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시대 동인 11월 부산모임
일시 : 2024년 11월 22일(금) 12:30~14:40
장소: 흑임자삼계탕 및 1층 카페
참석동인 : 강승철, 김성인, 김신, 남송우, 박영주, 이광호, 허성욱 (7명)
지난 5월에 김신 동인의 제안으로 부산에 있는 동인들이라도 매월 한차례 만나 삶을 나누기를 시작한 이래 7번째 예수시대 동인모임이었습니다.
모이는 시간도 이곳 법원과 검찰청 주위의 사무실에서의 점심시간을 30분 가량 지난 시간에 모여서인지 조금은 여유있는 분위기입니다.
영양가 있는 흑임자삼계탕으로 식사하며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식사비는 이광호 동인이 부담하였습니다.
식사 후 1층에 있는 카페의 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각자 음료를 주문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음료 비용은 김성인 동인이 제공하였습니다.
지난달 남송우 동인이 제안한 동인 각자가 돌아가면서 일정한 주제로 이야기를 꺼집어 내기로 한 것에 대해 오늘 모임에서는 이광호 동인이 '선교보고'란 주제로 서두를 시작하였습니다.
<이광호 동인의 모임 후 글>
세상의 근본 질서가 허물어지고, 교회 안에서조차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진 안타까운 시대가 되었다. 기독교적 모양새만 갖추고 있을 뿐 ‘말씀’과 ‘성례’와 ‘권징’을 통해 참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리석은 자들은 종교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세상 여러 곳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남은 자들’이 있어 그나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오늘 ‘예수시대 동인’ 모임이 있는 날이다(2024.11.22). 부산지방법원 부근의 어느 식당이 늘상 모이는 장소로 굳어져 있다. 그곳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교제하게 된다. 이번에는 나에게 발표할 기회가 주어져 관심과 기도를 필요로 하는 해외 선교지와 국내 여러 교회들에 대한 소개를 하게 되었다. 하양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에 내려, 부산으로 가는 ‘동해선’으로 갈아탔다. 약속 장소가 있는 거제역에 내릴 때까지 산과 들과 바다와 도시를 번갈아 보며 조용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감사했다.
나는 지난 몇 개월간 담임목사직 퇴임과 더불어 선교목사로 활동해 왔다. 교회에서 맡긴 그 사역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수 없으나, 금년 한해 많은 지역을 방문해 여러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 교제했다. 국내의 전국 각 지역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 흩어진 교회들을 방문했다. 가는 곳 마다 주일 공예배 설교를 하고 오후에는 다양한 주제의 특강을 했다. 또한 각종 모임에서 신학세미나를 인도하거나 한 주간의 수련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 특별한 기간 동안 전혀 예견치 못했던 숱하게 많은 귀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국내외의 여러 교회들과 지도자들을 만나며 보편교회의 다양한 실상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와 성도들이지만 제각기 처한 삶의 양상과 형편에 큰 차이를 보였다. 내가 초청받아 설교한 교회들과 강의를 한 대상이었던 성도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신앙인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세상에 흩어진 여러 교회들을 볼때 교회와 교회 사이, 성도와 성도 사이에 빈부 격차가 컸으며 교인들의 교육 수준과 일반적인 능력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났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박사들도 많이 있었다. 교인들의 직업 또한 다양해서 세속적인 관점에 볼 때 엄청난 차등을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서의 능력이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거나 평가될 수 없다. 즉 외견상 더 나아보이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 교회에서 더 필요한 인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상의 조건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 서울, 부산, 대구,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뿐 아니라 작은 섬인 욕지도, 소안도 등 전국 여러 지역을 다녔다. 무려 서른 다섯 교회 가까이 방문했다. 재정적인 미자립 교회도 많았으며, 어린이들이 하나도 없는 노인들만의 교회들도 있었다. 전체 교인들의 수가 목회자 가정을 포함해 열명 미만인 초미니 교회들도 많았다. 또한 도시와 시골, 섬 등 각 지역에 따라 일반적인 특성도 다양하게 차이나는 듯 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매주일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지속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렵고 힘든 형편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여유롭고 부유한 교회들보다 순수했다. 학벌이 높고 고상한 직업을 가진 교인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순수한 신앙을 소유한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 든 대체적인 생각은 높은 교육수준이나 윤택한 생활정도가 신학지식을 풍성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를 규정화하거나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내가 방문하여 함께 주일 예배에 참여한 교회들의 경우는 그러했다.
그리고 외국의 여러 교회들을 방문했을 때 느낀 감정도 한국 교회 가운데서 경험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금년에 태국 치앙마이, 베트남 호치민과 하노이, 키르기즈스탄의 비슈케크와 토크목, 일본의 나가쿠테, Z국의 SC, SA, SH, SZ, JZ 등 여러 도시들을 방문했다. 내가 방문했던 교회들과, 만나 교제한 성도들의 성격과 생활환경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들 가운데 사역하는 한국선교사들과 현지 지도자들도 제각기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교회들 가운데는 현지인 교회와 한국교민교회가 있었다. 한국 교민들이 모이는 교회에서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으나 외국인 교회의 경우에는 통역을 세워 설교와 강의를 해야만 했다. 여러 지역에 흩어진 많은 선교사들을 만나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며 선교지의 고충을 듣기도 했다. 또한 현지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며 교제를 나누기도 했다. 함께 공부한 이들과 함께 등산을 하기도 하고 바닷가나 큰 강과 호수로 나가 자연 가운데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한편 어려운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 겪게 된 성도들의 안타까운 형편을 들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복음으로 인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자가 있었는가 하면, 어린 아기를 둔 젊은 부인이 두 달간 감옥살이한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찡해 오기도 했다. 그것도 오래전이 아니라 불과 얼마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신앙으로 인해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크게 금이 간 성도의 가정도 있었다. 그런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며 안일함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아가 어떤 나라에서는, 전문인으로서 좋은 직업을 가진 자가 신앙이 발각될 경우 직장을 잃게 될뿐 아니라 퇴직금마저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엄청난 손실과 고통이 따를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을 보며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기 위해 몇시간씩 비행기를 타고와 한곳에 모여 며칠간 공부한 여러 형제들을 보며 감사했다. 그리고 K국에서는 한국인들이 세운 기독교 정신을 가진 Ke대학을 방문하여 큰 위로를 받았다. 그 학교에는 은퇴한 교수들이 자비량으로 섬기며 조용히 복음전파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예수시대 동인들 앞에서 선교목사로서 지난 수개월 동안 내가 경험한 얘기들을 부분적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것을 편안하게 얘기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 크게 성공한 친구들이지만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잘난 것도 가진 것도 없이 왜곡된 종교성에 빠져 자신을 착각하며 오만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돌아오는 기찻간에서, 예수님 당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저항하면서도 스스로 의인인 양 행세했던 바리새인들과,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온전히 따랐던 제자들의 모습이 차창밖에 오버랩되어 비쳐졌다.
<강승철 동인의 글>
오늘 모임은 다양한 주제로 나눈 대화였는데 주일 문제는 요약하면 이광호 동인의 말대로 주일의 개념 속으로 들어가는게 주일을 잘 지키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주일 성수의 잣대를 지난 시대를 지탱하던 기준을 가져오는 것은 지금 이시대에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젊은 층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남아 있는 젊은 층을 어떻게 터치 할 것인가도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생각된다.
컨텐츠를 소비만 하는 젊은세대, 허약햐진 신앙의 맷집들은 결국 기본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점에 공감하였다.
심지어 성찬에서 자기 아이 주겠다고 분병되는 떡을 두개 가져가는 부모를 보면서 바르게 원리를 가르치지 않은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느꼈다.
주일을 비롯, 각종 삶의 기준들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신학자들이 나서서 정의를 해주어야 하는데, 원칙을 가르치는 집단이 꿈쩍도 않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많은 유익한 대화가 오고가는 가운데 어느듯 시간이 되어 다음의 모임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12월 모임은 12월 27일(금)에 모이는 것으로 하되 연말로 인해 바쁜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한주일 전에 단톡방에서 논의하고 모일 수 있는 동인이 5명 이하이면 1월에 모이는 것으로 잠정 논의되었습니다.
첫댓글 나삼진: 참 좋습니다. 처음 만났던 그때 그시절 같네요. 2월에 총회교육원 20주년 기념행사 초청을 받았는데,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영주: 먼길 오셔서 유익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