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비롯한 우리 이사늙 식구들 중엔 과거 태지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태지가 떠난 공허한 가슴에 어느날 이승환이라는 엄청난 뮤지션에 새로이 눈을 뜨고 새로이 드팩민이 되신분들, 많이 계시죠?
오늘 문득 집에 있는 서태지 고별 영상집을 들추다 옛생각이 나 몇자 적어봅니다.
이승환의 팬페이지에 태지의 얘기를 적는다 해서 돌던지실 분 안계시죠?^^
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었죠.
그리고 그 일주일전쯤 태지의 은퇴 소식에 사회엔 한동안 일대 파란이 일어나기도 했고. 태지의 팬들이 연희동 자택에 찾아가 울며불며 일으키는 농성에 그곳 주민들이 한동안 고역을 치루기도 하고...
저역시 그런 팬중에 하나였죠^^
중2때 태지를 알고 사춘기 시절의 소녀들이 그랬듯이 제게도 태지는 삶의 큰 버팀목이며 어쩌면 살아가야하는 이유이기 까지도 했으니까요.(심한가?^^)
그랬던 제게 태지의 은퇴 소식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어요.
그해 1월 30일 저녁 전 급기야 부모님을 속인채 서울로 상경하는, 연락두절한채 하루 외박하며 친구와 함께 무작정 연희동 태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태지가 그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곳을 간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대로 방관하고 앉아서 그 큰일을 겪기엔 조금은 벅착었나봅니다.
어스름한 저녁 도착한 태지의 집은 마치 방금 엄청난 교전을 끝낸 듯 살벌하고 으슥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친구와 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태지의 집 대문을 한번씩 쓰다듬고는 쓸쓸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죠.
허탈하고, 우울한 마음에 전 집에 연락도 못하였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가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어머니는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고, 엄마보다 언니의 잔소리가 제겐 더 큰 시련이었어요.
오후 6시쯤 TV를 틀었고, 여지없이 뉴스에서 태지의 은퇴소식이 전해졌어요. 그 전만해도 반신반의하며 그다지 크게 슬퍼하고 크게 울지 않았던 저는 뉴스에서 태지를 보는 순간 처음으로 서럽게 울어버렸죠.
그때 언니가 들어오고, 절 잔뜩 벼르고 온 언니는 그런 제 모습에 화를 못내고 오히려 휴지를 뜯어주며 달래기가 바빴죠.
그날 처음 알았어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낼수 도 있구나.
세시간이 넘게 이젠 그만 울고 싶은데도 자꾸만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태지의 팬들이 단체로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었죠.
전 그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극단적인 행동까지 벌이지는 않았으나 앞이 캄캄하다라고 표현을 할까요? 아무튼 미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제 몸속에 70%의 물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
제 얘기를 듣고 웃으실 분도 계시겠지만 저나 다른 팬들에겐 태지가 단순히 가수의 의미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엔 어린 마음에 서태지라는 외모를 가진, 성격을 가진 사람을 좋아했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고 그가 가진 음악성과 천재성, 그런 것에 눈을 뜨고 진정 그 사람을 맘속으로 존경하고 의지했던 것이죠.
그런 그가 떠난다니... 물론 언젠간 그런 날이 올거란 생각을 못했던건 아니지만 준비조차 하지 못한 팬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어요.
그가 은퇴하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세간에 가장 큰 화제거리고 서태지를 들먹이는 것만 봐도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이 단순한 아이돌 스타로서의 몫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합니다.
물론 환님 역시 훌륭한 뮤지션임에, 달리 언급하지 않아도 아시는 거니까^^
97년 처음으로 접한 환님의 콘서트는 제겐 또 하나의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중간 중간 환님의 팬임을 언지하고^^)
태지가 은퇴하고 고별 영상집이 나왔었어요. 패션잡지 두께만한 책자인데 태지의 기획사에서 팬들에게 직접 카피를 받아다가 그 영상집 페이지 한장한장마다 글을 실어 만든 것이었어요. 영광스럽게 제 카피도 두페이지에 실리게 되었죠.^^
당연히 안뽑힐거라 생각하고 안 보내려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맘으로 부랴부랴 써서 보낸 것인데 친구에게서 제 카피가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거죠.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만해도 그 글이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슬프게 느껴졌었는데 오늘 문득 다시 읽어보니 왜그리 유치하고 촌스럽던지...
내용이 대충, 오빠로 인해 많은 걸 배웠다, 원망스럽지만 오빠들은 끝까지 사랑이란걸 보여주셨다... 푸하하하 말하고도 너무 쑥스럽습니다.
그땐 정말 여리고 순수했던거 같아요. 물론 지금도 이승환이라는 가수와 함께 그때의 일을 되풀이하며 가슴 설레이고 있지만 왜 그땐 무조건 적인 사랑있죠?
길가다가 레코드점에 태지의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 눈 의식하지 않은채 친구와 괴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고, 어쩌다 라디오 프로 자느냐고 놓치면 뭐 큰일이라도 난듯이 펑펑 울어대고... 그땐 그랬죠.
물론 지금의 맘이 그때보다 덜 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왠지 어쩌면 나를 위한 행동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승환님 데뷔시절부터 꾸준히 팬이었던 가족 여러분들은 참 행복하신 분들이세요. 언젠간 승환님도 태지 같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만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합니다.
한참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식구들께 너무 죄송스럽네요.
하지만 여러분도 한 가수를 맘속으로 진정 의지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것에서 제 마음 충분히 이해해 주실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