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를 보았습니다.
스포 조심하세요!
<모아나>는 잘 빠진 애니메이션입니다.
판타지를 시각효과와 뮤지컬로 버무리는 ‘디즈니’의 솜씨는 눈과 귀를 홀리기 충분합니다.
‘신화와 동화 + 뮤지컬 +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디즈니’의 오래된 필승 공식이지만
한동안 이 공식이 잘 먹혀들지 않으면서 침체기에 빠졌었죠.
그러면서 ‘디즈니’라는 이름에서 고리타분함의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재반등은 <라푼젤>을 통해서였죠. ‘5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 덕분인지 ‘디즈니’는 절치부심했습니다.
놀라운 기술적 성취(등불 장면은 아직까지 내가 본 3D 장면 중 최고!)와 함께 기존의 필승 공식을 살짝 변주하면서
시대의 입맛에 맞추는데 성공했습니다. 필승 공식의 성공적인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성공적인 업데이트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여성 캐릭터’의 변화입니다.
더 이상 백마 탄 왕자의 키스나 기다리던 수동적인 여성은 아니라는거죠.
<모아나>에서도 이런 호평이 빠지질 않습니다. 사실 이런 변화는 제법 오래 전에 시작됐습니다.
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기의 ‘쟈스민’ 공주(알라딘)와 ‘벨’(미녀와 야수)은 그리 만만한 아가씨가 아니었고,
‘뮬란’은 남성을 압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에 <라푼젤>부터는 활동적이고 의욕적이며 민감하기까지 한 10대 소녀의 감성이 업데이트 됩니다.
그래서인지 ‘라푼젤’, ‘엘사와 안나’, ‘모아나’는 하이틴 무비의 주인공이 연상되죠.
어쨌든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역사가 있는 변화여서인지 <모아나>에서는 신선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기쁨이’보다 ‘슬픔이’나 ‘까칠이’의 활동량을 늘리든지,
상대적으로 ‘모질이’인 남성캐릭터에 힘을 주든지 하는 새로운 업데이트가 필요해보이네요.
이야기도 업데이트 됩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유지한 채 ‘킥’이 될 만한 작지만 큰 변화를 줬죠.
‘라푼젤의 단발’과 ‘진정한 자매의 사랑’ 같은 것 말이죠.
이야기의 임팩트와 캐릭터의 주체성의 측면에서 그 효과는 강력했습니다.
<모아나>에서는 악역인 ‘테카’의 본색, ‘오늘부터 1일~♡’ 하지 않는 남녀주인공의 관계가 그 역할을 하지만
이번에는 작지만 큰 변화라고 할 순 없겠네요.
‘디즈니’는 다른 민족의 신화나 동화를 적극 차용합니다.
<알라딘>, <뮬란>이 그랬고, <라푼젤>, <겨울왕국>은 유럽의 동화가 모티브죠. 미국의 역사가 짧아서일 수도 있고,
판타지를 강화하고 글로벌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전략(얼굴도 어느샌가 동서양의 조화가...)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다른 민족의 이야기를 적극 차용하고 그 속에 ‘America’를 녹이는데 도가 텄습니다.
그때문인지 묘한 거부감이 듭니다. <라푼젤>과 <겨울왕국>과 같은 유사 문화권을 소재로 할 때는 덜한데,
<알라딘>, <뮬란>처럼 명백히 다른 문화권을 다룰 때는 그 거부감이 상당합니다.
<모아나>도 그랬습니다. 폴리네시안 원주민의 생활과 신화를 다루지만 말투와 행동은
누가 봐도 미국 영화 속 그것이고, 개척정신과 같은 미국적 가치도 욱여놓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지적은 트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고, 때문에 별점은 깎여나갑니다.
이제는 그냥 지네들 얘기나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노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죠.
얼마 전 내한했던 ‘피보 브라이슨’은 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의 상징이었고,
‘A Whole New World’와 ‘Beauty & Beast’는 여전히 스테디셀러입니다.
<라푼젤> 이후 시각적 스케일이 커지면서 수록곡들도 그에 걸맞는 스케일을 갖추었고, 인기의 스케일도 커졌습니다.
<겨울왕국>의 ‘레리꼬’가 그 정점을 찍었고, 피로함이 생길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모아나>도 노래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대표곡인 ‘How Far I'll Go’를 개봉 전부터 24개국 버전으로 공개하며 ‘레리꼬’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목이 길어요;; 안타깝게도 ‘레리꼬’의 영광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노래는 좋아요. 쉽게 질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모아나>에는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디즈니’의 주인공들 곁에는 귀엽고 사랑스런 친구들이 늘 함께 합니다.
<뮬란>의 용과 귀뚜라미, <라푼젤>의 도마뱀과 말, <겨울왕국>의 눈사람과 순록.
그런데 <모아나>에서는 닭이 웬말입니까! 그것도 정말 ‘닭대가리’스러운 정신나간 닭입니다.
초반에 나오던 강아지 닮은 그 귀여운 돼지는 어디가고!
올해가 정유년이라는 걸 감안한걸까요, 아니면 대한민국에 보내는 메시지였던 걸까요.
아무튼 조류공포증인 저만 갖는 불만은 아닐 겁니다.
<모아나>의 씬스틸러는 단연 ‘코코넛 해적단’입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대한 오마주가 분명한 이 귀요미 해적단은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을 선사했습니다.
캐릭터 사업을 한다면 아마 가장 잘 팔릴 것 같네요. 저도 욕심이 납니다.
남자주인공 ‘마우이’는 인민들의 팔꿈치 ‘더 락’ 그 자체네요.
목소리 캐스팅에 폴리네시아권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노력을 보였는데, ‘마우이’는 ‘더 락’ 이상이 없죠.
그나저나 ‘더 락’ 이 양반 정말 잘 나가네요.
이번에도 여지없이 단편 애니메이션이 에피타이저로 제공됩니다.
<Inner Working(내적갈등)>이라는 이 단편은 <인사이드 아웃>의 오장육부 버전 같네요.
어쨌든 짧은 시간에도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디즈니’와 ‘픽사’의 작품을 즐겨 보신 분들은 <모아나>를 보면서
<인사이드 아웃>과 <도리를 찾아서>에서 소개된 단편 <라바>와 <파이퍼>를 떠올리셨을 것 같네요.
모아나의 아메리칸 스타일이 별점을 자꾸 깎아먹네 ★★☆
첫댓글 직접 쓰신건가요...?
수준높은 글 정독했습니다
'욱여넣다' 는 '우겨넣다'의 오타 같네요^^
'욱여넣다'가 맞아요^^
@Nashty* 정말이네요 저도 이제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엔 우겨넣다로 알았어요^^;
개척하는 원주민.. 영화 보는데 재밌음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가지 않았던게 여기에서 오는 위화감 때문이었을까요. 글 재밌게 봤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뭔가 거슬리죠.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재밌게 봤어요. 돼지가 여행을 같이 못한다는게 아쉬웠지만 닭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웃었습니다 ㅋㅋㅋ 귀여워요
저는 닭이 귀여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ㅎㅎ
우와 대단하시네요 !!안목 영화매니아수준을 넘어 오타구 !! 오타구는 나쁜말이 아닙니다
저도 픽사오타구입니다 ^^ 책을 쓰고있는 십타구가 되다 출판사에서 안받아주네요 ㅠㅠ
오타구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