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팔봉산 [八峰山] 327m
강원도 홍천, 홍천강 중간 지점의 강변에 솟은 여덟 봉우리가 팔봉산이다.
팔봉산은 여름철 피서로 인기있는 홍천강과 함께 알려진 산으로 해발 309m에 불과하지만
크고 작은 여덟 봉우리가 팔짱 낀 8형제처럼 이어진 자태가 아름답다.
더욱이 숲 사이로 뾰족뾰족 솟은 암벽 및 기암괴석이 굽이굽이 감도는 홍천강의 맑은 물줄기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할 만큼 주위 경관이 수려한 산이기도 하다.
[산림청 선정 100 명산 선정사유]
산은 나지막하고 규모도 작으나 여덟개의 바위봉이 팔짱 낀 8형제처럼 이어져 있고
홍천강과 연접하여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음.
명산 100
인증용품 : 명산100타올, 패치(BAC, 10좌별패치, 광복70주년, 명산100 의류, BAC타올, BAC의류, BAC모자
포인트 : 327P
홍천 팔봉산 삼부인당 유래와 전설 이야기
옛날옛날옛적, 팔봉리 마을에 성격이 각기다른 시어머니 이씨 부인, 딸 김씨 부인, 며느리 홍씨 부인이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다정하고 행복하게 함께
사는 세 과부 삼부인집이 있었습니다.
그집 이씨 부인은 성격이 까탈스렀으나 인자하였고, 김씨 부인은 푼수끼가 많았으나 후덕하였고, 홍씨 부인은 정은 많았으나 다혈질의 소유자였습니다.
세 과부 삼부인집은 남편들은 다죽고, 오래동안 논농사를 짓지 못하고 살아가다 보니, 가세가 점점 기울어 가고 먹고 살기도 점점 어려워져서,
근근이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어느날부턴가 이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서 무엇하랴 하는 상념에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 과부는 지질이도 남편 복도 없고, 후사도 이을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죽음을 작심하고 지금의 팔봉산 제2봉에 올라
삼부인은 부둥켜 안은 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무심한 남편들을 향해서 목놓아 울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삼일만에 마을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앞에서 삼부인은 혼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 지축을 흐드는 커다란 산울림이 일어나고, 삼부인은 세차례에 걸처 살떨림의 지랄발광을 치고 난 후에 하늘이 열리듯 주변이
훤해지면서 비로소 농사를 주관하시는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그 옛날에는 신내림 받은 곳은 영험하고 상서로운 곳으로 여기던 시절인 만큼, 마을 사람들은 추렴을 하여 삼부인이 신내림을 받은
팔봉산 제2봉 꼭대기에 사당을 짓고 당제음식을 마련하여 주며 삼부인으로 하여금 그 사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당굿을 해마다 대대적으로 올리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해마다 사방 백리내의 농사는 대풍이 들어 살만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해부터인가 풍년이 계속되어 살만해지자, 교만해진 마을 사람들은 삼부인이 올리는 당굿을 하찮게 생각하며
당제음식도 마련해 주지도 않고, 소홀하게 대했습니다.
그러자 삼부인은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해 농사는 극심한 흉년이 들었고, 굶어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제서야 삼부인이 사라진 것을 깨닭고 겸손해진 사람들은 당제음식을 마련하고 무당을 불러 그 사당에서 삼부인을 위로하고
부르는 당굿을 대대적으로 올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홀연히 모습을 감춘 삼부인을 신으로 모시게 되었고 그 사당을 삼부인당이라 이름지어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당을 불러 삼부인당에서 매년 삼부인신을 위로하고 부르는 당제를 올렸는 데, 당굿할 때 무당에게 시어머니 이씨 부인신이
내리면 풍년이 들었고, 딸 김씨 부인신이 내리면 대풍이 들었고, 며느리 홍신 부인신이 내리면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살만해졌다고 사람들이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항 그때그때마다 렌덤스럽게(무작위로) 이씨, 김씨, 홍씨의 부인신 중에서
한 신이 강림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당굿을 할 때마다 내심으로는 김씨 부인신이 내려주기를 빌고 은근히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3월과 9월 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있고 그 때를 맞춰 많은 사람들이 당제를 보고자 찾아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