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대개의 내 하루는 어머니의 찬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새벽예배를 다녀오신 어머니가 새벽밥을 지으며 부엌에서 부르던 찬송, 아주 늦잠을 자지 않는 한 어머니의 찬송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내 기억으로 어머니가 가장 즐겨 부르시던 찬송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찬송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난 사실 어머니의 찬송을 들을 때마다 불안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라는 찬송가 가사를 "있을 데 없는 자"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우리 집을 놔두고 있을 데가 없다니, 혹시 어머니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힘든 일이 있어 우리들을 놔두고 집을 나가는 것은 아닌가, 어린 마음에 괜한 걱정을 하곤 했다.
한 후배로부터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배의 아버지는 목회자였는데,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한 후 식사를 했단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후배에겐 궁금한 것이 있었다. '만닢'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이파리일까…, 후배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만닢이 내게 있으면 그 잎 따 가지고"하는 의미로 불렀던 것이다. 만닢은 어떤 상추처럼 생겼고 맛은 어떨까를 궁금해 하면서.
언젠가 시골에서 목회하는 동료 목회자에게서 교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회에서는 노인들을 위하여 속회예배를 따로 드리는데, 성경을 읽는 시간이면 돌아가면서 한 절씩을 읽는다.
대부분 글눈이 어두운 노인들인지라 성경을 읽다 어려운 글자가 나오면 글의 흐름을 따라 당신의 생각을 따라 글을 고쳐 읽는데, 그 분위기가 여간 진지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2장을 읽던 모임에서는 '에덴동산'을 '에로동산'이라 읽어 3장을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3장 1절 중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라는 부분에서 한 할아버지가 막히고 말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할아버지 진지하게 성경을 읽으시기를, "뱀이 가장 길고 더럽더라." 때로 사람의 실수를 넉넉하게 받으시는 하나님, 모처럼 너그럽게 웃으셨으리라.(2003.3.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첫댓글 잠시 입가에 미소를 띄고 머리를 식혔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많이 올려 주세요....감사합니다
너무나 재미있는 글 이어서 웃다보니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 이었습니다. 저도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제일 좋아 하거든요. 읽다보니 아,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읽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싫것 웃었습니다. 공감하며 재미나게 읽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유니게님의 이야기 인 줄 알고 어머니의 찬송소리에 잠을 깨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며 부러웠는데..주~~욱읽어 보니 재미있는 남의 이야기네요? 정말 이럴 수 있겠네요...아이들에게 찬송내용을 설명해 준 후에 함께 불려야 겠네요
정말 재밌는 얘기네요..한참을 웃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은데..담에 기억나면 저도 올려놓을께요.. 한희철목사님글, 오랜만에 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