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1년 10월 12일 : 집, 그 두 번째 발을 내딛다.
-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111-1번지 : 무작정 발로 뛰다. '앞을 보며'
1) 나, 집, 그리고 자연
겨울부터 여름까지 긴 공사가 끝나고 잠시 쉬는 동안 작은 평수의 근린생활시설 에 대한 작업계획이 진행되었다. 지역은 경기도 여주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경기 도지만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건물이 들어설 자 리 뒤로는 두 채의 오래된 한옥이 있었고, 주위로는 잘 가꾸어진 소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 꽃들이 있었다. 빨리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 기회는 곧 오게 되었다. 착공준비를 해야 되니 내일 점심때까지 여주로 오라는 대표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다음날 점심, 터파기를 하기위한 준비를 했다. 기준을 잡고 도면에 나온 위치에 건물 선을 그려 넣었다. 레벨을 보고 각 위치에 말뚝을 박았다. 18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다. 터파기 준비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사진에서 본 것과 건물, 나무들은 다 똑같았는데 뭔가 다른 느낌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 언가를 그 때 당시에는 바로 알 수 없었지만 그 곳에 지내면서 차차 알게 되었 다.
집과 현장까지는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출퇴근하기엔 먼 거리에 있어 대표는 건축주가 한옥 작은 방을 하나 내주기로 했으니 그곳에서 지내라고 했 다. 그 방은 2평정도 되는 구들장 방이었다.
10월을 가을날이라 낮에는 시원했지만 새벽과 밤은 추웠다. 산으로 둘러 싸인 곳 이라 날이 금방 추워졌고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그 공간은 낮에 봤던 좋기 만한 곳이 아니었다. 주위에 빛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집을 비추는 불빛 뿐 이었다. 도시의 환한 네온사인과 가로등만을 경험한 나로써는 그 어둠은 적응하기 어려웠 고 그 공간에서 사라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빛과 어둠, 도시와 시골. 한 순간에 사라진 나... 빛은 나를 비춰주며 나를 그곳에 있게 만들고, 어둠은 나를 안보이게 해 나를 그곳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 움직이는 것들에 의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시골은 한적한 길, 소와 닭의 울음소리, 부엉 이소리, 바람소리만 들릴 뿐 나는 없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공 간은 처음 경험하는 나로서는 나의 존재자체로서 그 공간을 인식하게 하는 과정이 었고, 그 공간을 인식하고 나의 존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데에는 많은 시간 이 걸렸다.
비록 나의 존재는 사라진 느낌을 받고 있었지만 어쨌든 저는 정신을 차리고 잘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하나둘씩 그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추운 날씨였 기 때문에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장작을 나르고 아궁이에 들어가게 자르고, 장작 에 불이 붙게 작은 불씨부터 피우고, 장작에 불이 붙고 가마솥이 타지 않게 물을 채워 넣었다. 타닥타닥... 불이 잘 붙었다는 소리가 이내 시끄럽게 들려왔다. 이 소 리는 주위의 다른 소리들도 들려오게끔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소리, 멀리 서 들려오는 부엉이소리... 이제는 이 소리들이 나를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체험은 그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처음 접하는 공간. 그곳에서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그 공간이 하나둘씩 보이게 해주고 그 공간에서의 느낌이 어떤지를 알게 해준 것은 그 공간에서의 체 험이었다. 아침을 체험하고 저녁을 체험하고 밤에 잠을 자기위해 아궁이에 불 을 지피며 주변을 살피게 하는 체험은 나의 삶과 공간과 자연(주변환경)이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공간이 그러한 것 같다. 그 공간 을 체험하고 경험하며 나 자신의 삶이 녹아있다면 더 기억에 남는 공간으로 더 좋 은 공간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의 체험은 한순간의 체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여 주에서의 두 달간의 생활 속에서 깜깜한 밤에 무서움을 견디며 불을 피우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도 빗소리를 들으며 불을 피우고, 어느 때는 불을 덜 피워 추위에 못 견뎌 새벽에 일어나 불을 다시 피우고 자고, 어느 때는 불을 너무 많이 피워 뜨거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하는 과정 속에서 나와 그 집과 그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2) 집과 자연
현장에서의 생활이 잘 적응되어가니 이제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보게 되었 다. 그러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한옥의 특징 중에 하나는 지붕의 용마루선과 처마선이 자연의 산세와 닮았다는 점에 있다.
이 네 장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옥의 지붕선들이 주변 산세와 많이 닮았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세를 닮은 처마선과 용마루선은 자연과의 어울림을 나타낸다.
여주 흔암리 주택 또한 한옥의 처마선과 지붕선이 산세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 여 18평의 작은 집이지만 지붕의 처마선을 다양하게 표현하여 자연과 어울리는 건 물로 만들었다.
1층이지만 층고차이를 이용해 처마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좌측의 층고는 5m 정도이고 우측의 층고 는 3m 정도로 만들어 층고의 차이를 이 용하여 처마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였고, 앞과 뒤의 높이차이 또한 30cm로 하여 다 양한 처마선의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5m의 높은 층고 쪽은 다락을 두 어 옛 한옥의 느낌을 살렸으며, 넓은 공간 활용에 도움을 주었다.
여주 흔암리 주택은 근린생활시설로 차를파는 공간이다. 차를 파는 공간답게 한옥의 느낌을 살리면서 현대식으로 지어진 집이다. 자연을 배워 한옥을 짓게 되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옥의 의미와 개념 을 따라 짓는 것이야말로 전통을 이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락은 옛 한옥의 느낌을 살렸으며, 넓은 공간 활용에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