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웰다잉으로 가는 길 재택임종을
주목하라
“연명치료 원치 않지만 자식 체면 때문에…”
[일요신문]
삶의 마지막 순간이 불행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이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잘 사는 것’에서 나아가 ‘잘 죽는 것’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 중심엔 재택임종이 있다. 과거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나 오늘날엔 의료발달 및 주거형태 변화 등으로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덕분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는
늘었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품위 있는 죽음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지막까지 차가운 기계와 낯선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자연의 순리대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재택임종이 주목받고 있으나 불과 20여 년 만에 우리는
몸과 마음 모두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엔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지만 품위 있는 죽음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 DB “엄마는 항상
집에 가고 싶어 하셨다. 지금에서야 왜 그때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는지 후회스럽다.”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는 이 아무개 씨(36). 그는 “건강하셨을
때도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던 분이었는데 폐암이란 진단에 우리 형제들이 무작정 입원을 시켰다. 수술도 받고 항암치료까지 했으나
6개월을 못 버티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도 집에 가고 싶다하셨지만 링거만 3개를 꼽고 있는 엄마를 모시기란 쉽지 않았다. 옥상 텃밭이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한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연세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말기 환자의 재택 임종에 관한 탐색(2011년)’을 살펴보면 40세 이상 남녀 500명 중 46%가 삶의 마지막 기간 요양을
하고 싶은 장소로 자택을 꼽았다. 요양시설이나 병원을 택한 응답자 270명 중 77%도 ‘가족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집을 택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이 이 씨의 어머니처럼 재택임종을 소망했다.하지만 현실은
바람과는 정반대였다. 2011년 국내 사망자 중 72%가 병원(이송 도중 포함)에서 숨을 거둔 것. 이들 대부분은 사망 선고를 받는 순간까지
온갖 기계에 몸을 맡긴 채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세상을 떠나야 했다. 과연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런 죽음이 행복할까.
일본의 70대 의사인 나카무라 진이치는 “병원에서 맞는 죽음은 결코 평온할 수 없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라”고
말한다.
평온하게 재택임종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결단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일요신문 DB 그가 펴낸 책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에 따르면 재택임종을 맞은 사람들
모두가 평온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삶의 질을 포기하면서까지 연명치료를 하는 대신 본인과 가족 모두 자연의 순리에 따라 차분히 임종
준비를 할 수 있어 후회를 남기지 않는 덕분이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재택임종에 대한 막연한 바람을 가지면서도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거나 명확한 개념조차도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의 강원남 웰다잉 플래너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재택임종을 하면 부모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지 않았다며 불효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인식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재택임종이야말로 웰다잉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웰다잉 관련 책들.
또한 재택임종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어떤 준비를 해야 하며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50대 이상의 중·노년층에게
“재택임종이 어떤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각양각색의 답이 돌아왔다. 그중 가장 많은 답변이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방법이 없어 집으로
돌아와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죽기 직전까진 병원에서 온갖 연명치료를 받다가 말 그대로 눈만 집에서 감는 것을 재택임종의 전부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카무라 진이치는 이런 경우 재택임종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재택자연사가 아닌 재택의료사라
부른다. 장소만 집으로 옮겨질 뿐 병원에서 행해지던 의료장치와 연명장치도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가게 되는 만큼 순수한 재택임종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재택자연사는 될 수 있는 한 의료에 기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저
지켜보는 것과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전달하는 일뿐이다. 임종 후에도 사망 확인과 진단서 발행만 하면 의료진의 역할은
끝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재택임종을 원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진짜 마지막 순간까지 ‘집에서’를 고집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긴급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불안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평온하게 재택임종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결단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하지만 우리나라의 재택임종 지원에 관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숨부터 나오는 게 사실이다. 앞서의 논문을 살펴보면 자택에서 마지막을 맞는 데 필요한 요건으로 가족의 이해와 협력, 통증
완화를 위한 재택의료서비스, 24시간 의료진 호출체계 등을 꼽았다. 하지만 가족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특히 재택임종의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는 가정호스피스에 대한 지원은 아직 법제화도 되지 않은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전국 54개의 완화의료 전문기관(868병상)을
대상으로 총 27억 원의 예산을 차등 지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마련한 ‘호스피스완화의료 활성화 대책’에 따른
지원이었다.
한 민간 가정호스피스 관계자는 “지난해 완화의료 활성화 대책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때 가정호스피스도
법제화가 이뤄져 어느 정도 실제적인 지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완화의료팀제도나 가정호스피스 제도에 대해선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지원도 일부 말기 암 환자들에게만 혜택이 있을 뿐이다. 지금도 호스피스 병동과 의료진들이 턱 없이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측은 “완화의료팀제도나 가정호스피스 제도 등도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장 노유자 수녀는 “현재
가정호스피스 대부분은 종교단체나 민간단체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 센터도 오로지 모금이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20여 명을 돌보고
있다. 가정호스피스는 통증조절을 통해 최대한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에 대해 잘
모른다. 체계적인 지원과 홍보를 통해 평온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웰다잉을 위한 9가지 조건
구급차 부르기 전 주치의에 먼저 ‘콜’
사람은 죽을 때 왜 저렇게까지 괴로워해야 할까.’ 일본의 의사 나가오 카즈히로 씨는 생사를 가르는
의료 현장서 항상 의문이 생겼다. 그의 결론은 불필요한 연명치료가 환자의 고통이 늘린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재택의료의 길을 선택해 24시간
연중무휴로 지역민들의 건강과 임종을 책임지고 있다. 늘 죽음과 함께하고 있는 나가오 씨가 말하는 ‘평온사를 위한 9가지 조건’을
소개한다.
1. 평온사가 불가능한 현실을 제대로
알자.
“본인이 평온사를 원한다고 해도 쉽게 그럴 수 없는 의료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종말기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연명치료를 받는 게 이미 정해진 순서다. 뒤늦게 본인이나 가족이 중단을 요구해도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드물다. 종말기 의료 현실에 대한 무관심이 평온사를 막고 있다.”
2. 재택간호 경험이 있는 의사를 찾자.
“종말기 환자들은 언제든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왕진이 매우 중요하다. 건강할 때부터
평온사를 도와줄 수 있는 의료진을 찾자. 그리고 성격이 맞는 단골 의사를 찾는다면 금상첨화다.”
3. 사후에 대해 미리 의논하자.
“평온사는 죽는 순간의 일이 아닌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제대로 된 평온사를
위해서는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함께 사후 준비를 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준비를 하다보면 각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4. 평온사가 가능한 시설을
선택하자.
“앞으로는 병원이나 자택이 아닌 노인요양원,
케어하우스, 실버타운 등 삶의 마지막을 맞는 제3의 장소인 시설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삶의 마지막 장소로 시설을 택했을 경우 끝까지 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평온사를 맞게 해줄 곳을 찾아라.”
5. 생전유언을
표명하자.
“많은 재산이나 연금이 조용한 임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죽은 뒤 효력을 발휘하는 유언이 아닌 생전에 효력이 있는 ‘생전유언’으로 자신의 연명치료에 관한 의지를 표명하길
권한다. 분쟁의 씨앗은 자신이 건강할 때 대책을 세워야 한다.”
6. 낙상→골절→입원을 예방하자.
“고령의 환자들이 낙상→골절→입원의 과정을 두 번 반복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치매가 온다.
낙상으로 병원생활이 시작돼 결국 치매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환자들이 많다. 평온사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넘어지는 것에서
시작되는 불행은 막자.”
7. 구급차를 부르는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하자.
“구급차를 부르는 것은 소생과 그 뒤에 이어질
연명치료를 받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재택임종을 택했다면 긴급한 상황이라도 구급차 대신 주치의에게 먼저 전화하고 기다리자. 가족들도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8. 탈수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평온사를 앞두고 있을 경우 탈수는 결코 나쁘지 않다. 탈수 상태에서는 몸 전체가 에너지를 줄이는
모드가 된다. 무리하게 흉수나 복수를 빼고 다시 수액주사로 보충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사람의 몸이 순리에 따라 자연적으로 에너지를 줄여가는 것을
지켜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9. 완화의료의 혜택을
누리자.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에
공포심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수명이 줄어든다거나 죽기 전 약물중독에 걸린다는 잘못된 인식의 영향이다. 하지만 진통제 사용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통증을 경감시키는 완화의료 혜택을 충분히 누리면 마지막까지 평온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
[박] |
평범한 노인들이 바라는 죽음
“마지막은 집에서 가족과 보내고파”
따스한 봄 햇살이 가득했던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덕수궁을 찾은 어르신들을
만나봤다.
“어떤 죽음을 원하세요.” 선뜻 입에 담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담담히 자신이 바라는 죽음을 얘기했다. 10명의 어르신들 중 7명은 평소 생활하던 집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노인들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하나 둘 떠나는 친구들을 보니 나도
얼마 안 남았다 생각은 하지. 평생을 살았던 집에서 애들이 보내주면 제일 좋겠지. 그런데 우리 애들이 겁이 많아 집에서 보내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올해 74세라는 박 아무개 할아버지는 자신의 죽음보다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곁에 있던 동갑내기 김 아무개 할아버지도 “안 아프고 죽는 게 소원이지. 옛날 사람들은 다 집에서
죽었는데 요샌 그렇게 죽으면 다들 수군대더라고. 자식들한테 아픈 부모 집에 내버려뒀다는 말 듣게 하기 싫어 병원에 가긴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집에서 눈 감고 싶네”라고 말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는 노부부는 “자식들 두 번 고생 안 시키고 나란히 떠나는 게 바람”이라고 전했다.
김 아무개 할머니(69)는 “집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누구든 거동이 불편해지면 남편과
요양원에 갈 생각이야. 돈만 있으면 애들 눈치 보며 집에 있을 이유가 없지. 추하게 죽는 모습 보여주고 싶지도 않아. 나도 징그러운데 애들은
오죽하겠어. 마지막까지 고상하게 죽기로 남편이랑 이미 약속했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할아버지도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반면 홀로 생활하고 있다는 이 아무개 할아버지(71)는
“오래전에 할머니 앞세우고 자식들도 다 흩어져 살아. 이런 노인네들은 병원에서 죽는 게 당연하지. 나한텐 집에서 죽겠단 소원도 사치야. 백골이
돼서야 내가 죽은 걸 알면 어떡해. 우리 같은 노인들은 집에서 죽는 게 객사나 다름없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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