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 이렇게 말했다.(2) : 기시감 (旣視感, Déjà Vu )
기시감이란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에 대해, 마치 이전에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기시감의 원인이 뇌의 인식과정과 기억의 변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시감에는 예전에 이런 경험을 겪은 것 같은 느낌인 기체험감(Déjà vécu), 가본 적이 없지만 마치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것과 같은 기억인 기방문감(Déjà visité), 그리고 시각, 청각, 후각 등 모든 경험을 매우 친밀하게 느끼는 기확신감(Déjà èprouvé)과 같은 현상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일들이 역사에서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반복해서 일어났기 때문이며, 흔히 이런 기억들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다가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혜서인 전도서에는 ‘이미 있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전에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지금 일어나는 것은 오래 전에 결정되었다는 의미이고, 또한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제한되어 있어,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과거의 사례패턴을 답습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런 기시감을 보이는 말들을 ‘자라투스트라’는 ‘옛 율법서판, 새 율법서판’이란 제목으로 오늘 우리의 정치현실에 섬뜩하게 빗대어 들려주고 있다. 그 11 번 째 내용은 이러하다.
‘나는 과거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었어.
과거는 모두 버림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이용당하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그 세대의 광기도 함께 등장해.
이 광기는 이제까지의 모든 과거를
자신을 위한 발판으로 날조해서 변형시켜!
지독한 폭군이 등장하는 경우를 봐.
이런 인간은 악마같이 교활하지.
한편으로는 채찍으로 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근으로 먹여서
모든 과거를 변형시키지.
마침내 모든 과거는 그 폭군을 위한 발판이 되지.
과거에 이미 그 폭군의 ‘운명적 등장’이 예고되었다는 식이지.
이미 조짐이 있었고 날이 밝을 것을 알리는 새벽닭이 울었다는 식이지.
폭군만 과거를 이용하고 버리는 게 아니야.
폭도는 더 황당하지.
그래서 나는 과거가 더 불쌍해.
폭도들은 기껏해야 자기 할아버지 시대까지 밖에 기억하지 못하거든.
할아버지 시대에서 시간 끝! 더 이상 과거 없음!
과거는 모두 버림받아.
폭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오면
시간은 얕은 물에 처박혀 익사하게 돼.
폭도의 시간은 할아버지 시대에 끝나니까.
그래! 형제들!
새로운 귀족 집단이 필요한 거야!
폭도의 지배를 막기 위해서.
폭군의 지배를 막기 위해서,
새 율법서판에 새 율법을 이렇게 써 넣기 위해서.
‘고귀하게 되어라!’
귀족집단이 생겨나려면,
고귀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돼.
고귀한 사람들이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돼야 돼.
귀족도 마찬가지야.
많은 사람이 귀족이 될 때 <귀족다움>이 존재할 수 있지.‘
니체가 이 책을 쓴 때는 그가 39세가 되는 해인 1883년에서 1885년까지 3년간이었다. 이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간의 유럽 상황을 보면, 그가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1848-1849년간 유럽은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빈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와 전 유럽적인 반항운동의 총결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1848년의 유럽 혁명이다. 이 해는 기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으로 달성된 자유·평등의 근대 시민 사상의 정착이고 둘째로 영국 산업혁명의 진전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의 급속한 발전이며, 셋째로 노동자 계급의 성립에 의한 사회주의의 광범한 전개 등이 원인이 되어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 해였다. ‘광란의 해’ 1848년은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 넣었고, 빈 보수 체제를 붕괴시켰다. 독일에서는 3월 혁명이 일어나 시민혁명과 병행해서 국민적 통일 운동이 오스트리아·프로이센·서남 독일에서 전개되었다. 아마 이런 혁명의 환경이 이 글을 쓴 배경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참고로 이 단락의 제목이 말하는 율법서판이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던 도중,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10계명 돌 판으로서,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의 새 땅에 들어가 자유인으로서 지켜야할 율법을 일컫는다. 여기서 ‘옛 율법서판, 새 율법서판’이란 1848-1849 유럽혁명 전후의 ‘광란의 시대가치관’과 회복시켜야 할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을 말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1-2연에서 니체는, 광기를 뿜는 혁명세력이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현상을 고발한다. 왜 권력을 잡은 자들은 역사와 과거를 부정할까? 조지 오웰이 그의 소설 ‘1984’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할 수 있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사를 사학자가 쓰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지시로 씌어 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오류를 미리 아는 듯, 독일의 실증주의 사학자인 랑케는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본래 어떠했는지를 단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3연에서는 새로 등장한 교활한 폭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그의 운명적 등장을 위한 전주곡으로 해석한다. 4-5연에서는 혁명을 성공시키는데 앞장을 선 무리와 떼인 폭도들도 과거를 이용하고 버린다는 것이다. 폭도가 주인이 된 세상에서는 개인이 사라진다. 그래서 니체는 폐기된 과거의 문화와 가치, 그리고 일방적으로 청산의 대상이 된 과거의 시스템과 개인들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낀다. 마지막 6-7연에서는 회복의 시대를 고대하고 있다. 그리하려면 인간과 진실을 존중하는 ‘정신이 귀족인 개인’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율법서판에는 ‘고귀하게 되어라’써 넣어, 각 개인들이 훌륭한 자아, 훌륭한 개인이 되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믿음으로써, 정신이 귀족이 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다.
170년 전 니체가 쓴 글이, 오늘의 우리 현실을 예언이라도 한 듯, 우리에게 기시감처럼 무섭게 다가왔다. 폭군과 폭도의 지배를 막기 위해 우리 모두 정신의 귀족이 되도록 성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깨어있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