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감사하게도 나이를 56살이나 먹었지만
나는 여전히 설이 좋다.
몇일씩 근무도 안하고 쉴수도있고,
평촌서,서울에서
큰아들과 작은 아들이 내려와 몇밤을 같이 보낼수 있다.
같이 음식을 먹고,지내온 일상을 얘기하고,
앞으로의 계획등을 서로 의논하기도한다.
설즈음에,추석즈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전에 계셨던 고향의 추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곤 한다.
비교적 부유했지만,
점점 부유함이 옅어져간 남원의 집이었기에
그 당시엔 약간의 불만과 초조함이
가족들 구성원간에 존재했던것 같다.
설 전날엔 전통시장 상인들처럼
아버지와 난 신바람나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양조장사업이 점점 힘들어져 평소에는 매출이 형편없다가도,
명절때는 제사상에 제주로 사용하는집들덕분에 정신없이 바빴던 기억이 있다.
종업원수가 사업의 부침에 따라
점점 줄어들더니 내가 대학다니던 시절에는
종업원없이 아버지가 직접 막걸리를 만들고,배달을 하셨다.
아들인 나는 아버지와 같이
명절의 바쁨을 같이 누렸다.
월평부락회관서 마이크를 잡고,
``막걸리가 왔습니다. 필요하신 가정에서는 속히 나오셔서 가져가세요....``
인화리서는 이장님이 대신 방송해 주기도했다.
대율.대신부락은 형씨 집성촌이기에
막걸리도 팔았지만,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하기도 바빴다.
풍촌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집이많아서
많은 매출이 일어나는 즐거운 동네였다.
많은 추억거리가 있는 고향이지만
오늘은 막걸리장사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고맙고,감사하고,
또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