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은 됐으나 개봉이 지연된 까닭은?
일본영화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1998년 12월 <하나비>로 시작된 일본영화 개방 뒤 3년, 초반의 우려가 호들갑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최대어로 손꼽혔던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가 서울관객 68만명이었고, 디즈니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는 소문이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는 서울관객 14만여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렸다. <화이트아웃> <쥬바쿠> <고> 등 기대작들조차 저조한 성적으로 간판을 내리자, 일본영화를 서둘러 사두었던 영화사들은 개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또는 등급이나 자격조건이 맞지 않아) 창고에서 묵히고 있다.
지금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일본영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관객과의 조우는 언제쯤 가능할까. 대표적인 일본영화 수입사는 튜브엔터테인먼트, 동아수출공사, 대원동화, 디지털네가, 스타맥스, AFDF 등이다. 이와이 순지 작품들을 포함해 21편을 보유한 튜브는 올해 4편 정도 개봉할 예정이다. 지난해 여름 개봉하려다 보류한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과 애니메이션인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뱀파이어 헌터 D>, 곤 사토시의 <퍼펙트 블루>, 그리고 이와이 순지의 <스왈로우테일>이다.
영화제에서 수상하지 않았고,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극영화는 개봉할 수 없는 제3차 일본영화 개방안의 제한 때문에 <언두> <피크닉>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 이와이 순지의 다른 작품들은 4차 개방이 없는 한 개봉여부가 불투명하다.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2002 월드컵이나 선거를 기점으로 이벤트성 개방발표를 하지 않겠나 기대가 퍼져 있는 상태다. 원래 지난해에 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교과서 파동, 어업협정 파동 때문에 밀렸다는 말도 있다”며 4차 개방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을 전했다.
그러니 진짜 문제는 ‘개방’보다도 시장상황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는 영화제 수상작이고, 심의도 마쳤지만 관객의 일본영화에 대한 관심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묵혀두고 있다. 그 밖에 튜브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쓰카모토 신야의 <총알발레>와 <철남1, 2>, 미이케 다카시의 <표류가>, 사카모토 준지의 <新의리없는 전쟁> <멍텅구리> <패줄까보다> <얼굴> <철권>, 그 밖에 <탄환러너> <언럭키 몽키> <상어가죽남자와 복숭아여자> <고닌> <먼데이> 등도 가지고 있다.
스타맥스는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 <링-라센>의 감독 이이다 조지의 <어나더 헤븐>, 이토 준지 원작의 <토미에 리플레이> 등 공포영화 3편을 묵히고 있다. <토미에 리플레이>는 2000년 9월 개봉예정이었지만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는 바람에 개봉하지 못했다. 외계 생물체가 사람 뇌 속을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의 <어나더 헤븐>은 뇌의 뚜껑을 여는 등 잔인한 장면이 많아 18세 이상 관람가가 틀림없다는 자체 판단 때문에 보류하고 있다. 수입추천 불가판정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던 공포영화 <오디션>은 올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 “일본영화 시장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영화가 힘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묵힌다고 상황이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니,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개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입장.
AFDF는 <링> 시리즈의 서장격인 <링0>, 요괴를 퇴치하는 소녀의 SF무협판타지 <사쿠야>, 심령호러 <다중인격소녀 이소라>, 액션스릴러 <크로스 파이어>, 서스펜스미스터리 <사자의 학원제> 등 5, 6편을 갖고 있다. <링0>와 <사쿠야> 2편은 판권만료 시한 때문에 반드시 올해 개봉해야 한다. 한편 일본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배틀 로얄>은 경쟁이 붙었지만, 중학생들과 선생이 서로 죽인다는 설정 때문에 수입추천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50만∼60만달러에 이르는 비싼 판권료도 걸림돌.
개방만 하면 한국시장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됐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일신픽처스와 대원 C&A 홀딩스가 소유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마녀배달부 키키> <추억은 방울방울> <귀를 기울이면>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붉은 돼지>. 대원 C&A 홀딩스에서 수입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올해 봄,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겨냥하고 있다.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도 이미 심의를 마쳤다. <반딧불의 묘>는 “왜색이 짙어서 개봉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나중에 관객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졌을 때 개봉할 방침”라는 수입사의 판단 때문에 한참 밀릴 듯. <아키라> <스프리건> <에반게리온 1,2> 등도 대원 C&A 홀딩스가 보유하고 있지만, 당분간 개봉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