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껄떡지근했습니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드는데, 이게 무엇인지 규정하기도 힘들고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어서 성가신, 그러다 보니 찜찜하게 머리 한 구석에서, 가슴 한켠에서 계속 따끔거려서 불편하달까요.....마치, <오발탄>에서 말하는 티눈처럼.
같이 본 친구 말로는 김기덕 감독 영화 같다는군요(그러나 정작,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고-_-;) 굉장히 삶을 힘겹게 산다나요. 자기가 살아온 삶을 힘겹지만 솔직하게, 현실적으로 '리얼하게' 그린다고 합니다. 이는 작가 한태숙씨의 말과도 일치하더군요. 일단 이 작품도 한태숙씨의 인생 일부를 극화했다는 언급이 있었기에...
그래서일까요?
보는 내내, 특히 주인공 상곤과 애증의 상대(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한 감이..) 찬승의 시간들은, 바로 제가 '훔쳐보고'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게 제가 연극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던 간에 가장 많은 이야기는 바로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워낙에 익숙하고, 조금 복잡하거나 자극적이라 해도 요즘 세상에 별의 별 얘기가 많다보니 뭐 사실 특별할 것도 없었는데, 사랑 이야기쯤은 익숙한데도 이렇게 훔쳐보는 느낌이 든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끄럽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죄책감 같은 것도 안 들고요.
'보지 말아야 할 부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도망가고 싶었을 뿐이지요(-_-;)
이 작품에선 바로 그게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입니다.
'훔쳐 본다'라는 것. 혹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다'라는 것.
주인공 상곤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정부(또는 손님?)의 정사를 훔쳐봅니다. 자의는 아니었을망정.
여기에서 '저놈의 새끼 눈을 멀게 해 버려!'라는 광포한 언사를 듣게 되죠. 자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려는 덜떨어지고 포악한 인간에게 참지 못하여 소리를 꽥 지른 것이 문제가 되어서 말이지요. 어머니는, '상곤에겐 아버지가 필요해'라던가 편히 자도록 다독여준다거나, 나중에 찬승에 얽매여서 파멸로 향해 갈 때 이 둘을 떼어놓기 위해 노력하는 등, 아들에 대한 애정을 간혹가다 진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난 저 사람이 어머니를 죽이는 줄 알고!(그래서 대든)'상황에서 '그러면 네가 엄마를 죽이는 거야'라는 무서운 말을 하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세계-일그러지고 자기 치유가 불가능한-로 함몰하는 상곤을 지켜준다거나 밝고 건강한 세계로 끌어내어주는 어머니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상곤이 강한 남자,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남자, 가부장 사회에서 권력의 정점에 달한 아버지, 황제에 목마르게 갈급하는 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물론 상곤의 캐릭터가 영국 소설에서나 봐 왔던 small boy였기에 그러했지만-_-;) 그리하여 반 중국계인 상곤이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진시황과, 자신을 노예 부리듯 저 좋을대로 마구 다루던 찬승에 얽매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흐름이었습니다.
그 찬승의 형에게 강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오하거나 떼어낼 수 없었던 절대적 존재, 찬승.
두 번째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목도하여 인생이 말 그대로 구겨지는-_- 게, 상곤과 찬승이 고등학생일 때(상곤이 찬승을 좋은 대학 가게 해 주려고 대리 시험을 치느라 자기 진로 포기한 게 인생의 또다른 구김살이지만) 찬승의 집안에서 숨기고픈 치욕으로 지하실에 짐승처럼 사육하던 찬승의 장애인 형을 본 댓가로 벌어진 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떨어지고 흉측한 장애인으로 세상에 나서, 하필이면 그 광포한 찬승네 집에 태어나서 지하실에 꼭꼭 가두고 개돼지 대하는 것처럼 취급하여 정말 짐승이 되어버린 찬승의 형.
이것도 자의...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제 발로 지하실로 들어가 타의에 의해 갇힌 상태에서(상곤은 찬승과 또다른 형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기억함. 찬승은 부정) 그 형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 여기에서 여러 기사나, 자료, 프로그램에서조차 성희롱, '성적 수모'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더군요. 왜, '강간'이라면 너무 부정적이고 강한 이미지가 두드러져서 그럽니까? 설마 살인과 절도처럼 현격한 범죄질의 차이가 있는 강간과 성희롱을 동급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정신적 살인이라고도 불리는 강간입니다.
상곤이 그걸 당했어요.
심지어,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구해주는 사람 하나 없었지요.
뿐인가요? 생매장까지 시키려고 했는걸.
물론, 가해자인 찬승은 장난으로 그런 거라고 하지만, 범죄라던가 억압, 가해는 어디까지나 (억압의) 객체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지 그 주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상곤은 생매장될 뻔한 공포를 겪었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진시황은 그 거대 중국을 역사상에서 최초로 통일한 황제입니다.
그는 땅을 정복했고, 사람을 정복했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 정복하고자 했지요.
비록 죽음을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토용과 거대한 무덤으로 죽음 후의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인 '은궁'들,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서 죽임을 당하거나 산채로 그 거대한 무덤에 진시황과 함께 들어가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진시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이 무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무덤 속에서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
상곤과 찬승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긴 했습니까?
가해자와 피해자, 황제와 노예, 가학과 피학. 이 둘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까?-_-;
그러니 그렇게 인생이 구겨지는 거지요(-_-;)
아니, 어쩌면 그렇게 파멸로 향하는 불의 전차를 사이좋게 밀고 끌며 가속도를 내나 그래-_-;;(둘이 떨어져 있던 시간은 최후를 향한 엔진의 공회전 시간-_-)
하여간 계속해서 쓰자면, 비교적 사소해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어떠한 단절(찬승의 죽음)을 끌어내며 작품의 결말로 치닫는 상황을 연출하는 세번째의 훔쳐보기 상황, 중국에서 찬승이 처음 보는 여자와 bed in을 할 때 옷장 안에서 그걸 엿보던 상곤의 처지란, 참....
역시나 원하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훔쳐보기가 되었고...
천하에 다시없을 몹쓸놈, 정말 재수없게 나쁜 놈(느글느글해서 더 나빠! 괴로워-ㅠ-)한테서, 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멸시당하고 조롱받으며 아물지 않는 상처를 다시금 후벼파는 상곤의 처지란, 정말이지~~~
당신! 왜 그렇게 사냐!!
아-물론 당신 잘못만은 아냐. 찬승도 필사적이었으니까.
가학과 피학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아서 찬승도 알고보면 학대받던 불쌍한 어린 아이였고 그 상처를 일생 짊어지고 가느라 언제까지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못 되었지(그러니 두 번 결혼해서 두 번 이혼하지. 자랑이 아니라 정말 나쁜 놈-_-)
그런 찬승의 지구는 바로 상곤이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고, 입이 찢어져도 말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옆구리가 찢어지는 결과가 파생하는 거지(뭐, 옆구리에 칼침 맞아서 뒹구는 처지가 되니까 불긴 한다만)
상곤만큼이나 찬승 역시 상대에게 필사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곤이 자기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될 테니까.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난 너의 뭐였어?' '난 사과를 받고 싶어'라며 인간으로서 온전한 존중을 바라며 찬승이라는, 찬승의 애정이라는 '가시'를 빼고 싶어하던 상곤에게 찬승으로선 '내가 왜?' 인거지. 떼어놓을 수 없잖아.
노예가 있어야 황제가 성립하니까.
하지만 그걸 당신이 무슨 수로 알았겠어, 언제나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며 찬승이 던져주는 웃음이나 말 한마디에 급급했던 당신이.
뿐인가, 황제에겐 노예가 많지만 노예에게 황제는 단 하나뿐이거든.
그래서 둘이 똑같이 필사적이고, 둘이 똑같이 서로에게 얽매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애타고 더 불안한 쪽은 상곤, 당신일 수 밖에 없는거야.
...정말...구겨지고 구겨지고 또 구겨지는 인생이지, 가엾은 사람...
<그 남자의 기억, 죽여서라도 가지고 싶다....>
황제의 기억을, 갖고 싶었던 상곤.
서안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기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그래, 원하던 것은 찾았을까요...?
은궁들의, 토용들의 한에 함몰되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부분을 엿보는 듯' 한 떨떠름한 느낌을 안고 불쌍한 두 영혼의 파멸을 향한 사랑(과 증오일 수 밖에 없다니까요-_-;; 누누히 말하지만 사랑이나 증오 어느 한 쪽이라면 언젠간 무뎌지지만 애증이면 골치 아프다고요-_-; 도무지 시간 흐른다고 사그라드는 게 아니거들랑-_-;)을 보고 난 후, 머리를 쥐어뜯으며 차마 소리를 낼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으아아) 이리저리 생각해 봤지만....
가닥들이 그렇게 잘 잡히는 게 아니라서 다음에 또 보고(어차피 두 번은 더 봐야하니까;) 또 고민해 보겠습니다.
서안....서안....
제가 서안에 가 본 건 딱 한번이고 며칠 머무르지도 않았고, 진시황릉...보긴 했지만 공개된 갱보다는 비공개가 훨씬 많았고....
지금 와서 생각나는 거라곤, 아주 더웠다는 것 하나. 그 때 중국 갔다 돌아와서 한 달 약을 먹었죠. 더위 먹어서-_-;(그러나 무덤 속은 시원했습니다-_-;;)
그리고 이런 저런 영상들로는 잘 복원된 위풍당당하고 신비로울 정도로 정교한 토용들이 나온지라 머리 속의 이미지가 그렇게 고착되었다가, 실제론 멀쩡한 게 얼마 없고 한데 뭉쳐져 있거나 심하게 파손된 토용들이 뒷부분에 몰려있어서 놀랐다는 것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사의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무덤 크기를 떠나서, 토용들 얼굴이 다 다르고 민족적 특징이라던가 표정도 잘 잡혀져 있고, 심지어 채색도 되어 있었는데 숫자도 무지 많아서 도무지 역사에 남아있는 장인들 수로는 살아 생전에 만들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는 불가사의함-토용들 하나하나에 제작한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데 도대체 그 큰 토용들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에 놀랐던 것 하나.
뭐랄까, 저는 그런 거대한 유물이나 건축물 같은 걸 보면 그 아름다움이나 위용을 감상함과 동시에 그것을 세울 때 흘려야만 했던 수많은 민초들(+소수의 예술가, 장인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항상 생각나기 때문에 도무지 순진하게 근사하다며 감탄할 수 있는 심성을 갖추지 못한터라, 진시황과 같은 거물쯤 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간단하게 맘에 드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니까요.
그저 혼란스러워 뻑쩍지근하죠-_-;
그리하여 다른 약속 없더라도 다시금 보게 만드는 연극이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보면 정말, 성격적으로 돌파구가 없는 사랑을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고, 진시황 얘기만 빼면 sm에 치정살인(그것도 사체를 토용 굽는 가마 속에 넣어 토용으로 만들고 만 엽기적이기까지 한-_-)에 지나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연결을 시켰을까, 시공의 위태로운 연결을 기점으로 전혀 연관이 없던 인물들의 기억을 어쩌면 저리도 자연스레 엮었을까 참으로 놀랍고 감탄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레이디 멕베스>도 보면서 아주 감탄한 작품이었는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연기도...아, 연기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전 오랫만에 장영남씨를 뵈어서, (혼자) 대한민국 최고의 광녀(ㄴ) 연기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었기에 또 어떤 광녀(ㄴ) 연기를 보게 될까 두근두근 기대하며 갔었는데, 웃;
얼마 나오시지도 않고, 비교적 평범한 역에 평범한 연기를 보여주셨습니다(ㅠ.ㅠ)
물론 잘 하셨지만 아쉬웠습니다(...ㅠ.ㅠ)
그리고 찬승....
진짜진짜 나쁜 넘....-_-; 연극 보면서 혼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저도 모르게 한 대 쳐주고 싶게 만드는 참으로 나쁜 놈....
그렇게 살지 말아라(...) 백주 대로변에서 쌍으로 칼침을 맞아도 넌 할 말 없는 놈이야(-_-;)
아아...영미권 소설에서나 봤던 big boy를 연극으로 보게 되어서 어찌나 열불나던지(-_-;;) 악역이 미움을 받아야 작품이 성공한 거라고들 하는데, 그것만 보자면 대박(웃음;)
긴 다리, 오만방자한 태도와 표정.
잘 어울리셨습니다.
일본에서 올려진 '바다와 양산'을 제외하면 작년부터 광기에 휘말린다-살인을 한다(피아 상관없음-_-;)의 공식에 충실한 연기를 하시는 박지일 선생님.
선생님께서 왜 뮤지컬에 출연하시게 되었는지 여실히 느꼈습니다(ㅜ.ㅜ)
그, 쫓기는 작은 포유류 동물 같은 애처러움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ㅠ.ㅠ
(다시 한 번 찬승에 대한 분노 게이지 상승, 화르륵-_-^)
무대, 그 얼기설기 완공도 안 된 상태, 작품과는 잘 어울렸어요.
앞으로도 정미소는 그 상태 그대로 갈 건지(그럴 것 같긴 하지만...완공하려면 이 1년 사이에 얼마든지 완공할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진행했으니) 그럴거면 작품 정말 신경써서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토용들과 작품들도 아주 잘 어울렸고요.
<공명>은...<레이디 멕베스>에서 너무나 인상깊어서 매우 기대했는데 비중이 작아서(심지어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실망했습니다.
그 창조적이고 파격적인 소리들....<레이디 멕베스>에서 너무 멋져서,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충격적인(^^;) 감명을 받긴 어렵겠단 생각은 했는데 아예 이번엔 비중 자체가....적어서.....ㅠ.ㅠ(아쉬워라...)
흑....근데 지금 쓰는 리뷰, 문장 호응들은 제대로 맞을까요-.ㅜ
(졸리다기보다도 그냥 피곤해요. 요새....)
일주일 후에 또 이 작품을 볼 때, 그리고 막공을 볼 때는 무슨 다른 생각의 실타래를 풀게 될까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