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을 시작한 이후로 날씨예보에 아주 민감해졌다. 날씨에 따라서 일과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진짜 농부가 된 것도 같다.
여름 장마는 농장과 25분 떨어진 곳에서 사는 나를 수시로 농장에 보냈다. 비가 온다고 하면 천창을 닫았다가 그치면 열었다가를 반복했다.
어느 날, 블루베리 하우스 바닥에 물이 고였다. 날씨예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예보에 비소식이 떠서 달려가면 벌써 비가 다녀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천장의 창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자동개폐장치를 아직 설치하지 못했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을 피해서 가을에 설치하기로 했었다.
바가지와 찜통을 가져가서 하우스 바깥으로 물을 퍼 날랐다. 찜통에 물을 가득 채우면 둘째가 하우스 바깥으로 날랐다. 몇 차례 나르다가 생각났다. "여보! 이 물이 빗물이고, 블루베리 화분에서 빠져나온 약물이잖아요.""그렇지, 약물 맞지!"말수 적은 남편은 입열기도 귀찮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그럼, 이 물을 버릴 게 아니라 블루베리 화분에 부어줍시다. 물이 덜 닿는 가장자리에 주면 좋을 것 같아요."매사에 심사숙고로 행동이 느린 남편도 이번에는 좋은 생각이라며 서둘러 도구들을 찾았다.
바닥이 막힌 리어카에 물을 채워 블루베리 화분의 가장자리에 물을 줬다. 그 와중에 둘째는 장화를 신고 고인 물속을 왔다 갔다 하며 신이 났다."와! 여기서 물놀이한다."올여름에 휴가로 물놀이하러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농장일이 바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을 보니 그저 반가운 모양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그래, 여기서라도 물놀이해라."한 사람이라도 즐거운 일로 생각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어른이라는 나도 매사에 힘든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둘째는 모든 일을 놀이로 생각하니 현명한 일인지도 몰랐다.
여름 내내 몇 번이나 물을 퍼서 블루베리 화분에 물을 줬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또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단순한 작업이지만, 오랫동안 반복되는 작업에 힘이 들었다. 바가지를 움켜쥔 손, 팔목, 어깨, 허리, 발목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 아픈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감정이 저절로 거슬러 올라가 애초에 농사를 시작한 남편을 향한 원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무를 심기 전부터 자동개폐장치를 여러 번 언급했건만, 근처 농장에서 센서의 새똥 때문에 창문이 열리지 않아 블루베리나무가 피해 입은 사례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다. 천창을 닫지 못해서 물이 차는 일이 반복되자 겨우 '찬바람이 불면~'으로 시기를 늦춘 상황이었다.
기왕에 농사를 짓기로 작정했으니, 필요한 시설은 모두 갖추고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수확은 없는 데다 물색없이 목돈이 투자만 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편으로서도 천만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개폐장치를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 쓰고, 강의 듣고, 집안 살림에 아이 돌봄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형편이다. 어쩔 수 없이 정해진 농사일이야 예상한 것이지만, 하지 않아도 좋을 생고생을 해야 하는 내 입장은 사뭇 기막힌 일이었다. 산다는 게 예상대로만 되지는 않는다지만 농사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농사일의 절반은 하늘이 한다는 말을 실감한 여름이었다.
"수중 펌프를 사야겠네!""왜요? 비가 그렇게 많이 왔어요?""순식간에 엄청 쏟아졌네. 사람이 퍼낼 수 없는 역대급이야!"비소식에 농장으로 달려간 남편한테 온 전화다. 당장 수중 펌프를 사 왔다. 호스에 연결해서 블루베리 화분에 물을 주니 일이 훨씬 수월했다. 물이 들어 찬 통통한 호스를 끌어당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바가지로 퍼서 리어카에 담아 골목마다 끌고 다니며 몇 바가지씩 부어 주던 원시적인 노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예, 비 올 때마다 빗물을 받을까?"남편이 묘책이라도 된다는 듯 말을 꺼냈다."엥???"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