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마중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가을 들판을 걷는다. 만추가 아니라 들판이 정리되지 않고 푸르다. 개울을 건너 무성했던 뒷산을 오르며 가을 산의 정취를 만끽하려고 집을 나선 어제 삼포를 다녀왔다. 가을은 산과 물과 공기가 하나 되어 우리를 손짓한다. 텅 빈 가슴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가을맞이런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가을을 줍기 위해 교외로 달린다. 김유정 소설 가을 나그네의 현장 한들마을을 지나 자연이 한껏 멋을 부린 삼포 유원지를 지난다.
삼포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예전에 친지들과 천렵을 이곳에서 매년 했다. 어머님 웃음도 서려 있고, 무섭기만 했던 형님도 형수도 웃고 즐기던 가족 모임이 아니던가! 많은 분이 어느새 곁에 없다. 초대 친목회장을 하시던 막내 누님도 거짓말처럼 곁을 떠났다. 어느 다른 우주 어느 행성으로 이사라도 한 것이라고 그리움이 파고 들 때면 스스로 둘러대곤 한다.
설악산의 단풍이 7부 능선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민가를 벗어나 크막한 산 하나가 반긴다. 예전 보부상들이 서울로 넘나들던 첩경 捷徑이었다고 한다. 가을 벌레 소리가 합창한다. 언제나 청청한 잣나무 군단들이 진한 피톤치드를 잣나무 栢 氣를 퍼준다. 홀로 산길을 오른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요양원이 눈 아래 반긴다. 낯설다. 한들마을을 지나 맑은 개울 옆으로 어느새 집들이 여유롭다.
오랜 폭염과 가뭄으로 산길이 뼈대만 남아있다. 거칠다. 옆으로 물이 흐르던 계곡은 수석 전시장처럼 빼어난 돌들이 저마다 해맑은 얼굴을 으스대며 반긴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 가을바람 한줄기가 마중 나온다. 원시림 같은 낙엽송들이 음지에 군락을 이루며 모처럼 찾는 나그네에 가끔은 노란 눈처럼 내리며 반긴다.
거의 산 정상까지 쉬엄쉬엄 오른다. 만산홍엽이 붉게 타오른다. 예전에 갔던 곳까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오른다. 노송이 반긴다. 오래 손발이 되던 삭정이들이 뒹군다. 산에 습기가 메말라 송이 한 송이 없다. 예전 이곳 오르려 저 아래에 서면 송이 향이 얼마나 코를 자극했던가! 노구를 달래며 조심조심 하산하며 이 길로 한양에 가던 보부상의 마음을 헤아린다. 삼포가 눈 아래 그림 같다.
성큼 내딛지 못하는 다리에게 기회를 주어 아름드리 붉은 금강송 허리도 껴안아 보고, 피곤해 길게 누운 낙엽송 등에 올라타 보며 나무에서 놀던 유년기를 회상해 보기도 했다. 앞 뒷산에서 새들의 웃음소리를 갈바람이 수없이 퍼 나른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천년바위가 침묵의 세월을 이겨내며 반긴다. 인자하다. 백옥같은 바위가 산속에서도 자태를 뽐낸다. 한참을 눌러앉아 그리움에 젖는다. 가신 어머님은 어느 행성에서 막내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며 기원할까?
어디 그뿐인가! 혼자 피어 고고한 향을 발하는 가을 산에 상강霜降을 며칠 남긴 탓인지 부쩍 냉하지 않다. 산비탈에 모여 재잘대는 구절초의 쌉싸드름한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가을 산을 하산한다. 웃자란 잡초들이 다리를 껴안는다.
우지직하며 앞산이 하품한다. 사슴처럼 놀라기도 하고, 촉촉이 젖어 천년 암벽을 어루만지며 공생하고 있는 바위솔하고 무서움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내려오면서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발견한다. 서까래가 부러지고 다래 넝쿨이 완전히 정복한 폐가였다. 자세히 보니 동네에서 쓰던 상엿집이 아닌가! 괴괴한 산속에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순간 소름이 돋는다. 유년기 때 무섬증이 다시 활개를 친다. 공포 분위기가 파도처럼 밀쳐와 정신을 바짝 차린다.
유년기에 들은 상여 노래가 생각난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름차 워워. 상여 앞에 올라 요랑을 흔들며 선소리하던 고향 용순이 어르신이 생각났다. 백여 호가 살던 부촌이던 민가엔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고, 버쩍 마른 고라니 한 마리가 머루 넝쿨 속에서 후다닥 공간을 찢으며 겅중겅중 달려간다. 다시 깜짝 놀라 콩알만해진다.
산이 높으면 물도 깊다고 했다. 감돌아 암벽 아래로 흐르는 냇가에서 마른 손을 적신다. 갑자기 맹자가 주장한 호연지기 浩然之氣가 떠오른다. 산에서 풋풋하게 스며든 가을 산의 정기와 냇가에서 만난 촉촉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던 순간에 가을 산이 내게 준 기운은 단연 호연지기가 아닐까? 산에 오르면 참되지 않은 것이 없다. 구겨진 내 삶의 습성들을 교환하면서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
진정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한 넓고도 큰 기운을 느껴본다. 산을 벗하고 물을 아우르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하다. 가을 산을 올려다본다. 절대 자유로운 가을 나그네. 좋다. 양심에 개운치 못한 것이 있을까 돌아보아도 전혀 없다. 산 아래 모래톱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맹자도 공손추가 물었을 때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이라도 양심에 개운치 못한 것이 있으면 그 기운은 곧 시들어 버리고 만다고 했다. 어떤 얕은꾀는 내 사전에 기생하지 못한다.
서너 시간 오른 산속에서 나만의 호연지기를 느낀 것이야말로 내겐 행복이다. 호연지기를 이희승 국어학자는 하늘과 땅에 넘치는 기운으로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운 바가 없는 도덕적 용기이며, 사물에서 해방되어 자유스럽고 유쾌한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것을 잘 실천하는 자야말로 대장부 大丈夫라고 칭하였다.
오늘만은 졸장부인 내가 대장부가 된 것 같다. 모두 자기만족이 아닌가!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 느끼면 된다. 나 홀로 시대가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 가을 들판과 가을 산에서 저 혼자 또르르 도토리가 홀로서기를 한다. 하루가 값지다. 세월은 가고 너도 가고 나 또한 간다고 누가 노래하지 않았던가! 내일은 어느 곳에 가서 가을을 알밤처럼 주울까? 형님이 황동 그라지 송아지를 몰고 온 대룡산 감툰 고개를 넘어야겠다. 꺼져가는 자신을 충전하는 가을 마중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