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 가운데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에서 게이 살인 청부업자 Mr 윈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브루스 글로버가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고 할리우드 리포터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아들이며 영화 '백 투 더 퓨처'(1987)에 출연했던 배우 크리스핀 글로버가 인스타그램에 부친이 지난 12일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공유했다. 그의 사망을 둘러싼 어떤 구체적인 정보도 나온 게 없다고 매체는 전했다.
예상 밖의 흥행 대박을 터뜨린 '워킹 톨'(1973)이란 영화에서 고인은 버퍼드 푸서 보안관(조 돈 베이커)을 보좌하는 그래디 코커 부보안관을 열연했다. 다만 1975년과 1977년 속편들에는 보 스티븐슨이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시카고 태생의 고인은 스탠리 크레이머의 '여섯아이들'(Bless the Beasts and Children, 1971)에 레드넥(redneck, 보통 미국 남부의 무식한 백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깡패로,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84)에 JJ 기테스(잭 니콜슨)의 동업자로, 월터 힐의 '투쟁의 그늘'(Hard Times 1975)의 무자비한 채권 수집상으로 포주(제임스 코번)에 의지하는 버치 역할로 인상 깊다.
그는 또 수백 편의 연극 무대에 섰는데 테네시 윌리엄즈의 '이구아나의 밤'(1961)에 베티 데이비스의 상대 역으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 1963)에 앤 밴크로프트와 호흡을 맞췄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007 시리즈 여섯 번째(위키피디아는 일곱 번째라고 소개)이자 숀 코너리가 주연한 이온 필름의 마지막 작품인데 Mr 윈트를 열연한 글로버는 단짝 Mr 키드를 연기한 재즈 뮤지션 푸터 스미스와 함께 영화 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둘은 힘을 합쳐 치과의사를 전갈로 살해하고, 시한폭탄으로 헬리콥터를 날려버리는 한편, 세 차례나 본드를 암살하려고 못된 짓을 꾸미나 모두 발각되고 결국 둘은 어이없게 목숨을 잃는다. 두 캐릭터 모두 이언 플레밍의 원작 소설(1956)에 나온 인물들이다.
고인은 연기 학교를 다니거나 수업을 들은 적 없이 그저 일을 하며 연기를 익혔다. 반 고흐가 되겠다는 꿈을 간직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브루스 허버트 글로버는 1932년 5월 2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부친 허버트는 독실한 신앙인이라 아들이 영화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머니 에바가 그를 극장에 데려갔다. 그는 2015년 제임스 본드 라디오 팟캐스트 인터뷰를 통해 "난 늘 배우였고 내가 연기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서 “난 영화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영화에서 본 장면들에 사람들을 넣어 다른 역할을 연기했다. 난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화가나 칼 슈어츠 고교에서 풋볼을 한 만큼 선수로 꿈을 꾸기도 했다. 그 학교 풋볼 팀이 1949년 솔저 필드에서 열린 시 선수권 대회 우승을 놓치자 라이트 주니어 칼리지에 입학했다.
미술 강의를 듣는 학생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한 동료 모델이 그에게 고릴라 차림을 하고 연기해 볼 것을 요청 받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스트리퍼였고, 100파운드 무게의 고릴라 차림을 입은 채로 15분 동안 자신을 안아 들고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은 녀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도됐다. 난 속으로 ‘그래, 해 볼 만한 아주 괜찮은 일'이란 생각이 들어 했다. 그렇게 (링컨 파크의) 동물원을 찾아 가장 유명한 고릴라 부시맨을 연구해 그 녀석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부시맨은 내게 첫 연기 수업이었다. 그 녀석의 말은 ‘네 생각대로 생각하고 네 움직임대로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플로리다주 탬파로 옮겨 버라이어티 쇼 연기를 했는데 6주 지속됐다. 그 뒤 미 육군에 자원해 1953년부터 55년까지 한국에서 주둔 생활을 했다.
그 뒤 글로버는 킬로이 극단에 들어가 윌리엄스 원작의 'Camino Real' 프로덕션에 참여했는데 이전에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었던 상태였다. 위스콘신주에서 여름을 보낸 뒤 1957년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학위를 땄다. 그곳에서 그는 워런 비티에게 대학을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가 연기를 하라고 조언했다. 덩달아 글로버도 이주했다. 브로드웨이 연극 두 편에 출연한 뒤 'The Lion in Winter'(1966)의 로버트 프레스턴 연기에 몰두했다.
이런 가운데 그는 TV 쇼 'Car 54', 'Where Are You?', 'Route 66', 'Perry Mason', 'My Favorite Martian', 'The Rat Patrol', 'Mod Squad and Gunsmoke' 등과 'Who Killed Teddy Bear'(1965) ,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2007년 그는 아들 크리스핀이 연출한 영화 'It Is Fine! Everything Is Fine'에 얼굴을 내밀었고 둘은 'Influence'(2015)에 나란히 출연했다.
그의 이력서에는 '불타는 가슴'(C.C. & Company 1970), 'Black Gunn'(1972),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 2001) 등의 영화는 물론 'Barney Miller', '부부탐정'(Hart to Hart), 'The Facts of Life', 'T.J. Hooker',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은 TV 쇼도 올라와 있다.
56년을 해로한 아내 베티는 발레 무용수로 브로드웨이 연극 '오클라호마!'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2016년 먼저 하늘로 떠났다. 반 고흐의 귀(EAR) 인터뷰를 통해 고인은 죽음에 가까워졌다며 "많은 시간들, 심지어 죽음의 과정은 일종의 배우는 과정"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이다. "난 모터사이클 사고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도로 옆으로 퉁겨 나가 소 한 마리에게 돌진했다. 경적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소가 얼굴 앞에 떡하니 있었다. 난 죽겠구나 싶었는데 곧 소의 입이 헤 벌어져 있고 혀가 늘어져 나온 것을 알아챘다. 웃음이 나왔다. 해서 난 아마도 죽을 것 같다고 느낀 그 순간에도 재미있어 했다. 유타주의 절벽을 오르다 방울뱀에게 얼굴을 물릴 것 같은 위기를 맞은 순간도 있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친 것처럼 난 그 때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알아챘다. 해서 끝까지 살아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웃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