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성 안나, 성모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
1510, 패널에 유채, 168x112cm, 파리 루브르
요아킴과 안나는 늙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였다.
요아킴이 성전에 제물을 바치러 갔 으나 아이가 없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라고 여겨져 성전에서 쫓겨나 목 동들과 함께 광야로 가서 몇날 며칠을 기도로
지내다가 마침내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될 것 이라는 천사의 예언을 듣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난 주의 성 요아킴 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성전에 갔던 남편이 감감무 소식이니 아내는 얼마나 가슴 졸이며 남편을 기다렸겠는가?
그러나 그녀 역시 남편이 없는 동안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이를 갖게 되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던 그에게 천사 가 나타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임을 예고하였고, 또한 예루살렘 성의
황금 문에 가면 남편 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단걸음에 안나는 예루살렘 성으로 갔고 부부는 얼싸안 고 해후했다.
이렇게 해서 안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늙은 나이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 이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성모 마리아다.
성 안나에 관한 이 전설은 곧바로 그림으로 그려졌다.
천사가 성 안나에게 나타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장면, 예루살렘 성의 황금 문에서 부부가 포옹하며 기쁨의 재 회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성 안나가 성모 마리아를 출산하는 장면 등이 그림으로 그려졌 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도 성 안나를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를 함께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중앙에 정면을 향해 앉아 있는 여인이 성 안나다.
딸인 성모 마리아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는데 양의 등을 타고 놀려는 아기 예 수를 양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고 있다.
여기서 양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 시게 될 희생 제물의 상징일 것이다.
자식의 고통은 어떻게든 막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 이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성모 마리아 역시 아들의 험난한 운명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다 빈치는 이 그림에서 바로 이런 어머니의 인간적인 심정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성 안나는 그저 딸과 손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림의 구도는 삼각형 모양이다.
성 안나의 머리를 정점으로 하여 삼각형의 오른편은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그리고 어린 양의 머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도 덕분에 성 안나는 자신 보다 등치가 큰 딸을 무릎에 앉혀 두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결코 순탄치 못할 아기의 운명을 예고하려는 듯, 아름다운 초원이 아니라 척박한 바위 산이다.
그림의 배경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 물안개 가 자욱한 풍경이다.
독자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왠지 부드럽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빈치가 발명한 수푸마토라는 회화 기법 덕분인데 이는 사람이든 풍경이든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 리지 않고 희미하고 뿌옇게 그리는 기법으로서 인물이 보다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
다빈치 이후 모든 화가들이 즉각 이 기법을 전수받은 것으로 보아 이 방 식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혁신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빈치는 같은 주제를 그린 대형 스케치를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성당에서 며칠간 전시해 놓았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인파가 마치 거룩한 축제에 참석하듯이 줄을 지어 가서 다빈치의 스케치 그림을 감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빈치는 오늘날에도 가장 위대한 화가로 대접 받고 있지만 이미 당대에 가장 존경받고 칭송받았던 예술가였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가톨릭 신문 2009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