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관변사학자들이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식민사관의 논리를 만들어 전파시킨 후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당파싸움이라면 아주 치를 떠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박정희같은 독재자들은 민주체제하에서의 정당정치 조차도 당파싸움으로 치부하여 위대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온 국민이 일치단결한다는 독재체제를 옹호했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이 반일을 내세우는 일부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역사학자들도 당파싸움 망국론을 아주 꺼리낌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당쟁의 당사자 중에서 노론이 나라를 망쳤다고 하고, 특히 그 중에서도 노론 벽파을 개혁을 거부한 수구세력으로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간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라는 영조, 정조시대때 집권당이 노론입니다. 이들이 개혁을 반대했지만 영조와 정조가 노론 벽파를 제외한 남인과 소론 개혁세력과 힘을 합쳐서 노심초사 끝에 그 부흥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집권당이 반 개혁세력이라면 이들이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했을 덴데, 결과적으로는 개혁이 이뤄졌다는 뜻이니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북학파는 진보적인 개혁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놀랍게도 박지원을 비롯한 대부분이 노론벽파라고 합니다. 이들도 소중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중화(中華)는 조선만이 남았고 청나라는 중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동도서기를 하자는 태도입니다. 이런 소중화주의자들은 언뜻보면 골수에 젖은 사대주의자들로 보이지만 사실은 조선제일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중국이라는 대중화는 오랑캐인 청나라에 의해 사라졌으니, 소중화인 조선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문명국이며 중화이므로 조선의 문명이 세상의 표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색을 드러낸 진경산수화, 풍속화, 서예, 판소리등 조선의 특색이 드러난 문예부흥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당파싸움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당파싸움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노론벽파는 원칙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왕에 대해서도 목숨을 걸고 비판했고, 정치가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는데 일정 정도의 역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조 사후 순조때 노론벽파가 일망타진되고 정조가 육성한 노론시파의 일당독재가 시작되었고, 노론시파의 총수인 김조순의 후손들인 안동김씨 가문의 세도정치로 일개 가문이 정치를 독점하자 나라전체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견제받지 않는 어떤 권력도 위험하고 부패하기 십상입니다. 영정조 시절에 나라가 융성해진 것은 탕평책으로 모든 당파의 인물이 골고루 등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소중한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의견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권도 그렇고 각 정당도 그렇고 야당이나 비주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치하면 혼란이 오고 거의 대부분 실패하고 맙니다.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 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모두 일방적 패권주의를 관철시키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