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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 To the Aachen 1대 : 에르베르 공작 - Daum 카페
Europa Universalis | To the Aachen 2대 : 외드 공작 - Daum 카페
1. 프랑스의 왕, 에르베르 1세
아버지께서는 필리프 2세를 암살하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할아버지께서 평생 동안 카페 왕가에 쌓은 신뢰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셨다. 카페 왕가의 두 왕이 아버지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은 사람까지 포함해도 아버지와 첩보장, 그리고 후계자인 나까지 세 사람 뿐이다.
필리프 3세는 필리프 1세와 달리 아버지의 장례에 직접 조문을 오지는 않았다. 아마 본인도 왕위를 이어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많이 혼란스러우리라.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 혼란은 나에게 프랑스의 왕위를 쥐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작위를 승계 받기 무섭게 필리프 3세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필리프 3세가 아직 완전히 입지를 다지기 전인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물론 불완전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그도, 아직은 미숙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막대한 자금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개간하신 농토의 수익률이 예상보다 굉장히 높았던 것 같다. 나는 전재산을 털어 유럽 전역에서 용병들을 고용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을 지 알 수 없는 동료 봉신들의 지지보다, 돈만 주면 확실하게 목숨을 걸고 돈값을 하는 용병들이 더 빠르고 확실하며 안전하다.
몇몇의 봉신들이 필리프 왕을 지원하기 위해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급하게 이쪽으로 향했다. 아마 나를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 그들의 생각은 뻔했다. 나의 반란을 어리석은 20대 젊은이의 무모한 치기 쯤으로 여긴 모양이다. 그들은 나의 할아버지께서 그랬듯이 반란 폭도의 진압을 지원하여 우리 가문이 누렸던 것 처럼 왕가의 신뢰와 특권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거사는 3대에 걸친 치밀한 계획과 준비에 의한 것이다. 많아봐야 5000명 안팎의 징집병을 상대할 것이라 예상했던 그들은 전문 훈련을 받은 용병대를 포함한 만 여 명에 가까운 나의 군세 앞에 허무하게 격파되었다.
봉신들의 원군이 격파되자, 필리프 3세는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파리에 입성하여 이곳이 카롤링거 가문의 새로운 수도임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프랑스의 왕이 되었고, 어떠한 봉신도 이 선포에 감히 토를 달지 못 했다.
2. 섬을 짓밟다
내가 왕위를 찬탈하는 틈을 타, 건방지게도 잉글랜드의 왕 사이어가 동생 튀롤로부터 노르망디 공작령을 강탈했다. 강탈이라고는 하나, 혼란을 틈타 볼모로 잡힌 동생을 구출하고 겸사겸사 노르망디의 소유권을 재주장한 것이다.
프랑스의 왕으로서 이는 좌시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바로 전 왕조인 카페 왕가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되찾아온 노르망디를 나 때문에 다시 빼앗겼다고 한다면, 나의 입지는 더욱 흔들릴 것이다. 나는 곧바로 사이어에게 노르망디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며 전쟁을 선포했다.
그 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인 홀란드 공작이 난데없이 나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프리슬란과 로타르 지역의 영주들은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으로 있지만, 황제에게 제대로 통제받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얼마 전 하 로렌의 공작이 토스카나 공작과 함께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감히 프랑스의 왕을 상대로 변방의 일개 공작이 선전포고라니, 바이킹 야만인들에게 하도 약탈을 당해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틀림 없다.
...라고 생각했으나, 잉글랜드와 홀란드의 합동공작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나는 노르망디의 소유권을 잠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사이어는 노르망디의 소유권을 보장받자, 곧바로 군세를 돌려 섬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발을 빼자, 곤란해진 것은 홀란드였다. 두 왕국 사이의 전쟁에 끼어 어부지리를 보려던 홀란드는, 프랑스의 군세를 혼자서 온전히 상대해야할 위기에 처하자 곧 평화협정에 쉽게 서명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영토는 지켜냈으나, 이 사건은 나에게 치명적인 굴욕이었다. 잉글랜드에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했고, 위신은 바닥으로 실추했다. 약 60년 전, 필리프 1세는 외부의 잉글랜드 군과 내부의 봉신 반란군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그들 모두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 카페 왕가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확실한 전과를 내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새로운 타겟을 찾았다.
상 부르고뉴의 공작이 혼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다. 나는 소수의 군대를 파견하여 그들을 쉽게 제압하고 다시 복속시켰다. 그러나 겨우 이런 소영주를 복속시킨 것으로는 나의 위신을 회복할 수 없었다.
그때, 낭보가 찾아왔다.
잉글랜드의 왕 사이어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9살 난 어린 아들 윌리엄 3세가 즉위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금 노르망디를 물고 늘어졌다.
이번에는 양면 전쟁이라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군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나도 후사를 마련하기 위해 혼인을 생각할 때였다. 나는 브르타뉴의 유력가인 코르누아이 가의 미망인 엘리나를 아내로 맞이했다. 미망인이라니. 나도 아버지처럼 정치적인 목적으로 애 딸린 과부를 아내로 맞아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노르망디는 다시 프랑스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래서는 겨우 현상유지일 뿐이다. 나는 노르망디를 되찾은 것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마침 노르망디 공작령 내의 소영주로 있던 랄프라는 꼬맹이가 노르망디 가의 방게이며, 성지 켄터베리 성당이 있는 켄트 공작령에 명분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꼬맹이의 명분으로 영국 본토를 침공하기로 한다.
잉글랜드는 어린 윌리엄 3세 대신 그의 누나 해리아를 급하게 여왕으로 세우고 나의 군세를 막으려 했다. 해리아의 남편인 카라독이 켄트에 상륙한 우리 군을 공격했지만 처참하게 패배했다.
카라독의 신변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그가 미혹된 켈트의 신앙을 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단을 따르는 자에게는 화형 뿐. 나는 카라독을 잡아 산 채로 불태웠다. 남편이 화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해리아 여왕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며, 잉글랜드 군의 사기는 크게 꺾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해리아는 항복문서에 힘겹게 서명했다. 이로써 잉글랜드가 대륙에 발을 뻗고 있던 판도가 뒤집혀, 반대로 우리 프랑스가 브리튼 섬에 발을 걸친 형국이 되었다.
3. 아헨으로
잉글랜드를 철저히 짓밟고 성지를 점유한 것으로 나의 입지는 비로소 안정되었다. 이제는 어느 봉신도 나에게 의혹에 찬 눈빛을 보내오지 않았다. 특히 일국의 여왕의 부군을 잡아 산채로 불태운 광기를 보고 여러 봉신들이 공포에 떨었다.
이제 다음 할 일은 자명하다. 카롤루스 제국의 수도, 아헨을 되찾아야 할 때다. 앞서 말했듯 로타르는 제국의 행정력과 위엄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헨으로 향할 교두보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페르디난드 공작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가 점유하고 있는 브라반트 공작령은 발루아에서 아헨으로 향하는 최단루트에 해당하는 길목이었다. 제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영주 따위는 나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브라반트는 곧 프랑스의 손에 떨어졌다. 이제 아헨까지는 정말, 단 한 발자국 만이 남았을 뿐이다.
4. 황제가 될 아이
그러나 아헨은 신성로마제국의 철저한 보호 아래 있었다. 더 이상 제국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제국의 황제들은 아헨의 성당에서 대관식을 하곤 했다. 그만큼 아헨의 상징성은 아직 유효했기에, 아헨을 차지하려면 제국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의 프랑스가 신성로마제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가,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나의 아들 외드가 태어났다. 사랑스러운 엘리나, 건강한 아들을 낳아주었구려.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조그마한 아기와 끔찍한 고통으로 온몸의 힘을 다 빼고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엘리나를 보니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자신감이 솟구쳤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아이는 분명 아헨에서 대관식을 올릴 아이임이 틀림 없다.
나는 제국의 영토를 침공했다. 곧바로 아헨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두 국가의 명운을 건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렇기에 일단은 두 국가의 완충지 역할을 하던 반 공작령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그의 힘을 떠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신성로마제국이라 칭하는 자들의 저항은 형편 없었다. 바 공작령은 너무나도 쉽게 프랑스의 손에 떨어졌다. 나는 자신감이 붙었다.
5. 참는다는 것, 맡긴다는 것
1144년 신성로마제국의 국경을 처음 넘은 후로, 나는 20년을 그들과의 전쟁에 바쳤다. 그리고 1165년 1월 29일. 내가 직접 이끄는 1만 4000여 명의 군세가 드디어 아헨에 당도했다. 나는 아헨을 탈환한 기념으로, 아헨의 궁전에서 로타르의 국왕으로서 즉위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왕이 아닌 프랑크 제국의 황제로서 즉위하고 싶었다. 그러나, 비록 아헨을 빼앗겼을지언정 신성로마제국이 건재하기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내가 제위에 오르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뿐 아니라 그 제국의 정통성을 보장해주고 있는 교황까지도 적으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
나는 살 날이 오래 남지 않았다. 멀지 않은 시일에 외드에게 나의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말년에 적을 늘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어째서 아버지께서 직접 왕위를 찬탈하지 않고 나에게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기셨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즉위식을 올린 뒤, 나의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나의 사랑 엘리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내도 세상에 없고, 내 대에서 할 일도 모두 끝마쳤으니 이만 갈 때가 되었다고 몸이 스스로 아는 것이다.
"외드야."
침대에 누운 채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외드는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대답하였다.
"네, 아버지."
"나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록 아헨을 탈환하였다고는 하나, 스스로 신성로마제국이라 칭하는 저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너는 우리 가문의 비원을 받들어, 나를 대신하여 그들로부터 제위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칭제라는 것은 세력이 잠시 흥하였다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선조이신 샤를 대제의 영토를 되찾는데 주력하거라. 신성로마제국이 쥐고 있는 영토들 뿐만 아니라, 사악한 이슬람 이교도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이베리아의 영토도 되찾아야 한다.
신성로마제국이 더 이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제국도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교황이 그런 가짜 제국이 아닌 우리 카롤링거 가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될 때 비로소 너는 황제로서 아헨에서 대관식을 올리고 진정한 제국이 부활했음을 선포하거라.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파리를 계속 수도로 삼고, 그 비옥한 영토에서 나오는 소출을 너의 뒷배로 삼아야 한다."
-다음 화에 계속
*이번 화에 세력도 확 커지고 전쟁도 너무 많이 해서 어떻게 편집할지 고민이 좀 많이 되었습니다ㅋㅋ 생략된 전쟁도 많고, 신롬이랑은 암살로 휴전 쿨 돌리면서 자잘자잘하게 계속 전쟁해서 영토를 갉아먹었는데, 대충 '20년 간 지속 된 전쟁'으로 퉁쳤습니다.
*아헨을 먹기는 했지만, 스토리 진행상 수도로 삼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해서 첫번째 목표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나저나 프랑스가 진짜 엄청나게 꿀땅이군요. 3대 밖에 안되었는데 직할령 건물 풀업+무장병 풀스택 채우면서도 돈이 이렇게 썩어나는 건 처음이네요 ㅋㅋㅋㅋ벌써부터 신롬도 사실상 상대가 안되는데, 이거 위기가 너무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ㅜㅜ
첫댓글 \프랑크 제국을 향해서 ㄱㄱ
카롤링거 제국의 복원 가나요~
일 드 프랑스가 괜히 사기 꿀땅 중 하나로 불리는 게 아니죠. 온 홀딩이 다 농지로 깔려 있는 그 위엄이란... 거기에 관리트리 타고 노트르담까지 찍으면? 돈이 부족할 일은 없죠.
와... 대를 이어서 써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네요. 전에 비슷한 연대기를 쓰다가 너무 난해해서 중도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엄청 깔끔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적수도 없어보이니 두명 낳아서 내부의 적을 만들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