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상)
-참고도서 : 이순신의 바다(황현필, 2021년)
그 바다는 무엇을 삼켰나
-독후감 내용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내용이 요약 정리되었으며, 조정에서 간섭/통제한 육군과 수군의 합동작전 전투=장문포해전, 순천왜성전투 2전이 무승부였다.
.평가 :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일 전쟁 승리 직후 축사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 비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다짐=“해군의 다짐,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임진왜란 : 1592. 4월 - 1593. 6월
-1차 출정 : 1592 5. 4 - 9/거제도-진해-고성
1. 옥포해전(1승, 1592. 5. 7)=거제도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 도도 다카토라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28척 | 왜선 50척 |
피해 및 사상자 | 1명 부상 | 왜선 26척 침몰, 4,080명 사망 |
*전함에 올라탄 왜군들은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일부는 조총을 겨누고 또 일부는 일본도를 꼬나쥐고 조선의 함대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승냥이처럼 노려봤다. 조총의 사정거리 바깥에서 총알 수백 배 크기의 포탄이 왜군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으니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기에 바빴고 배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퍼내기에 급급하였다. 옥포에서 거둔 승리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첫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 합포해전(2승, 1592. 5. 7)=진해, 마산만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28척 | 왜선 5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5척 전파, 490여 명 사망 |
*판옥선의 포가 불을 뿜었다. 왜군들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갔다.
3. 적진포해전(3승, 1592. 5. 8)=고성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28척 | 왜선 13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11척 침몰, 2,840명 사망 |
*왜군들은 함선을 포구에 한 줄로 매어둔 채 마을에 올라가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전열이 정비되기 어려웠던 왜군들은 조선 함대를 보고는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배를 버려둔 채 산으로 도망쳤다.
-2차 출정 : 1592. 5. 29 - 6. 10/사천-거제도
4. 사천해전(4승, 1592. 5. 29)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 구루시마 미치유키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26척, 거북선 2척 | 왜선 13척 |
피해 및 사상자 | 이순신, 나대용 등 3명 부상 | 왜선 13척 전파, 2,600명 사망 |
*왜선 13척 중 1척은 경비를 섰고, 12척이 뭍에 정박해 있었다. 거북선이 처음으로 참전했다.
5. 당포해전(5승, 1592. 6. 2) = 통영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 카메이 고레노리 구루시마 미치유키(사망)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26척, 거북선 2척 | 왜선 21척 |
피해 및 사상자 | 불명 | 왜선 21척 전파, 2,820명 사망 |
*척후선이 보고하기를 당포에 21척의 적선이 정박해 있다는 것이다. 정박해 있다는 것은 근처에서 약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옥선 몇 척을 매복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6. 당항포해전(6승, 1592. 6. 5) = 고성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모리 무라하루(사망)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51척, 거북선 2척 | 왜선 26척 |
피해 및 사상자 | 13명 전사, 37명 부상 (사천, 당포, 당항포 통합) | 왜선 26척 전파, 2,720명 사망 |
*전라우수영 이억기의 판옥선 25척이 합류했다. 이억기 수군 매복, 왜선 유인 격멸
7. 율포해전(7승, 1592. 6. 7) =거제도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51척, 거북선 2척 | 왜선 7척 |
피해 및 사상자 | 13명 전사, 49명 부상 (사천, 당포, 당항포, 율전 통합) | 왜선 7척 전파, 500여명 사망
|
*약탈하고 있는 왜군 추격
-3차 출정 : 1592. 7. 6 - 7. 13/거제도, 진해
8. 한산도대첩(8승. 1592. 7. 8) = 한산도=통영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와키자카 야스하루 와키자카 사헤에(사망) 마나베 사마노조(할복)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56척, 거북선 2척 | 왜선 73척 |
피해 및 사상자 | 3명 전사, 10여명 부상 | 왜선 47척 침몰, 12척 나포 9,000여명 사망 |
*학익진 전법으로 견내량 밖 한산도앞 바다로 왜군을 유인함.
9. 안골포해전(9승. 1592. 7. 10) = 진해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구키 요시다카 가토 요시아키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56척, 거북선 2척 | 왜선 42척 |
피해 및 사상자 | 13명 전사, 104명 부상 | 왜선 20여척 침몰, 3,960명 사망 |
*왜군의 함포사거리 밖 거리에서 함포사격 공격
-4차 출정 : 1592. 8. 24 - 9. 2, 왜군의 본진인 부산포까지 완전히 쓸어버렸다.
*일본군 상황 : 한산도 패전 소식을 들은 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수군에게 2가지를 명령했다.
1. 바다 위에서 조선의 수군과 교전을 금하라.
2. 조선의 수군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라
*부산포로 가는 길목에서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까지 다섯 차례의 해전을 통틀어 30척 정도의 왜선을 침몰시켰다.
10. 장림포해전(10승, 1592. 8. 29) = 부산 사하구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6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6척 전파 480명 사망 |
*낙동강 하구 쪽의 장림포에서 도망가는 왜선 6척을 격침시킴.
11. 화준구미해전(11승, 1592. 9. 1) = 부산 사하구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8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8척 전파, 590명 사망 |
12. 다대포해전(12승, 1592. 9. 1) = 부산 사하구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5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5척 전파, 500명 사망 |
*부산 본영에 가까워지는 다대포에서 도망가는 왜선 8척을 격침시킴.
13. 서평포해전(13승, 1592. 9. 1) = 부산시 사하구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9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9척 전파, 1,000명 사망 |
14. 절영도해전(14승, 1592. 9. 1) = 영도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2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2척 전파, 1,200명 사망 |
*히데요시는 하늘이 두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순신으로부터 부산포는 반드시 지키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5. 초량목해전(15승, 1592. 9. 1) = 영도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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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4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4척 전파, 380명 사망 |
*왜선 4척이 전진해 왔으나 왜병 선원들이 바다로 뛰어내려 빈배가 되었다.
16. 부산포해전(16승, 1592. 9. 1)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구기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도요토미 히데카츠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74척 | 왜선 470척, 병력 7만명 |
피해 및 사상자 | 7명 전사, 25명 부상 | 왜선 128척 침몰, 3,834명 사망, 1,200명 부상 |
*1592년 음력 9월 1일이 부산포해전 날이 양력 10월 5일로
오늘날 부산시민의 날이 되었다. 왜군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후퇴했다가 거북선과 판옥선이 교차하면서 10시간 동안 함포사격함. 왜군은 생지옥임.
17. 웅포해전(17승, 1593. 2. 10-3. 6) =진해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전좌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구와나 치카카츠(사망) 하타 치카시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89척 | 왜선 100여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51척 침몰, 2,500명 사망 |
*조선의 수군과 의병, 승병의 연합부대가 제포(진해)쪽으로 공격하는 척하면서 주력군은 웅포왜성을 공격했다. 특공대가 웅포를 공격하면서 상륙작전을 함께 하는 양면 동시 공격했으나 웅천 왜성을 점령하지 못하였다.
-휴전 : 1593. 6월 - 1596. 7월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와 휴전
*1593년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됨.
18. 2차 당항포해전(18승, 1594. 3. 4 - 3. 5) = 고성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3도 이순신, 경우 원균 좌우 이억기 | 나가오카 다다오키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124척 | 왜선 31척 |
피해 및 사상자 | 없음 | 왜선 31척 전파, 4,100명 사망 |
*광양 현감 어영담 30척 판옥선이 포구를 들어가자 왜군들은 크게 동요하여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쳤다.
01. 장문포해전(1무, 1594. 10. 1) = 거제도
| 조선군 | 왜군 |
사령관 | 윤두수, 권율 3도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 시마즈 요시히로 후쿠시마 마사노리 |
함대 및 병력 | 판옥선 50여척 | 왜선 100여척 |
피해 및 사상자 | 육군 사상자 다수 | 왜선 2척 침몰, 190명 사망 |
.원균이 윤두수에게 월권 건의하여 공격하였으나 유성룡의 건의로 공격 중지하라는 선조의 장계 지시를 받아 전투를 중지함.
*이원익 : 원균은 결단코 기용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선조 : 원균은 마음은 순박한데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군사를 청하여 수전한 것은 원균이고 이순신은 따라간 것이니 공을 이룬 것은 실로 원균에게 비롯하였다 한다. 원균을 세우려는 답을 정한 선조 앞에서 현명한 신하들이 제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원균, 윤두수, 김응남, 선조의 모함과 간계에 의해 이순신 장군이 파직됨.
*일본의 간계와 원균의 모함(요시라-김응남), 원균과 도체찰사 윤두수 사돈관계, 윤두수와 선조 사돈관계
*1597. 2. 6, 이순신 파직 명령, 한양 압송, 4. 1, 의금부에서 풀려남.
6. 4, 초계 권율 도원수 진영 도착, 백의종군
*우의정 정탁 상소 : ....하명으로 문초를 덜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 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 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갚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저 명실 장군만 못지 않을 것입니다.
이순신의 바다 (상) 끝
첫댓글 애공 ~~ 선조대왕님 어찌할까요?
잘 정리된 자료입니다.^^*
아주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