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봉우리의 석불
반야용선(般若龍船) 위의 여래1), 경상남도 창녕 관룡사 용선대(龍船臺) 석조여래좌상(보물)을 이렇게도 부른다. 마치 커다란 배처럼 생긴 바위 봉우리 위에 돌부처를 모셨기에 그렇겠다. 관룡사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십여 분 올라 암봉(巖峰)의 서쪽 끄트머리를 돌아 오르면 용선대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 올라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동쪽 하늘과 산을 배경으로 한 부처의 등이다(사진 01). 여래의 뒷모습은 아주 듬직하고 의연해서 누구에게나 그것은 마치 중생을 극락으로 이끄는 영웅의 등판처럼 느껴진다.
창녕군은 대구광역시와 경북 고령군의 남쪽에 있다. 밀양시의 서쪽, 합천군의 동쪽이다. 합천과 창녕 사이에는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낙동강 동쪽 대구 달성 비슬산(1,083m)부터 창녕 화왕산(757m)에 이르기까지 험준한 산자락이 이어진다. 화왕산과 관룡산(754m) 사이에는 계성천 골짜기가 형성되었고, 그곳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봉우리 위에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이하 ‘용선대 불상’)이 있다.
용선대 불상은 통일신라 때의 석불이다. 이 상의 조성 시기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먼저 대좌 중대석 북면에 새겨진 “개원십(開元十)… 월입(月廿)… 성내(成內)….”라는 명문(銘文)과 불상의 양식, 항마촉지인과 시무외·여원인이 부분적으로 결합된 이상한 형태의 수인(手印) 등에 따라 8세기 전반에 조성되었다는 견해와 불상의 펑퍼짐한 육계, 조금은 도식적인 옷주름, 높은 중대석과 반구형 상대석의 형태를 갖춘 팔각연화대좌의 특징을 근거로 9세기에 제작된 상으로 분석한 의견이 있다. 더 나아가 용선대 불상 중대석의 명문은 관룡사의 설송 연초(雪松 演初, 1676-1750)가 사찰의 역사를 가공(加工)하기 위해 추각(追刻)한 것으로 보기도 하니, 과연 어느 말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돌부처는 아무런 말이 없다. 문자는 하나의 분별(分別)일 뿐이라고 말없이 설법하는 것일까.
용선대를 오르던 기억
나는 용선대에 세 번 올랐다. 지난해 이른 봄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한낮에 처음 왔었고, 비가 몰아치던 8월 여름밤에 다시 한번, 그리고 전국을 뒤덮은 초미세먼지로 하늘이 흐릿한 이 겨울에 또 이곳에 왔다. 처음으로 올랐던 날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사방에 줄줄이 늘어선 기암괴석이 선명하였고, 그 한가운데 나는 마치 배 위에 올라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몇 달 뒤 비바람을 뚫고 오르던 여름밤에는 그 모든 경관은 사라지고 오직 거센 바람과 따뜻했던 비와 축축했던 풀섶, 천길 낭떠러지의 두려움, 그리고 망설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동행했던 팔미호(八尾狐)가 있었다. 하얀 면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예쁜 여자로 둔갑한 여우는 작은 배낭을 맸다. 나는 소나무 뿌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산길을 염려하여 그녀의 발밑에 내 손전등을 비추면서 걸었다.
이윽고 용선대에 도착했다. 그나마 비를 막아주었던 나무 벽이 사라지자 사방에서 빗물이 우리의 온몸을 후려쳤다. 귓구멍 속으로 빗줄기가 마구 들이닥치니 요란했던 비바람 소리가 순간 용궁(龍宮) 속에라도 들어간 듯 멍하게 들렸다. 거기에서 돌부처는 모든 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래의 형상이라도 식별할 마음으로 호루스벤누 조명기를 비추었다. 그 빛에 반사된 수백, 수천 가닥의 빗자락이 흠뻑 젖은 석불 뒤에서 마치, 지금은 잃어버린 광배처럼 타올랐다(사진 02).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빗줄기 광배였다.
다시 용선대에서
이번에는 용선대가 내려다보이는 북쪽 능선 바위까지 가 보았다. 나는 누구에게나 인생이 화창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용선 위의 여래는 그곳에 오르는 모든 중생을 구원할 것이다. 햇살이 부서지는 늪에서도, 폭풍이 몰아치는 암흑 속에서도, 안개와 먼지가 자욱한 대해(大海) 위에서도 용선은 극락으로 항해한다(사진 03).
속세는 원래 지옥이다. 따뜻한 봄볕과 한가로이 떠다니는 조각구름, 바다의 잔잔한 물결은 겨우 한때의 망상이다. 작년 여름 감행했던 어둠 속의 야행(夜行)이야말로 진짜 삶의 모습이 아닌가. 망상과 올바른 확신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산은 구름에 잇닿아 경계가 사라졌고, 해는 저물어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허공으로 물이 차오르던 그날은 설렘과 고통이 한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제 그 어렵고 위험하며 뜨거웠던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하여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1)여래(如來): 부처의 10가지 이름 가운데 여실히 오는 자 또는 진여에서 오는 자를 의미하는 불교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