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결승4국에서 원성진에게 반집승 거두고 3승1패로 우승 6년 만에 명인에 재등극하며 대회 최다 13회 우승 신기록 작성
시대의 '권력자'만이 앉을 수 있었던 자리.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실권자가 아니고선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명인성이 다시금 절대권력자를 맞아들였다.
이창호 9단이 '현역' 명인이 됐다. 2003년 12월 15일 이후 꼭 6년 만에 다시 등극한 자리다. 하지만 타이틀 획득수로는 13번째 명인이다. 37기 명인전 역사상 한 번이라도 우승해 본 기사는 단 6명. 조남철, 김인,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이 그들로서 한결같이 '시대의 영웅'으로 활약했던 면면이다.
2003년 당시 이창호는 스승 조훈현과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 6연패를 이룩하며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다. 그러나 명인 자리는 이듬해 기전 중단이라는 곡절 속에 대회 최다연패를 노리던 그의 앞길을 끊어놓아 버렸다.
3년 만에 우승 상금 1억원의 거대기전으로 부활한 명인성 앞에 그는 더이상의 성주가 아니었다. 후배들의 성장에다 도전기가 아닌 선수권으로 거듭난 시스템도 입지를 줄어들게 만들었다. 결승 진출도 버거워졌다. 전기에선 3자동률재대국 끝에 결승 티켓을 놓쳤다. 쓴잔을 건네준 상대가 원성진이었다(원성진은 그후 강동윤에게 졌다).
공교롭게도 이창호와 원성진은 이번기엔 한 계단 올라서서 결승에서 맞닥뜨렸다. 이를테면 '재수' 뒤의 도전 무대인 셈이다. 1국과 3국은 이창호, 2국은 원성진의 손이 올라간 가운데 맞이한 결승4국. 결과는 겉으로 보기엔 아슬아슬한 이창호의 반집 승리였다(10일 바둑TV 스튜디오).
우승 결정국의 키워드는 '공격'이었다. 원성진의 실리노선에 세력을 그린 이창호는 하변의 모양과 연계하는 공격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려 했다. 공격은 여러 번에 걸쳐 이뤄졌다. 그러나 우세는 쉬이 잡히지 않았다. 원성진의 타개술이 돋보였다.
여의치 않자 집으로 돌아섰다. 그 과정에서 원성진의 느슨함과 과욕이 반상을 헝클어 놓았다. 우변에서 입은 손해가 치명상이 됐다. 그러면서도 265수 만에 반집 차이로 판명난 것은 이창호의 의문스러운 끝내기 탓이다.
종합전적 3-1의 스코어. 대회 최다우승 기록 경신과 더불어 1989년 첫 우승 이래 자신의 136번째 왕관을 썼다. 그중 국제기전은 21회, 국내기전은 115회. 이창호는 1억원의 상금을 보태며 올해 상금 총액 5억원을 돌파했다.
우승 상금 1억원… 시상식은 17일 강원랜드에서 특히 이번 우승은 지난 3월 KBS바둑왕전 우승(이세돌에게 2-1) 이후 4월 응씨배(최철한에게 1-2), 6월 춘란배(창하오에게 0-2), 7월 후지쯔배(강동윤에게 0-1), 8월 한국물가정보배(김지석에게 0-2)에서 곱씹어왔던 잇단 준우승을 아픔을 털어내는 전과이다. 이창호는 현재 세계대회 LG배 결승에도 올라 있다.
전기 우승자 이세돌이 휴직함에 따라 본선에 직행하는 시드를 받는 행운을 안은 이창호는 본선리그 B조에서 조2위(4승 1패)로 결선에 진출한 뒤 A조 1위 김승재(4승 1패)를 2-0으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올해 평년작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작성해 왔던 원성진은 명인전을 올 마지막 '농사'로 삼고 전력을 쏟았으나 우승까지엔 한 뼘 모자랐다. 같은 연구회의 동료들과 2시간짜리 연습바둑을 두며 준비를 많이 했다는 후문. 원성진은 3000만원의 준우승 상금을 받는다.
국내기전 중 최대 규모인 제37기 명인전은 지난 6월 국내 예선전 사상 최다인원이 참가한 통합예선전을 시작으로 6개월간의 장정을 치른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상식은 17일 강원랜드 호텔에서 열린다.
■ 제37기 명인전 결승5번기 최종 결과
대국
날짜
승자
패자
결과
제1국
12월 01일
○ 이창호 9단
● 원성진 9단
196수, 백불계승
제2국
12월 03일
○ 원성진 9단
● 이창호 9단
280수, 백1집반승
제3국
12월 08일
○ 이창호 9단
● 원성진 9단
331수, 백3집반승
제4국
12월 10일
● 이창호 9단
○ 원성진 9단
265수, 흑반집승
▲ 원성진 9단이 국후 대기실에서 해설 중인 방송 화면을 보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 반집 차이로 가려진 계가 후의 반면 모습.
▲ 두 기사는 손짓으로만 10분 정도 복기를 했다. 가운데는 명인전 해설위원 윤현석 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