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오빠!!!!"
마음이 끌리는대로 하라고 충고해준 애란이 덕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나. 세상에 나처럼 단순한 애는 아마 없을 거라며
고개를 흔드는 애란이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서 싱글벙글 떠들다가, 아로하한테 걸려 온 전화에 급 반가운 목소리로 전활
받았더니 피시식 웃는 아로하다. 하루종일 연락 안 했던 건 난데 왜 이제 전화하냐며 앙탈을 부리는 내게, 다른 사람들처럼
'너는 했냐??' 라고 절대 따지지 않고 바빠서 연락 못 했다며 미안하다고 말 하는 착한 사람.
"오빠 나 오늘 애란이랑 소아네 집에 놀러가! 근데... 남자도 온데!!!"
"야.. 너 미쳤냐?? 그걸 뭐하러 얘기해???"
아주 당당하게 남자 얘기까지 하는 내게 팔꿈치로 툭 치면서 미쳤다고 면박주는 애란이. 그리고..
-그래? 오빠도 오늘 여자 만나는데.
"누구???"
-비밀.
"그런게 어딨어!!!"
-왜?
"나 내일 약혼 안 해!!!"
-진짜???
"응."
-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야!!!!"
약혼을 안 한다는데 말리긴 커녕 그냥 알았다고 하는 나쁜 놈 때문에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니, 큭큭 웃으면서 다 장난
이라고 말하는 아로하. 어이가 없어서 씩씩대긴 했지만 이쯤에서 그만두지 않았으면, 당장 회사로 달려갈 뻔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레몬 한조각 입에 물고 통화를 하고 있으면.. 나를 신기한 눈으로 함참 바라보다가 자
기도 살짝 입에 대보더니, 이건 정말 먹을게 못 된다는 듯 바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켁켁대면서 아예 던져버리는 애란이.
그런 애란이를 한 번 째려봐주고 침대 위를 기어서 버려진 레몬을 들고 다시 내 입 속으로 넣으면, 더럽다고 나를 욕하면서
그냥 외면해버린다.
"오빠. 내일 우리 약혼식에 누구누구 와??"
-아무도 안 와.
"엥?"
-그냥 우리 식구끼리 밥만 먹기로 했는데. 아직 얘기 못 들었어??
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난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호화롭고 거대한 약혼식을 바랬는데. 뭐임.. 아무도 안 온다고?
그냥 우리 식구들끼리 밥만 먹는다고??? 그럼 반짝반짝 드레스도 못 입고, 공주처럼 꾸밀 일도 없겠네!?
"그게 뭐야!!! 그게 무슨 약혼식이야. 나 안 해!!!!"
난 지금 거의 울기 직전이였다. 어쩐지 왜 내일 당장이 약혼식인데 특별히 전해주는 말도 없고, 모임에 갈 때처럼 드레스에
대해 상의도 안 하고. 난 그냥 아빠가 내일 아침 되면 깜짝 선물로 짜잔- 하고 예쁜 드레스 들고 와서 놀래켜줄지 알았는데
아니였어. 머엉...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속상해.
"아빠 미워.."
-지애야.
"왜.."
-너 아직 학생이잖아~ 아직 학교도 졸업 안 한 어린 애가 벌써 약혼한다고 소문 나봤자 좋을 거 없는 것 같아서
오빠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많이 실망했어?
"오빠 미워.."
-미안해. 대신 결혼식 때는 우리 지애가 원하는대로 다 해줄께.
"...."
-응???
그냥 밥만 먹을거면 약혼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거라는데 계속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대신, 정말 결혼식 때만큼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할 거라며 모두가 부러워하게끔 해다라고 말 한 나. 그럼 또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당연하지' 라고 말해주는 아로하 덕분에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들뜬 목소리로 계속 통화하다가 방금
전화를 끊었는데, 12시 말고 10시까지 들어오라고 말 하는 아로하 때문에 오늘 내 귀가 시간은 또 두 시간 앞당겨졌다.
근데.... 얜 내가 남자랑 논다고 분명히 말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가????
"원래 못 가게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못 가게 하면, 또 못 가게 한다고 난리칠 거면서!?"
"그래도!!"
"진짜 항상 느끼는 건데, 너네 서방님 너랑 사귀는 거 보면 참 신기해. 이건 연애를 하는게 아니라
도를 닦는 기분일 거야 아주."
"그건 무슨 뜻이냐??"
"너처럼 까다로운 애는 없다고!! 이런 애 뭐가 좋다고 결혼까지 한다는 건지 원."
"너 말 조심해! 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랬어."
"누가??"
"우리 아빠가."
"미친. 아빠들이 그렇게 말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오늘 우리는 5교시 밖에 안 했는데, 빌어먹을 예고는 무슨 8교시까지 한다고 해서 집에서 놀다가 슬슬 밖으로 나온 우리.
오랜만에 네일아트 하러 샵까지 가는 길에 애란이와 티격태격하며 사탕 하나씩 까먹고 도착한 네일샵. 원래는 도트 무늬로
하려고 했는데 애란이가 여름 다 지나서 무슨 땡땡이냐며 뭐라고 하길래 그냥 잘 티 안나게 파스텔 색으로 손 끝에만 프렌
치 네일을 하고서 드디어 소아네 집에 도착한 우리.
벨을 띵동- 하고 누르자마자 달려 나와서 문을 벌컥 열어주는 소아를 보고, 꼭 이산가족 상봉한 사람들처럼 껴안고 호들갑
을 떨다가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깐 몰랐던 소아의 옷차림이 너무 사랑스럽다.
"꺄악. 완전 귀여워!!!"
"뭐야?? 어디서 났어??? 나도 나도!!"
"내가 그럴 줄 알고 너네들 것도 미리 준비해놨지!"
"진짜????"
"응!! 쫌만 기다려!!"
우리를 쇼파 위에 앉혀놓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3초만에 다시 뛰어 나와,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분
홍색 키티 잠옷을 우리 앞에 내미는 소아다. 그걸 보고 더 흥분해서 소리 지르며 빠르게 갈아입는 애란이와 나. 긴 바지에
반팔인 잠옷인데 나한테는 아주 딱 맞고, 애란이한테는 조금 짧고, 소아한테는.... 완전히 바닥을 쓸고 다닐 기장. 실제로
발등까지 반이나 가려버린 탓에 너무 귀여워서 웃고 있으면 입을 씰룩거리면서 쇼파 위로 풀썩 앉는 소아.
"괜찮아 괜찮아! 넌 짧아서 더 귀여운 거야!!"
중학교 때부터 셋이 같이 걸어다니면 항상 혼자만 푹 꺼져있던 탓에, 키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았던 소아. 팔짱을 끼고 앉아
서 통통한 볼에 바람을 넣고 귀엽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길래 같이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쪽씩 바지를 접어주는 우리. 너
무 귀여워서 동생삼고 싶은 친구다. 아무리 평소에 투정이 많고 툴툴대는 나도 소아 앞에선 항상 언니처럼 행동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던 나. 가끔씩 위로받고 싶은 날 '언니한테 뽀뽀해봐' 하면 볼에 뽀뽀도 해주는 사랑스러운 친구.
"소아야!! 나 근데 오늘 일찍 가야 돼."
"왜???"
"잘난 남자친구가 집에 10시까지 안 들어가면 죽여버린데."
"너네 서방님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
"맞아. 로하 오라방님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뭐야 너네들.. 아로하 좋아해???"
"아름다운 분이시지."
"웃을 때마다 뿅 갈 거 같애."
나란히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서 열심히 발을 튕기며 얘기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난 나. 갑자기 위험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아로하를 사모하는 여자들이 둘이나 있었다니... 머릿 속에서 적색 경보가 삐용삐용 울리면서
정신이 멍해진 나. 이러다 뺏기는 거 아니야????
"아참! 오늘 우리집에 내가 좋아하는 애도 초대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저렇게 말 하는 소아 때문에 다시 귀가 번쩍 뜨인 나.
"좋아하는 사람???????"
"응!! 오늘 너네들한테 보여주려고."
"뭐야!!!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어?????"
"응??? 응.. 좋아하는 사람."
아담하고 귀여운 여자가 와서 꼬리 살랑살랑 흔들면 그 매력이 아주 치명적이라는 걸 잘 알기에 앞으로 둘이 못만나게 해야
겠다고 몹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에 급 반가워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 그런데 애란이
는 이미 알고있던 사람처럼 별 반응이 없다. 그냥 고개만 끄떡끄떡하면서 살짝 미소짓고 있을 뿐.
"누구야?? 잘 생겼어???"
"응. 엄청."
"와!! 조심해 소아야 애란이가 탐낼지도 몰라!"
"헉..."
"뭐래 진짜!! 아무리 임자있는 남자 꼬시는게 내 특기라도 친구 남자는 안 건들여 왜이래!!"
"꼬셔서 넘어오는 남잘 못 봤는데 무슨 소리야??"
"야!!!"
애란이가 흥분해서 소리치는 동시에 '띵동-' 하며 울리는 초인종 소리. 2초간 정적이 흐르다가, 동시에 '왔다!!' 하며 침대
에서 튕기듯이 일어난 우리 셋. 좋아하는 사람이 온다더니 일어나서 머리랑 옷매무새를 다듬고 살짝 긴장한 얼굴로 나 어떻
냐고 물어보는 소아에게 예쁘다고 말해준 뒤 다같이 거실로 나갔다.
잠깐만!! 하며 콩콩콩- 뛰어가서 빨리 문을 열어주는 소아와, 손에 뭔가 잔뜩 들은 비닐 봉지를 하나씩 들고서 차례로 들어
오는 남자 애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들어오는 김태양을 보고 살짝 당황한 나와. 똑같은 잠옷을 입고 있는 우리 셋을 보
고 벙찐 남자애들... 한 명은 저번에 나이트에서 봤던 김태양 친구고, 또 한 명은 오늘 처음 보는 애다.
"쩌기 젤 뒤에 들어오는 애 있지?? 걔가 내가 말한 애야."
갑자기 내 귀에 대고 귓속말로 얘기하는 소아 때문에 너무 놀라서 표정이 싸악- 굳어버린 나. 소아가 좋아하는 남자가 김태
양이라고??? 어제 내가 좋다고 나한테 키스하던 그 김태양이... 소아가 좋아하는 애라고...??
"안녕."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내 앞으로 와서 인사하는 김태양 때문에 의아하게 날 바라보는 소아와 애란이. 후우... 어떡하지?
뭐라고 말 하지?? 그냥 오늘은 얌전히 집에나 있을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 걸. 괜히 왔다는 생각에 후회를 하면서
인사대신 그냥 어색하게 한 번 웃곤 딴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나.
"아 맞다...!! 나 원래 오늘 약속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다."
"무슨 약속?"
"아민이랑 짱구는 못말려 보러가기로 했는데..."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 그거 아직 개봉 안 했잖아. 내일 개봉하는데?"
헉... 오늘 개봉하는 날 아니였나???? 저번에 명탐정 코난 보러 갔을 때 짱구는 못말려 예고편 보고, 흰둥이 엉덩이에 지구
를 날려버릴 엄청난 폭탄이 달려있다길래 무지 보고싶었었는데... 아무튼, 나도 못 외운 제목을 줄줄이 얘기하면서 아직 개
봉 안 했다고 콕 찝어서 말하는 김태양 때문에 갑자기 뻘쭘해진 나. 거짓말하다 딱 걸린 샘이다.
"나도 그거 보고싶었는데, 내일 나랑 같이 보러 갈래??"
"어...???"
이러지마 김태양. 지금 소아가 보고있단 말이야... 소아가 너 좋아한다고 했단 말이야... 소아가 보는 앞에서 내일 같이 영
화보러 가자고 말 하는 김태양 때문에 무척 곤란해진 나. 이렇게 구린 상황은 태어나 처음이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눈알만
굴리며 눈치를 보고있는데, 피식 웃으면서 내 머리를 살짝 헝클여주고 들고 있던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 놓으면서.
"유소아. 우리가 장 봐왔으니까 밥은 너네가 하는 거냐??"
"...응!! 너넨 쉬고 있어 밥은 우리가 알아서 할께!"
오늘이 처음이 아닌 듯, 아주 자연스럽게 소아 방으로 들어가는 남자애들과.. 동시에 쪼르르 달려가서 항의하는 우리. 방금
전 김태양의 일은 벌써 다 잊어버린 우리 셋 모두, 세계 최고 단순한 여고생들이였다.
"유소아 너 미쳤어?? 제 정신이야???"
"계란 후라이도 제대로 못 하는데 우리가 밥을 어떻게 해!?"
"그럼 어떡해!! 밥까지 남자애들보고 하라고 할 순 없잖아."
"왜!! 하라고 하면 되지 왜!!!"
"애란이 너 오늘 내 친구들 꼬시러 온 거 아니였어?? 남자는 요리 잘 하는 여자 좋아해."
"그건 그렇지만...."
"못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아... 젠장. 뭐부터 할까???"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봉지 세개를 하나씩 잡고 떠들러보는 우리. 하나는 잔뜩 술만 들어있었고, 하나는 죄다 간식거리였
으며, 마지막 하나는 동시에 미친 거 아니냐고 바로 불만을 토해낼 정도로 어이없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가지 야채와
어패류. 그리고.... 꽃게.
"꺄악!! 얘 살이 있어!!!!!!!"
별 생각없이 계속 끄집어내다가 마지막에 꽃게를 보고 안 그래도 가슴이 철렁했는데,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서 움직이는 걸
보고 기겁하며 냅다 집어더지고 애란이한테 쏙 안긴 나. 처참하게 바닥을 뒹구는 꽃게들과.. 내 비명 소리에 놀라서 뛰쳐나
온 줄 았았던 남자 애들이 갑자기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한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정말 미친 듯이...
쥐새끼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내가 바닥으로 집어던지는 동시에 식탁 의자 위로 껑충 올라간 소아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
며 날 다독이는 애란이. 그리고... 오늘 처음 보는 놈 하나가 꽃게를 들고 다가와서 다시 내 앞에 들이대며 장난을 치길래.
움찔하며 쫄아있다가 놈이 돌아서는 그때 주먹으로 사정없이 등짝을 확 갈겨버렸다. 퍼억-
"짜증나!!!!"
"윽... 손 졸라 매워!!!"
"너 누가 나한테 친한 척 하래!! 너 나 알아????"
"응, 알아."
"뭐???"
"뻥이야."
"이씨."
애란이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소심하게 한발짝 나가 발로 놈을 밀어버리면, 아주 살짝 밀었는데 뒤로 넘어지려고 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다시 서는 놈.
"와. 이 여자 하는 짓 왜 이렇게 귀여워!? 확 깨물어주고 싶다 너!!"
"눈독 들이지마 내꺼야."
갑자기 자신의 친구 얼굴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내 앞으로 다가와서 입술에 뽀뽀하는 김태양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나. 이런
맙소사. 진짜 맙소사... 이럼 안 되는데! 역시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소아가 김태양을 좋아한다는 걸 몰랐으면 몰라
도 알아버린 이상, 자꾸만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소아를 쳐다보게 되는 나. 눈이 마주치고.. 마치 자기는 괜찮다는 듯이
슬픈 눈으로 웃어주는 소아를 보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금방 날 따라나온 김태양에게.
"너 경고하는데!! 자꾸 나한테 그런 짓 하지마."
"그런 짓이 뭔데?"
"막 뽀뽀하고....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특히 소아 앞에선!!!"
"왜???"
"그건 니가 알 거 없고. 아무튼 너!!! 경고야."
"경고?"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나 너랑 친구 안 해!!"
"나도 너랑 친구 하기 싫어."
"뭐???"
"바보~ 안 들어가?"
"난 갈 거니까 너 혼자 들어가. 택시!!"
난 빠르게 택시 한대를 잡아세워 냉큼 앞좌석에 올라탔고, 그런 날 갑자기 밖으로 끄집어내는 김태양. 내가 '왜!!!' 하며
째려보자 여자 혼자 앞에 타는 거 아니라며 뒷 좌석에 앉혀주고는 만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문까지 닫아주는 놈이
다. 창문을 내리고 이게 뭐냐고 물으면, 묘하게 웃으면서 필요할 거라고 말하며 여유롭게 손을 흔들고 먼저 사라지는 놈.
뭐야?? 내가 거진가???? 혼자 속으로 꿍시렁거리면서 택시 아저씨께 목적지를 말 하고 핸드폰을 꺼내 소아에게 문자를 보내
는 나. [미안해 소아야 나 먼저 갈께..] 하지만 내가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오지 않는 답장. 그리고 약 10분만에 도착한 아
로하네 회사 앞에 내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띵- 하고 문이 열리면... 그 안에 타고있던 아로하
네 아빠가 날 보고 왠지 당황하는 눈치.
"아저씨!!"
"어~ 우리 지애 오랜만이구나."
"네!! 지금 퇴근하시는거에요??? 오빠는 오늘도 늦게 끝난다고 하던데!!"
저 속엔 왜 아들보다 아빠가 더 일찍 퇴근하냐고, 아들 힘들게 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 어쩔 땐 정말 가족보다
더 가깝게 오래 알고 지낸 터라 내 뜻을 금방 알아차린 아저씨도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로하
그녀석이 일 욕심이 많아서 그런다며 변명까지 하신 후 내일 보잔 말을 마지막으로 개인 비서와 함께 먼저 자리를 뜨셨다.
어릴 때는 집에 못난 아들만 셋이나 있어서 나만 보면 예뻐 죽겠다며 친 딸처럼 귀여워해주시고, 내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부터는 나같이 통통튀고 애교많은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하시더니.... 결국 내가 진짜 며느리가 되네!! 사실 어릴 때까지만
해도 류랑 나랑 사이도 좋았고 나이차도 얼마 안 나서 둘이 잘될 줄 알았다고 했던 어른들. 그런데 왠 걸.. 제일 나이 많은
큰 아들이랑 엮여서 처음엔 양쪽 집안에서 다들 많이 놀라워하셨다.
히히히...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이제 내일이면 진짜 약혼 하는 건가???? 아무리 말뿐인 약혼식이라지만
어쨌든 약혼은 약혼이니까. 처음엔 싫다고 그렇게 튕겼었는데 이젠 설레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 났었는데 하루
남았다고 이제 떨린다. 이러다 또 밥 먹다가 체하는 거 아닌가 몰라...
"오빠!!!"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퇴근하고 없는 시간이라 복도에서부터 뛰어가며 힘차게 문을 열어제끼니.. 문을 등지고 앉아
창 밖을 보고 있던 아로하가 내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 회전 의자를 빠르게 돌려 날 보고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오늘따라 날
아주 격하게 반겨주신다. 아예 내 앞으로 뛰쳐나오는 아로하.
"꼴통!!!!"
"우와. 로또 맞았어?? 오늘 웬일이야???"
"너 옷이 왜 이래?? 이거 잠옷 아니야???"
잠옷이란 말에 고개를 숙여 내 옷을 보고는 정확히 5초동안 멍때리고 있다가 바로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나. 대박이다... 양말도 안 신고 알록달록 여러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는 내 발꼬락과, 급하게 뛰어나오는 바람에 내가 신고
갔던 운동화 대신 소아의 삼선 쓰레빠를 신고있는 나. 그것도 까만색 바탕에 하얀 선마다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으로 칠해놓
아 유치하기 짝이 없었고, 옷은 또 분홍색 키티 잠옷...
내가 여기까지 이러고 왔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아까 아저씨가 날 왜 그렇게 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서 창피한데. 이런 와중에 생각나는 건, 내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필요할거라고 말해주던 김태양은... 알고 있었으면서
도 나한테 말을 안 해줬단 말이지!!!! 다음에 보면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아까 내 미안하다는 문자에도 답이 없
었던 소아에게 전화가 걸려와 힘 없는 목소리로 전활 받으면, 내 말을 끊어먹고 다다다 얘기하기 시작하는 애.
"여보세."
-지애야!!!! 그 잠옷이 아무리 맘에 들어도 그렇지 그건 집에서만 입는 건데!!
그리고 니가 신고간 그 슬리퍼 내 옆 집 동생 거야!!
"소아야......"
-태양이 말로는 택시타고 갔다면서!? 돈은 있었어???
"응. 걔가 주더라... 완전 감사하다고 전해줘. 다음에 보면 죽일지도 모르니까 내 눈 앞에 띄지 말라고 해."
-응!! 어디야???
"나?? 니가 웃는 거 보면 뿅 갈 것 같다던 그 분 회사."
-벌써?? 오라방님이 뭐래?? 예쁘데???
우습겠지 예쁘겠니????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소아 때문에 갑자기 더 서러워져서 왜 이렇게 늦게 전화했냐고 질질 짜면
서 막 따져댔더니, 한눈에 딱 봐도 잠옷인 걸 보고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잠옷인지도 모를거라며, 먹히지도 않는 위로를 해
주는 소아. 핸드폰을 방에 둬서 문자 온지도 몰랐었고, 처음에 김태양이 혼자 들어와서 난 어디갔냐고 물으니까 능청스럽게
뭐 살게 있다며 슈퍼에 갔다고 구라를 쳤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후로 거실 쇼파에 앉아서 심각한 시사 프로그램 재
방송을 틀어놓고 미친놈처럼 계속 웃고있길래 왜 저러나하다가, 올 때가 됐는데도 내가 안 와서 닥달하자 결국 사실대로 털
어놨다고... 완전 사악한 놈이다. 꼭 죽여버리겠어!
전화를 끊고- 창피해서 고개도 못들고 있는 내 앞으로 앉더니, 분명 지도 처음엔 놀랬으면서 이젠 예쁘다고 울지 말라고 말
하는 아로하. 나 왜 몰랐지???? 이 건물 안에 붙어있는 거울만 해도 몇 갠데. 나 분명히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봤는데도
전혀 이상하단 생각을 못했다. 몇 번이나 봤으면서도 방정맞게 뛰면서 무심결에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나. 심지어는 엘리베
이터 안에서 어디 흐트러진데는 없는지 거울을 보며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었는데.... 꼬르륵.
아, 왜!!!!!! 오늘따라 왜 이렇게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나는 거야 정말!!!!!! 가지가지한다 홍지애.
"밥 안 먹었어???"
"으응.. 배고파."
"이그. 지금 이러고 못 나가니까 밥 시켜줄께. 뭐 먹을래?"
"짬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드디어 둘의 약혼식이네요. 뭐 결거 없지만 ;;
채서린의 정체와 라희 엄마가 누구인지는 천천히 밝힐 예정이구요. ㅋㅋ
이제 곧 추석인데 ㅠ 전 결혼하고 처음 있는 명절이라 무지 긴장된다는..
[방금 밥 먹고 바로 치킨 먹었더니 완전 배불러 죽겠어요.. ㅋㅋㅋ]
암튼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도 많이많이 달아주세요 ♡
첫댓글 재밌어요 ~~
ㅋㅋ 재밌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당~~
오홋, 라희 엄마 궁금하네요 , !!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
라희 엄마 ㅋㅋㅋ 으아아. 어서 밝혀야하는데 그것이.. 언제쯤 밝혀야 좋을지 아직 감이 안 잡힌다는 =_= 암튼 기대해주세요 ㅋㅋㅋ
와우 ㅎㅎ 결혼하시구 처음 있는 명절이면 살짝 긴장두 되시겟네용?ㅎㅎ 부럽당..결혼두 하시궁..흐흐 ㅎ 라희엄마의 정체 빨리 알구싶어용ㅎㅎ담편두 완전 기대할게요^0^ㅎ
아 저 지금 완전 긴장하고 있다는 ㅋㅋㅋㅋ 이러다가 명절날 가서 실수만 하는 거 아닌지 =_= ㅋㅋㅋㅋ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
아..로하랑 무사히 결혼해라!!!!!!ㅜㅜ
ㅋㅋㅋㅋ 과연 무사히 할 수 있을징... 지켜봐주세요 ㅋㅋㅋㅋ
ㅋㅋㅋㅋ잘 봤어요. 로하 마음을 모르겠어요....
로하의 마음 -0- 지애가 많이 혼란스럽겟죠? ㅋㅋㅋ
ㅋㅋㅋㅋ잘 봤어요. 로하 마음을 모르겠어요....
드디어 약혼식 ㅋㅋㅋ 다음편 기대할께요~
넵넵 감사합니다 ㅋㅋ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용~ ~
뒷애기들이 궁금해지네요 ㅋㅋ 담편두 업쪽부탁해요
ㅋㅋㅋㅋ 넵. 감사합니다~~ 담편도 기대해주세용
완전기대되요 라희엄마랑 채서린여자의 정체 궁금해요 ㅠ ㅜ
ㅋㅋㅋ 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 아 지금 밝혀야될 것들이 그것 말고도 너무 많은데... 뭐부터 밝혀야할지. ㅋㅋㅋㅋㅋㅋㅋ
푸하하하하하 ㅋㅋㅋㅋㅋ 지애 너무 귀여운거 같아요 ㅋㅋㅋ 소아도 귀엽구~ㅋㅋㅋ 나도 소아같은 귀여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ㅠㅠ 흑흑흑 ㅋㅋㅋ 그나저나.. 라희 엄마.... 과연 누구일까요...ㅋㅋㅋ
ㅈㅓ도 소아같은 친구 있으면 진짜 동생처럼 엄청 예뻐해줄텐데 ㅋㅋㅋㅋㅋ 아아아 역시 라희 엄마가 ㅋㅋ 제일 궁금하시군요 ㅋㅋㅋㅋ
2편보고왓어요!!ㅋㅋㅋㅋㅋㅋㅋ그나저나라희엄마랑채서린의정체가젤궁금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 ㅠㅠ ㅋㅋㅋ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ㅋㅋㅋ
라희엄마!!!! 넌 누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 ㅋㅋㅋㅋㅋㅋㅋ 미리 말씀드릴 수 없어서 답답하고 죄송할따름 ㅠㅠ
이소설추천해준친구한테 라희엄마가 누군지 다들었어요 ㅠㅠ ㅈㅅㅇ;;;; 너무궁금한 나머지 ....
엄뫄야. ㅋㅋㅋㅋ 그래도 끝까지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얘기들도 많으니까 앞으로도 기대부탁드리고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ㅋㅋ 그리고 추천해주신 그 친구분도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ㅋㅋㅋ
키티잠옷에 알록달록한 발가락 ㅋㅋ 귀엽네요
ㅋㅋㅋㅋㅋ 집에 있는 키티 잠옷을 상상하며 ㅋㅋㅋ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