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하나인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토마스 사도라고 하면, 직접 제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져보고서야 부활한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토마스 사도를 믿음이 부족하고 의심이 많은 제자라고 힐난하는 소리를 들어 왔습니다.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정말 하느님이 계실까 하고 한 번쯤 의심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단 한 번도 하느님 존재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그것부터 거짓말일지 모릅니다.
토마스 사도도 우리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는 의심을 마음속에 감출 수 있지만, 토마스 사도가 주님을 의심했던 사실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수천 년 동안 전해오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토마의 의심 때문에 당대인들도 남의 말만 듣고 무턱대로 믿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이 ‘무턱대고’가 아니라 ‘제대로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복음서의 증언대로 어떻게 보면 정말 토마 사도는 너무 합리적이고, 실증적이고, 보지 않고도 믿는 신앙과는 먼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얘기하면 모르면서도 아는 척, 잘 모른다고 하면 남들에게 괜히 창피한 거 같아서 아는 척, 감동하는 척 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벌거숭이라 하지 못하는) 이런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게 그의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답답하거나 궁금증이 나는 것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단순함’이 있었다고 할까요?
또 요한복음 11장에서 묘사되듯 예수님이 한창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가자 했을 때, 토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함께 가서 생사를 같이하자”고 제안하면서 다른 제자들을 충동합니다. 속없다 할 만큼 단순하게 말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양 극단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줍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믿을 수 있겠다”하는 확증을 요구하는 모습과, “당신은 바로 내 주님, 내 하느님”이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훌륭한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 이런 양면이 함께 자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표현이 “쌍둥이라 불리던 토마스”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다리 걸치기식, 혹은 이도 저도 아닌 얼치기식인 우리들에게 큰 위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그를 보면서 이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저것도 아닌, 그냥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뜨뜻미지근한’ 우리 신앙을 반성하면서, 그냥 그냥 넘어가는 꼴을 못 보는, 조금은 화끈하면서도 열정적인, 단순 명료한 토마 사도의 신앙을 배웠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