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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에 덩치 큰 남자가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브이넥 티셔츠에 출입증 목걸이만 두르면 영락없는 <유령>의 권혁주 형사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를 보고 하마터면 ‘팀장님!’이라고 외칠 뻔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시청자들의 애를 태우던 드라마 <유령> 종영을 코앞에 두고 있던 날, 배우 곽도원을 만났다. 스튜디오가 떠나가라 호탕하게 웃던 그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스태프, 동료 배우들 한 명 한 명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다. 팀워크가 최고였다는 말을 거듭했던 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곽도원은 몇 달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함께 한 이들에게서 동료애 이상의 애틋함을 느끼는 정 많은 사내다. 비속어와 웃음이 뒤섞인 그의 말투는 조금 거칠지만 솔직하고 유쾌하다. 18년 동안 연기를 하며 기나긴 무명의 세월을 거쳤지만, 그에 대한 설움과 야망이 걸러진 그 자리에는 배우의 순수함이 남아있다. 소소한 트위터 멘션에 대한 얘기를 하며 너털웃음을 짓다가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말한다. 외롭다며 연애하고 싶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울부짖는 남자다. 그는 먹을 잔뜩 머금은 숱 많은 붓이 그려낸 굵은 선 같다. 앞뒤 재지 않고, 뚝심 있게 전진하며 자신의 연기 흔적을 명료하게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은 이제 막 무게 있는 점 하나를 찍었을 뿐인데, 그 다음 전진이 기다려진다.
베이지 셔츠 까르뜨블랑슈, 브라운 수트 지오송지오, 레이스업 슈즈 네오리즘, 안경 톰포드, 모자 루이 by 마르쉐.
사진 촬영 많이 어색해한다고 들었다. 오늘 어땠나.
어색하다. 술도 안 깨고. 사실 여기 오기 한 시간 전까지 술을 마셨다.
헉! 술 좋아하나?
환장한다.(웃음) 어제는 분위기가 좋았다. 아, 친구들이랑 축구 얘기하다가 광분하는 바람에! 브라질전 심판 판정 때문에 짜증 나서 ‘야, 더 마셔!’ 하면서 마셨다.
오, 축구 좋지.
음, 그렇다기보단 축구 얘기하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거지, 하하하하.
<유령>에서 술 마시고 ‘트윙클’ 부르는 신이 화제 아니었나. 술 마시면 어떻게 되나?
많이 웃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면 나도 모르게 작은 거에도 막 웃게 된다. 아마 감정이 예민해지고 격해져서 그러는 것 같다. (울기도 하나?) 옛날에는 부모님 얘기하면 울었는데, 지금은 안 운다.
소녀시대 태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소녀시대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웃음) 근데 태연은 예전에 라디오 방송 할 때 자주 들었는데 생각이 깊은 친구 같더라. 얘기도 무척 재미있게 하면서 노래도 잘하고 귀엽고. 전체적으로 팀을 이끌어 가는 힘도 그렇고, 매력적인 친구인 것 같다.
태연을 이상형으로 꼽은 게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될 정도다. 인기를 실감하나?
완전 실감한다. 드라마 파워가 장난 아니더라. 트위터 말고도, 일상에서 술자리나, 동네 지나갈 때 사람들이 많이 알아본다. 옛날 <범죄와의 전쟁> 때는 긴가 민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오~오~” 하면서 사인해달라고, 사진 찍자고 한다. 근데 내가 생긴 게 편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런가? 크크큭 쭈뼛쭈뼛하면서 요청하더라.
사실 초반에는 소지섭과 대립각을 세워서 악역인가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캐릭터인데, 이런 반응이 올 거라 예상했나?
전혀 몰랐다. 뭐, 중간쯤에는 사랑 받지 않을까 조금 기대는 했었다. 처음에는 지섭 씨와 싸우고 그러니까 욕도 많이 먹었다. 근데 내용이 진행될수록 친해지고, 소지섭을 도와주니까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좋아하는 것 같다.
권혁주 팀장이 사랑 받은 건 그 이유도 있겠지만, 송하윤과의 러브 라인도 한몫했다. 실제로 마음 가는 여자에게 어떻게 대시하는 편인가?
그냥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너 괜찮다, 애인 있냐, 나 어떠냐 이런 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한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밀당은 힘들어서 못하겠다.
<유령>의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정말 좋았다. 모두들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였고, 감독님이 애드리브하는 것도 많이 이해해주셨다. 사실 나는 대사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잘 못한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작가님한테, 일상에서 쓰는 말투에 맞게 대사를 바꿔도 되냐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더라. 내가 생각하는 권혁주 말투로 할 수 있게 양해해주셨다.
실제 성격도 권혁주와 비슷한가?
권혁주는 화를 낼 상황도 아닌데 쉽게 화를 내지 않나? 평소에 나는 그렇지 않다. 욱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안 한다. 아우, 개XX야! 이러면서, 뒤끝은 없는? 크큭. (남자다운 성격인 것 같다) 음, 남자다운 성격이 뭔지 모르겠다. 잘 참고, 다독이는 게 남자다운 거겠지. 난 욱하는, 그냥 한국 남자다. 양반답지 못한 천민 같은? 하하하.
‘미친 소’는 극이 진행되면서 생긴 별명인가?
아니다, 처음부터 극본에 있었다. 덕분에 캐릭터 잡기가 더 용이했다. 뭐, 미친 개보다는 낫잖나? 크크큭.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교회 누나와 친구들이랑 연극을 처음 봤다. <바쁘다 바뻐>라는 작품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더라. 환경미화원들이 등장하는 소시민의 이야기였다. 뭔가를 보고 울고 웃으며 감동한 첫 경험이었다. 그때 막연하게, 나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20살에 연극을 시작했지.
오, 근데 교회를 다녔나? 의외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 거냐? 크크크.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녔다. 지금은? 절에 가서 스님도 만나고, 제사도 지내고, 교회에 가서 기도도 하고, 신부님하고 맞담배도 피우고 그런다. 신의 존재? 물론 믿는다. 난 외계인의 존재도 믿는다.
그렇다면 톰 크루즈처럼 사이콜로지도 믿나?
아, 그건 안믿는다. 그 사람은 완전 미친X이지! 그것 때문에 이혼한 것 같다고 하던데. 에이, 그건 아니지. 그렇지 않나? 아, 정말 왜 그래~~ 그러면 안돼애~ 근데, 담배 피우면 안 되나? 살짝? 살짝 피우다 끌까?(웃음)
사실, 트위터를 보기 전에는 무뚝뚝한 성격일 거라고 예상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혼자 있는데 힘들 때,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의 ‘힘내세요’라는 한마디가 그렇게 힘이 되더라. 트위터를 하니까 모르는 사람이 ‘좋아해요’ 이렇게 멘션을 남기면 나는 ‘아, 한 명이라도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며 위로를 받는다. 단 한 줄이지만 힘이 되고 고맙더라.
하트도 연신 날리고 이모티콘도 다정하게 남기더라.
뭐, 받는 사람 좋으라고 하는 거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즐겁게 해주려는 거지. 나도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게,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사람을 통해 행복을 느낀 것이 계기가 된 거 아닌가. 별거 아니지만, 사람들이 연예인에게 멘션 받았다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행복해하니까. 그 모습을 보면 덩달아 나도 행복하다. 트위터는 시간 날 때마다 하려고 한다. 대본 볼 시간에도 트위터 보는 게 문제이긴 하다.(웃음)
연애할 때 애교도 많이 부릴 것 같다.
그런 편이다. 여자친구 있으면 “나 좀 사랑해줘~” 이러면서 주접도 잘 떤다. 사랑이 고픈 거지.
마지막 연애는 언제였나?
(잠시 침묵하며) 휴우… 그때 아마 호랑이하고 맞담배를 피웠지?
다정다감한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이 사람 빨리 연애 해야겠구나 싶었다.
아우, 하고 싶어어어어… 연애를… 장가가고 싶어으…! 근데 이제는 연애하기 좀 무섭다. 또 헤어질까봐.
결혼으로 붙잡아야지!
에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한다니까!!!???
대세 곽도원을 누가 거부하겠나? 한편, 유명해지니까 나를 좋아한다는 건가 싶은 의심이 생길지도.
아, 요즘에 이렇다. 속 얘기하며 만나는 사람이 사실 배우밖에 없지 않나. 근데 작품에 꽂아달라고 부탁을 받는다. 그러면 정말 짜증이 확~ 치민다. “내가 그럴 위치가 아니야”라고 얘기해도 믿질 않는다. 아우, 나도 감독님, 작가님, 대표님 앞에서 굽신거리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누굴 꽂아주냔 말인가!!
그만큼 떴다는 거겠지. <유령> 보면서 브이넥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헤어스타일도 잘 잡은 것 같고.
누군가 나에게 목이 짧고 굵으니까 브이넥을 입으라고 하더라.(웃음) 헤어는 초반에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스타일로 할지. 근데 촬영장에서 워낙 자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까 안 되겠더라. 그래서 헤어 만지지 말자고 했다. 그냥 머리만 감고 툭툭툭 털고 간 머리다.
드라마는 영화와 비교할 때 표현을 순화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제약이 많았을 텐데, 괜찮았나? 권혁주라는 캐릭터가 영화로 옮겨졌다면 욕도 엄청 많이 했을 것 같거든.
음, 욕 때문에 답답한 건 아니었고, 지금 내가 연기를 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고민이 됐다. 시나리오랑 대본을 보면 볼수록 캐릭터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바뀐다. 근데 그걸 볼 시간이 없더라. 정말 멘붕이었다. 사실 지금도 딜레마다.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많이 물어보긴 했다. 그냥 하라는 게 대답이었다. (웃음)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답이 뭔지 모르겠다. 답이 없는 게 연기라고 하니까.
드라마를 하게 된 게 인지도 쌓기 위함이라고 하던데,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처음에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물어봤다. 다들 기본적으로 드라마 일이 너무 힘들다며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서 힘든 거 참고, 그냥 인지도 쌓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크긴 크다. 근데 시놉시스를 들었는데 혹하더라. ‘이야, 이것 봐라 장난 아니네.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고…! 오~ 재미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기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건데 시청자들이 충분히 좋아할 것 같더라. 게다가 인지도까지 쌓이니까!
무명 시절이 길었다. 그럼에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게 한 당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재미다. 대본 보고 캐릭터 분석하고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무명 세월이 길어서 힘들지 않았냐고 하는데, 전혀! 연극하면서 무대 세트 만들고, 소품 만들고, 조명 설치하고 이런 것도 재미있었고, 무대에 서는 것도 재미있었다. 연극이 끝난 후 허탈함도 좋았다. 여자가 나를 힘들게 하면 했지, 연기가 날 힘들게 한 적은 없다.
곽도원이라는 이름이 가명이더라?
맞다. 원래 이름이 곽병규인데 소속사에서 발음하기 어렵다고 작명소에서 지어다 줬다. ‘도원결의’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뜻은 복숭아 동산이다. 사실 뜻풀이만 봤을 때는 별로였는데 부르기는 쉬운 것 같다.
곧 영화가 개봉하고,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다시 드라마를 할 생각은 없나?
지금 당장은 없다. 근데, 김형식 감독님과 함께라면 하고 싶다. 드라마의 매력이 확실히 있더라.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그 눈빛을 보면서 감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김형식 감독님도 일주일에 며칠을 잠 한숨도 안 자고 작업하지만, 배우들과 신 하나하나를 함께 고민하고, 동선까지 미리 파악할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다. 게다가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정말, 그 분이랑 다시 작품 하고 싶다.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점쟁이들>은 대놓고 코미디인데 귀신을 볼 줄 아는 스님 역이다. <회사원>은 소지섭과 나오는데 진지한 영화다.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와 소지섭을 질투하고 경계하는 직장 상사 역이다.
최민식의 <파이란> 같은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멜로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랑 멜로 찍는 상대 배역이 희생을 해야겠지? 크큭.
<유령> 촬영하느라 10kg이나 빠졌다고 들었다.
잠을 안 자고 일하니까 살이 저절로 빠졌다. 야식 먹을 시간에 잤다. 연기자는 기본 체력이 있긴 해야겠지만, 이번에 절실히 몸 관리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동네가 어린이대공원 근처라 만날 거기서 산책하고 조깅하는데, 더 해야겠더라.
혼자 사는데,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건 어떤가?
아, 강아지를 정말 키우고 싶다. 화이트 포메 라니언을 키우고 싶은데, 혼자 두면 우울증 걸린다고 해서 만날 사진으로만 보고 있다. 고양이는 무섭다. 고양이상 여자는 좋아하는데, 어흐~.
어?! 태연은 완전 강아지상인데?
그래? 그래도 난 태연이 좋아. 크크큭.
첫댓글 대세남 미친소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