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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神의 한수 원문보기 글쓴이: 신의 한수
금정팔경 : 의상망해(義相望海) |
범어사 입구 양쪽에『금정산』『범어사』라 음각된 표시석이 말해주듯 범어사는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의 명패를 지닌 거찰답게 1,600여 년의 세월동안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면면히 담당해온 한국 불교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미래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사찰로서 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천년 노송과 비석들이 서 있는 길을 따라가면 일주문이 다가선다. 기둥이 일직선상의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이름했으니, 이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의 길을 들어서는 첫 관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천황문을 보고 왼쪽으로 따라 가면 대성암이 나온다.
여기서『의상대』까지 11km 이다. 고당봉에서 흘러 내려온 범어천의 물은 많은 바위틈으로 흘러 더욱 물소리가 유난히도 아름답고 맑았다.
산자락을 따라 10여분 올라가서 왼편을 보면 화강암 큰 바위무리가 어울려 하늘을 치솟고 산천을 덮고 있다. 이 바위를 타고 50m쯤 올라가면 6평 정도의 너럭바위에 다다른다. 여기서 왼편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옆에 가로 20m 10㎝, 세로 1m인 10여도 경사진 타원형 화강암에『의상대』라고 행서로 음각되어 누구나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사방이 트인 이곳의 전망은 남으로는 총총이 건물이 들어선 시가지, 그 너머 넘실거리는 푸는 바다가 아련히 보인다. 동쪽으로는 계명봉이 우뚝 솟아 있고 바로 밑에는 범어사가 품에 안길 듯이 산자락에 싸여 있으며, 멀리 오륜대가 있었던 회동 수원지가 호수처럼 둘러서 있다.
서쪽으로는 원효봉, 그리고 암석이 매우 기묘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원효석대』가 그 옛날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體有心造)를 깨달은 기상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였다. 북쪽으로는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이『의상대』를 지켜보아 마음이 확트인 최고의 전망대이다.
여기『의상대』는 꽤나 넓은 반석이 널려 있고, 바로 밑에는 천길의 벼랑을 이룬 요새에 듬성듬성 서 있는 곰솔로 둘러쌓인 절벽이다.
맑은 날 이곳에서 저 멀리 보이는 남해를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자연이 빚은 천하의 절경이다. 의상대사가 금정산에서 수도하시던 석대가 바로 이곳『의상대』이고 이 대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절경을 사람들은 의상망해라고 먼 옛날부터 불렀다.
의상대사에 올라 묵객들이 읊은 글은 많으나 오희창(吳喜昌)의 7언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천길이나 되는 높은 대가 속세와 떨어졌으니 / 절영도 높은 산봉우리는 성 밑에 있는 창이요 / 先神의 외로운 섬은 바닷속의 무덤이라 / 바람 맑고 잎 푸르니 삼산의 풀이요 / 물이 靑薺를 깨물었으니 만리의 구름이라 / 천지의 장관을 이제 비로소 얻었으니 / 휘호는 응당 그대의 긴 글이 있으리라"
고 말하고 있다. 그 당시『의상대』는 속세와 떨어진 금정산에 있어 신선이 살다가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천지의 장관인 절승지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이 대가 얼마나 아름다운 명당지, 하늘, 산, 바다가 어우러진 곳인가를 가이 짐작할 수 있겠다.
화엄대종사로서 의상은 이 대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수도를 하시면서 범어사를 창건하였다. 여기서 그 너머 보이는 남해를 보면서『의상대』에 얽힌 아름답고 숭고한 전설을 하나 소개한다.
의상스님이 당나라 유학을 위해 등주해안에 이르러 유리걸식 하던 중, 마침 어떤 청신사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 주인집에는 얼굴이 예쁜 선묘(善妙)아가씨가 있었다. 선묘는 스님을 보고 단번에 사랑을 하여 의상스님을 사모하게 되어 마음속에 정의 불꽃이 피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의상의 구도심은 쉽사리 변하지 않고 더욱 굳어져 갔다. 그는 마음을 굳게 다짐하는 한편으로 선묘녀의 정념을 불제자로서의 계를 잃지 않고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하는 것에 고심하였다. 선묘도 의상의 마음이 그토록 굳은 것을 알고 사랑을 갈구하는 자기의 마음이 출가사문의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의상 앞에 나아가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참회하고 '불제자가 되어 세세생생 태어날 때마다 스님을 통해서 최상의 불법을 배워 공부를 성취하려 하오니, 스님께서는 하루 속히 거짓 없는 깨달음을 이룩하여 불쌍한 저를 인도하여 주소서'라는 서원을 올렸다.
의상은 이 청을 받은 후 장안 종남산의 지엄을 찾아 화엄경의 높고 깊은 뜻을 전수 받았다.
그때 마침 신라의 승상(承相) 김인문이 사신으로 당나라에 들어오자, 고종이 그를 가두고 신라를 치려는 계획을 보이므로 급히 의상을 통해 본국에 알려 이 위기의 수습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의상은 급히 귀국하기는 하지만 자기를 위해 십여년 동안 뒷바라지 해온 선묘녀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묘녀는 때를 맞추어 해변으로 나왔으나 스님이 탄 배는 멀리 떠나가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저의 이 한몸 당장 죽는다 하여도 후회없이 의상대를 따르렵니다.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스님을 보호하여 무사히 신라에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그대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도운다더니, 그녀는 소원대로 용이 되어 스님이 탄 배를 호위해 무사히 신라에 도착하게 하였다. 의상은 귀국하여 부처님 법을 펼칠 큰 원을 세우고, 선묘의 서원을 가상히 여기 금정산 절경이 석대위에 천년 전 의상대사가 섰다.
여기가 바로『의상대』라고 불리는 천고의 경승지인 곳이다. 여기 절벽 석대 위에서 솔바람 마시며 자거나 먹지도 않고 대자대비 부처님께 발원을 피워 올리며 무릎 꿇고, 두 손 모우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곳이라.
이곳은 금정산 불국정토의 유서깊은 곳이다.
금정팔경 : 청련야우(靑蓮夜雨) |
범어사 매표소를 지나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예불드리는 목탁소리를 들으면서 오른쪽 숲속 연화교를 지나면『지장대도량』이란 큰 바위 탑이 우뚝 눈앞에 다가선다. |
금정팔경 : 대성은수(大聖隱水) |
범어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왼쪽으로 걷다보면 대성암이 나온다. 이곳은 범어사 계곡, 바위와 물이 어우러져 지표수보다 지하수로 흐르는 물소리가 자연적 화음을 이루어 아름답게 들리는 곳이다. |
금정팔경 : 어산노송(魚山老松) |
팔송에서 범어사로 들어가는 아스팔트의 산길은 꼬불꼬불한 46곡각을 이루며 양쪽으로 소나무 숲이 늘어서 있다. |
금정팔경 : 내원모종(內院暮鍾) |
금정산 기슭에는 범어사에 딸린 12암자가 곳곳에 진좌(鎭座)하고 있다. |
금정팔경 : 계명추월(鷄鳴秋月) |
범어사 어산교를 지나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이내 연화교가 나타나고 게명암으로 오르는 비탈진 길이 앞에 다가온다『계명암』이란 입간판 왼쪽에는 안내하듯 관세음보살 석상에 다소곳이 서 있다. 그 가파른 오솔길은 중안 계단을 33곡간을 지나면 일주문이 눈에 들어온다. |
금정팔경 : 고당귀운(高幢歸雲) |
해동 제일의 부산의 진산 금정산을 빼곤 부산을 생각할 수 없고 고당봉(高幢峰)없는 금정산은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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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팔경 : 금강일풍(金剛晩楓) |
범어사 계곡의 물이 줄기차게 흐르는 것처럼 산 또한 첩첩하게 쌓여 골을 이룬다. "파괴되지 않는 지극한 보배의 모습이여/ 그 본성은 항상 사물을 파괴할 수 있네/ 이로써 반야는 셋이면서 셋이 아닌데 비유하여/ 통(通), 별(別) 모두 다함이 제도합니다"는 금강에 비유이며,『반야 바라밀』은 법이다. 금강은 그 가운데 가장 존귀하기 때문에 금이 강한 성품이라는 뜻에서 금강이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