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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노래를 잘 들어보라(눅1:46-55)
12월은 자타가 공인하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여인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인류역사상 가장 복된 여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리아는 다윗의 혈통인 요셉의 아내였으며, 평범한 집안의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마리아의 친족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요19:25). 세례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사촌입니다(5절). 예수님의 다른 이모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였습니다(마27:56).
마리아는 아직 정혼만 했던 순결한 처녀였습니다.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달했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남사스러운 소식입니다.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처녀 마리아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반문하지 않고 수락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는 광영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전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마리아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마리아의 믿음이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천사로부터 성령으로 잉태하실 예수의 소식을 듣고 마리아도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역시 우리같은 질문을 합니다.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평생을 무자하고 나이 많고 늙은 엘리사벳도 임신을 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도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을 한지가 벌써 여섯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시고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혹시라도 갖게 될만한 의심덩어리를 제거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인 셈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고백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자기의 성령잉태 소식도 깜짝 놀라고 가슴벅찬 소식이었지만 자기 친족 엘리사벳의 잉태소식이 무엇보다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듣자마자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달려갔습니다. 축하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엘리사벳도 마리아의 잉태소식을 미리 알고 마리아를 축복합니다(42절). 그것은 엘리사벳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성령은 하나인 것입니다. 성령은 서로간에 통합니다. 거기에다가 한술을 더 떠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위로하고 축복합니다(44절). 마리아가 문안하는 순간 자기 뱃속에 있는 아이가 기쁨으로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장차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 예수를 영접하는 세례요한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첫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때 마리아가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이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노래입니다. 아주 짧은 노래지만 자기의 정체성과 자기신앙의 고백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마리아를 바르게 배우기 원합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를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마리아의 신분
마리아는 나이도 어리고 가난한 여인입니다. 다른 여인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자랑할만한 점이 없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여성이 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보실때에는 그 여인을 사용하실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제대로 알아아 합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여인들중에 마리아가 선택받은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마리아의 인성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보통 여인들보다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정직함과 순결함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는 인격적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품을 수 있는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여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아는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모르면 어디서든지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평생을 두고도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붙들리어 쓰임 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조건임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쓰임 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쓰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비천한 계집종”이라는 것입니다. 비천하다는 말이나, 계집이라는 말이나, 종이라는 말이 다 같은 의미에 속하는 말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앞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의 기준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리아는 영적으로 준비되어진 그릇이었습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담기 위한 그릇이라면 세상의 어떤 그릇보다는 순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더러운 그릇에 깨끗한 음식을 담을 수 없듯이 감히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면 평범한 그릇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는 지상의 최고의 정결한 그릇으로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영적으로 지혜로운 구도자였습니다. 지혜로운 구도자는 영혼이 맑고 순수합니다. 순결합니다. 그러기에 의심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습니다. 계산하거나 잔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당시에 처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정혼한 처녀에게 임신했다는 황당한 소문이 들어온다면 여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이곳저곳으로 알아보고 다니든지, 심지어는 우울증 내지는 자살까지 시도했을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당시에 정혼한 처녀가 임신했다하면 본인과 가정의 수치는 물론이거니와 남편에게 파혼을 당하고 심지어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소식입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요, 자기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어질 거룩한 영광보다는 지금 당장 죽음에 처할 수 있는 삶의 도박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겁을 내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구주 예수님을 담을만한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그만큼 정결한 믿음을 소유한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8절에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녀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순수하고 정결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결한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마리아라는 여인을 택하셔서 구주 예수님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셨는지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연이 없고 실수가 없으며 실패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을 잉태할만한 믿음과 인격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이런 마리아의 숭고한 믿음과 인격을 우상화시키는 인간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정말 순수한 구도자였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순결한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 의해 우상화되어짐이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아마도 천국에 있는 마리아가 통탄할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숭고하고 순수한 행동을 자꾸 미화시키고 폭로하여 영웅시하거나 우상시하는 못된 기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년말에 이름없이 빛도없이 사랑으로 이웃을 도우며 선행하는 자들을 추적하여 그들의 숭고한 행위에 먹칠을 하고 맙니다. 성경에도 이런 이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바울에게도 신처럼 숭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라서 거절하고 절대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만일 지금 카톨릭에서 숭배하는 성모신앙을 마리아가 보면 무어라고 할 것 같습니까?
카톨릭 교회와 기독교는 교리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크게 다르지만 특별히 성모사상에서 큰 거부감을 가져옵니다. 카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인류구원의 원인자라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해 구세주의 구세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마리아는 인류 구원사역에 아무런 협력을 한 것도 없고 조력한 일도 없습니다. 오직 다른이로서는 구원이 없고 우리를 구원하실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십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원의 충분한 종결자이십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전혀 죄가 없다는 회괴 망측한 주장을 합니다. 이른바 마리아 무죄설입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한가닥의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성경을 보십시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롬3:23).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마리아도 자신이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믿었습니다(46-47).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마리아를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마리아를 특별히 숭배하거나 받들지 않았습니다(마12:48-50). 눅11:27을 보면, 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서 마리아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천주교 신자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높이지 아니하셨습니다. 눅11:28을 보면,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를 높이셨습니다.
마리아는 결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카톨릭교회는 마리아 무오설을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마리아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아주 깨어지기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다만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담았을 뿐입니다. 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릇속에 든 내용물이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카톨릭 교회헌장에 보면 마리아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또 다른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심지어 마리아가 기도의 응답자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를 중보하실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음을 믿음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사람을 미화시키고 신격화시켜도 그것은 우매한 일에 불과합니다.
마리아는 그냥 존경스러운 여인임에는 틀림없으나 숭배할 대상은 아닙니다. 존경의 대상과 숭배의 대상을 구분하십시오. 그런데도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높이고 숭배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신성화해서, 마리아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림이나 동상을 보면, 예수님보다는 오히려 마리아가 주인공입니다.
제발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우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것을 믿는 자는 우상숭배자입니다. 마리아를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실제적으로 마리아의 언어적인 어원은 마라에서 나옵니다. 마라는 쓴물입니다. 더 이상 마리아를 신격화하지 마십시오. 이제 우리는 마리아에 대한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 다섯 개를 폭로하고 비판하며 고발합니다.
첫째, 마리아는 인간의 원죄에 오염되지 않고 태어났다. 둘째, 마리아는 일생토록 단 한번의 죄도 짓지 않았다. 셋째, 마리아는 평생토록 동정녀로 지냈다. 넷째, 마리아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다섯째,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통치한다. 모두다 성경에 없는 인간들이 생각으로 만들어낸 웃기지도 않는 교리입니다.
(2) 마리아의 신앙
사실 마리아는 정말 만인이 추앙할만한 믿음을 가진 여인입니다. 그녀는 정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경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히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매우 성경적입니다. 전혀 흠잡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어디서 배웠는지, 어디서 알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하나님을 정확하게 찬양합니다. 어찌보면 구약에 정통한 학자들보다 훨씬 더 정교한 믿음을 소유했습니다.
어찌 신학을 했다한들 이처럼 정확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이 여인이 학문적으로 준비되었다는 의미보다 는 하나님이 은혜로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채우시고 공급하셨다는 의도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왜냐면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이 엘리사벳의 축복을 받고 터져나온 그녀의 찬미를 보십시오.
엘리사벳의 임신소식을 전해듣고 문안드리던 갔던 마리아는 엘리사벳으로부터 두가지 축복된 칭찬을 듣게 됩니다. 하나는 마리아의 잉태의 복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믿음으로 수용한 마리아의 믿음의 복입니다. 그러자 화답이라도 하듯 마리아는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짧은 내용이지만 분해해 보면 정말 성경적이고 신학적입니다. 그녀의 찬양하는 내용은 구구절절이 하나님만 찬양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속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찬양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46-48절). 맞습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고 복의 통로가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49절). 사랑과 공의로우심을 동시에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50-53절). 그러면서 자기백성을 선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 짧은 노래를 통해 다 고백하고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고백하는 하나님을 정리해보면, 복주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 교만한자와 겸손한자를 분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항상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며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마리아의 신앙이 매우 성경적이고 신학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아의 신앙이 분명하고 확실하다고해서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우상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어느 교회나 사람이든지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본문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을 내 구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도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바랐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신성화하고 우상화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제일 계명과 제이 계명을 명백하게 범하는 죄입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는 마리아를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3) 마리아의 찬미
오직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는 없습니다. 이 땅에 어떤 것도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됩니다. 비록 부스러기 같을지라도 그분의 영광을 일정부분 빼앗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절대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찬양을 배워야 합니다.
마리아의 찬미가 자기 개인을 지나서 자기 조상 이스라엘에게로 확대됩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그분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종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지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택한 백성이기에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변함없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역시 마리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찬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자신의 몸에서 수태되고 태어날 것에 대한 자신의 영감에 찬 예언적 찬양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찬양은 장차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포함된 새롭게 회복될 모든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적용될 예언입니다. 아니 오늘 이 시간 이 복음을 듣는 우리에게 적용되어진 축복의 예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킴으로(눅2:19)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오시는 구세주를 낳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고 순종하는 신실한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도 각 개인에게 구주 예수님을 수태하기 원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마리아처럼 믿음과 인격으로 그분을 모실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 마리아와 같이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한 자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찬양속에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 대한 감사와 기쁨, 그런 자기를 부르시고 쓰시는 대한 감사와 감격을 고백한 것처럼 우리 모두다 약한 나를 들어 쓰시는 감사함을 결코 잊지 말고 예수님을 잉태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대통령이 한번 지나만 가도 유명한 지역이 되고, 하찮은 종이 한 장에 피카소가 그림만 그려도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더 비싸게 되고, 롱펠로우가 휴지조각에 시를 몇 줄 썼더니 그것이 육천불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사 쓰신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감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복을 받았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잉태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201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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