이로써 카페 왕가가 부당하게 우리의 영토를 빼앗는 일은 앞으로 영원히 없을 것이다.
"따님에 대한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평생의 비밀로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4. 그리고 후대로
평소 의학에도 관심이 많던 나였다. 틀림 없다. 이것은 암이다. 아마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향년 63세, 이 정도면 살 만큼 산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인 외드 역시 훌륭한 후계자로 자라주었다. 외드에게 유언으로 남긴 것은 두 가지다.
"너는 용맹하여 전장에 나가면 꼭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명심하거라. 너는 일개 장수로 끝날 목숨이 아니다. 조금 더 자신의 몸을 살피고 큰 일을 도모하거라."
"내 대에 이르러 이제 겨우 공작이 되었을 뿐이지만, 우리 가문의 비원은 제국의 부활임을 잊지 말거라. 꼭 선조께서 이루신 위업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대관식은, 반드시, 아헨의 궁전에서."
-다음 화에 계속
*처음 써보는 연대기입니다. 평소에 크킹할때는 크게 이입 안 하고 도전과제만 보고 달리는 편이었는데, 도전과제 다 깨고 나서 연대기용으로 플레이하니까 재미가 색다르네요. 진짜 크킹은 이 맛인 걸 크킹2를 1000시간하면서도 몰랐습니다.
연대기 쓰는 거 엄청 힘들고 귀찮을 줄 알았는데 읽는 것 이상으로 쓰는 것도 재밌네요!
*이번에는 스샷 갯수가 1대에 딱 알맞게 떨어졌는데 앞으로도 이럴지는 모르겠네요. 암튼 1대=1편으로 잡고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화는 언제 올라올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ㅎㅎ
첫댓글 엌... 요즘 카롤루스가 유행이군요.. 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카렌이나 커스텀 바이킹 연대기로 쓸걸...
하기전에 카페에서 비슷한 연대기있나 한번 볼걸그랫습니다 ㅜㅜ
연대기 잘 봤습니다. 몰입감이 있네요! 연재 부탁드립니다 ㅋㅋ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생아의 후손이라..
아 고건 몰랐네요
dlc 나올 때까지 잠시 봉인해두고 있었는데 오늘 퇴근하고 해야겠어요 덕분에 ㅎㅎㅎ
이 화면 환하게 나오는 거 어떻게 하셨나요??
예전에 카페에서 보고 적용한 모드입니다. 조명만 밝히는거라 적용해도 철인 가능합니다. 집에 가는대로 링크 붙여놓을게요
@멸치로이드 저두 알려주세요~
https://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2216544773
카페 링크를 찾으려 했는데 못 찾았네요 ㅜㅜ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형주인 https://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2216544773
여기에용
계약 수정 장면 흥미진진하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