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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98년, 마지막 불꽃으로 연꽃 피워 극락 가신 충담 스님
이충담(李沖湛) 『염불 정토삼부경』 (한국불교출판부, 1996) 「머리말」
1) 스스로 쓴 한 살이(一生)
나는 구한말 나라를 빼앗긴 지 3년이 지난 계축년(1913) 경기도 가평 땅 ‘솟틀’이란 산골에서 엄격한 유 가儒家 집안에 태어났다.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고생하다가 열일곱 소년 시절 긴 머리 칭칭 따고 짚새기 신고 걷고 걸어 먼저 스님이 되신 형님 따라(故廷秀堂 大禪師) 한양에 올라와 삼각산 승가사僧伽寺에서 중이 되었다.
아 태조我太祖께서 도읍을 정하신 삼각산을 비롯한 경산京山의 모든 산산곡곡을 아니 다닌 곳 없으며 한강을 비롯한 산야를 밟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강 상류로부터 마포나루를 지나 임진강에 이르기까지 행각 정진을 하였다. 젊은 시절 믿지 못할 것이나 청룡 · 황룡이 승천함을 분명히 본 일이 있었으며 산중에서 기도할 때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 하늘을 나는 듯했으며,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았다는 산신과의 만남은 수없이 많았고 여래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이 대자대비한 자비 원력을 수없이 다정스레 받아오고 원력이 장엄하고 자비가 광대하신 당래 교주當來校主 미륵존불도 늘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 고국을 떠나 중원 땅 만주 벌판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 광복을 기원하고 촘촘히 박혀 눈부시게 빛나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부처님 광명이 날로 더하고 법의 바퀴 항상 구르게 하여 만 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였다.
해방된 을유년(1945) 8월 15일 나는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백중맞이를 마치고 왕십리로 오는 길에 형사에게 붙들렸다가 대한독립 해방을 맞이하였다. 다 같은 하늘 아래 모두가 다 같은 땅을 밟고 살며 거기서 난 것을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감격스러운 해방을 맞이한 기쁨을 만끽하였고, 동족상잔의 육이오 사변 때는 산더미 같은 시체 속에서도 나는 지금의 서울대학병원에서 염불 독경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방군에 소집되어 막노동과 전투 속에서도 간절히 염불하였고, 휴전이 되자 평화통일의 염원과 만 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도량을 호명산 감로암에 토굴을 마련하였다.
믿기지 않은 줄 알겠으나 그때만 하여도 이 땅엔 호랑이가 산신을 대신하여 간혹 나타났다. 나는 분명히 보고 또 보았다. 이동 삼각산 백운대 인수봉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을 나는 분명히 수없이 보고 또 보아 왔다. 아마 그때 우리 도반을 빼고는 산 山 사람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눈부시게 불을 켠 호랑이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는 오호 신장 바로 그것이었다.
호명산 감로암 창건할 때 그들은 나를 지켜주었고, 용왕은 약수를 나에게 철철 넘게 뚫어 주었다. 내가 움막을 짓고 가람을 창건할 때 그들은 다정스레 꼬리를 흔들며 내 곁에 함께 하였고 용신은 시원한 감로의 청정수를 뚫고 나와 지금도 시원스레 언제나 감로의 물줄기를 뿌리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사실이다.
4 · 19, 5 · 16 모두 겪었다. 10 · 26 이후 군사정권 하에서 그들은 왜정 때 일본 놈보다 더하게 나 있는 곳까지 와서 조사하였다. 총칼을 장전하고 한밤중 나의 암자까지 수색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그보다 아픈 것은 불교 분규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우리는 동족상잔의 사변을 겪고 다시 또 불교 분규를 맛보았다. 그러나 인과응보라 지금은 반성한다. 그저 더 큰 불행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위정자들의 정쟁 속에 휩싸여 타의에 의하여 흔들린 불교 분규이다. 출가 비구나 출가 보살승 모두 한 부처님 제자가 아닌가. 16개 종단으로 갈라지더니 이제 50이 넘는 종파가 우후죽순으로 널리어 어찌 승풍을 진작시키고 삼보를 호지하고 정재와 교권을 수호하겠는가. 하루속히 태고 보우 원증국사의 단일 문손으로 제종통합 원융회통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 나이 80 되어, 깨달음을 완성하기 위해(上求菩提) 아미타불 염하고
▣ [행장] 1992년 7월 15일 : 호명산 감로사에서 20 하안거 성만 하시고
열반 직전까지 관무량수경 관법 수행
나는 몇 년 전 호명산 감로암에 따로 토굴을 만들어 좌선 정진하고 틈틈이 서방극락 교주 아미타불을 관하고 염불도 하고 있다. 그런 수행 중에 정토삼부경 중의 관무량수경 16관법 중 제1관인 일상관日想觀을 참구하게 되었다. (……) 권속들은 오후 3시쯤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눈이 멀 것이라고 말려 왔으나 나의 신심은 변함없이 정진을 계속하였다. 또한 틈틈이 아미타경을 비롯한 (정토) 3부경을 사경하였다.
“맑고 깨끗한 나라(極樂世界)에 가기만 하면 불현듯 신통지혜 두루 갖추고 아미타 부처님께 수기를 받아 위 없는 깨달음을 성취하리라.”
“온 세계에 불길이 가득하여도 반드시 뚫고 나가 불법을 듣고 모두 다 마땅히 부처가 되어 생사에 헤매는 이 구제하여라.”
“부처님 광명 눈부시게 비추니 세 번 돌고 정수리로 들어가니 온 세계 천상 인간 모든 대중들 환희심에 뛰놀며 즐거워하네.”
“그때 아미타 부처님께서 기쁜 얼굴로 미소하시니 입에서 눈부신 광명이 나와 시방(十方)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부처님 말씀을 수없이 써 내려오던 중 나도 모르게 유서 아닌 유서를 쓴 일이 있다.
3) 나이 80 되어, 아래로는 중생 제도(下化衆生)를 위해 소신공양
아니 나의 권속들과 신도에게 쓴 당부의 말이었다.
그 내용은 나는 이 몸을 불살라 여래如來께 공양하리라.
이를 공개적으로 실행하는 이유는
첫째, 나 혼자 아무도 모르게 할 수도 있으나 산불이 날 염려가 있는 것이요.
둘째, 50여 년 전 영도사(지금의 개운사) 벽봉 노사께서 칠성각 앞에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놓았으나 그 손상좌가 끌어내려 깊은 화상을 입고 뜻을 펴시지 못한 채 열반한 일이 있으니 그것이 걱정이요.
셋째, 만일 다비까지 깨끗이 안 되면 두 번 장사지내야 할 것이니 그것이 우려 되노라. 그리하여 공개적으로 나의 모든 권속과 신도 그리고 종단의 스님들과 모든 불자에게 모두 알리어 여법하게 소신공양燒身供養할 것이니 협조하여 주길 바라노라. 그리하여 이 나라 분단된 국토가 하나로 통일되고 사회가 안녕하며 헐벗고 괴로운 이 없어지며 불국정토 앞당겨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요지의 말과 날짜 장소까지 언급한 일이 있었다.
그 글을 본 상좌 지성이 불법이 그런 것이요. 회향을 그리한다면 중노릇도 그만하겠다며 완강히 거부하지만 그래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남모르게 참나무를 사서 산에 쌓아 놓고 그 뜻을 실행코자 정진하고 있다. 누가 나의 이 뜻을 거역할 것인가. 나는 현행법에 의하면 짐짓 나의 행동이 가당치 않은 줄도 잘 안다. 그러나 여래, 부처님을 향한 마음 변함이 없다. 저희들이 훼방한다면 나는 아까 마한 염려를 다 버릴 것이다. 내가 뜻을 성취하면 너희들은 이 사바 고해에서 다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부처님의 뜻이 거룩하신가?
5) 80살 도인의 임종게 : 염불 · 간경 · 참선 · 주력(呪力) 같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나, 나는 모든 이에게 염불을 권하고 권하는 바이다.
만약 한 구절 아미타불 생각하면(若念一句阿彌陀佛)
능멸 팔십억 겁 생사 중죄(能滅八十億劫生死重罪).
80억 겁에 지은 생사의 무거운 업장을 소멸하고, 능히 80억 겁 동안에 수승한 공덕(成就八十億劫殊勝功德)을 지을 수 있다 하였으며, 옛 스님 영명 연수 선사께서는 참선은 백이 하여 하나 성공하기 어려우나 염불은 만인이 하면 만인 모두 서방극락 왕생 정토하여 아미타불을 친히 뵙고 정수리에 수기 받아 다 같이 부처를(皆共成佛) 이룰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리오.
나는 원한다. 나보다 우리 모두가 유연무연有緣無緣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부처님의 깊은 뜻 고구정녕하신 원을 따라 가장 쉽고 틀림없는 길 염불을 권한다. 인생을 비롯한 모든 중생은 유한한 생명을 살고 있다. 생자는 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리라. 이 세상에 나온 자 모두 반드시 죽을 것이요, 만난 이는 누구든 헤어질 것이라. 당연한 말이다. 승복하기 싫다. 영원히 멸하지 않고 괴롭지 않고 즐거우며 거짓투성이로부터 참 나의 실체를 알며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청정한 본래의 참 성품인 부처님을 증득할 수 있는 길이 과연 무엇일까.
염불 · 간경 · 참선 · 주력呪力 같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나, 나는 모든 이에게 염불을 권하고 권하는 바이다. 염불하고 참선하면 호랑이에게 뿔을 달아준 이상이라 하였으나 뿔 없이 극락왕생 정토하여 여래의 10가지 원력이 성취하길 바라다. 우리나라 불교는 본래 한 집안 한 부처님 법 아래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함께 하고 또 함께 뜻을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염불문은 염화미소拈華微笑 · 격외선전格外禪詮의 뜻도 거역하지 않는 것이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상근기上根機에도 별 탈 없음을 직감하겠다. 내가 나를 (불)살라 온갖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나 그것도 내 마음대로 못 하는 세상 나는 쉬운 길 · 바른길 · 빚 갚는 길 · 성공하는 길을 널리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행장] 1998년 6월 16일 승정으로 추대.
1998년 6월 27일 새벽 홀로 호명산 감로사에서 소신공양을 올리고 열반.
卍 보정의 꼬리말
2009년 정년퇴직하고 입산하여 3년간 정토선 염불 수행하면서 세운 원이 『정토삼부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었다. 책을 옮기는 것은 바로 붇다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뜯어 보며 붇다의 참뜻을 깨치는 작업이다. 이때 우리말 번역서 가운데 참고한 것이 1996년에 충담 스님이 낸 『염불 정토삼부경』과 청화스님이 옮긴 『정토삼부경』이었다. 충담 스님은 원본을 《고리 대장경(高麗大藏經)》 본을, 청화 스님은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 본을 썼다. 엮은이는 먼저 이 두 판본을 찬찬히 견주어 옮기는 작업을 하였기에 충담 스님의 책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보는 충담 스님 번역본은 1998년 6월 28일 소신공양 바로 뒤인 8월 15일 재판이었으므로 책 뒤에 실은 스님의 소신공양에 대한 제사한 신문 기사들을 자세히 읽을 수가 있었다. 그때부터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스님의 소신공양을 정토 법문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작은 화두였다. 모든 기사에 스님의 발원은 국태민안, 남북통일, 불교 분규 종식 같은 ‘하화중생下化衆生’만 있지, 자신의 상구보리 上求菩提인 극락왕생 발원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활안 한정섭이 지은 『내가 만난 선지식』(불교통신교육원, 2012)에서 “높이 장작더미에 올라앉아 불을 붙이니 푸른 산골짜기에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올랐다”라고 하는 대목에서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가 곧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자리自利였음을 알게 되었고, 2022년 6월 2일 열린 ‘제24주년 충담 대선사 소신 열반 추모 · 영산재’ 보경 스님 법어에서 “제가 법구를 수습하여 다비할 때 사방은 캄캄하였으나 법구 계신 곳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연화의 세계였습니다”라는 회사 대목에서 자신의 수행을 모두 회향하는 이타행이 연꽃으로 승화하여 결국 연꽃이 되어 자신의 목적지인 극락에 가셨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오늘 호명산 감로사 지성 스님이 보내온 『불 속에 태어난 연꽃(蓮生中火) - 불꽃으로 연꽃을 피우다-』라는 책자의 제목을 보고 이 충담 스님 극락 간 이야기 제목 「마지막 불꽃으로 연꽃 피워 극락 가신 충담 스님」이 떠올랐고, 스님의 『염불』 머리말에 4가지 소제목도 붙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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