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깃들고 봄 향기가 깃들고 어둠이 깃들고 노여움이 깃든다. 아늑하게 서려 들거나 두렵게 스민다. '깃들다'하고 말해 보면 마치 새의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앉은 느낌이 든다. 깃드는 모습이 이럴까.
'깃들이다'는 '깃들게 하다'인 줄 알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아니다. '주로 날짐승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 살다, 사람이나 건물 따위가 어디에 살거나 그곳에 자리 잡다'라고 나온다. 다시 '깃들이다' 하고 소리 내 말해 본다. 이번엔 새 한 마리가 둥우리에 내려앉아 깃이 무성한 날개를 접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스름이 깃들 무렵 조용히 둥지로 날아 와 가만히 깃들이는 새 한 마리.
그러니 '황혼이 깃든 거리'라거나 '새가 깃들인 나무'라고 써야지 '황혼이 깃들인 거리'라거나 '새가 깃든 나무'라고 쓰면 맞지 않는다.
'깃들다'는 '깃들어, 깃드니, 깃드는, 깃든, 깃들, 깃들었다'로, '깃들이다'는 '깃들여, 깃들이니, 깃들이는, 깃들인, 깃들일, '깃들였다'로 쓴다.
집에 깃들여 사는 사람이 집주인이듯 말과 글에 깃들여 사는 주인은 주어와 술어이다. 주어와 술어가 말과 글에 제대로 깃들일 수 있어야 말하는 이와 글 쓰는 이의 뜻과 마음과 느낌이 말과 글에 제대로 깃들 수 있으리라. 글 쓰는 이와 말하는 이가 주어와 술어를 제치고 말과 글에 직접 깃들여 살려 한다면 깃들여야 할 뜻과 마음과 느낌은 깃들 곳을 잃지 않을까.
참고 도서 《동사의 맛》 김정선 지음
첫댓글 제가 무심수필 문학회에 깃든지 벌써 4년차입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아아, '육거리 시장'에 대한 글, 어찌 쓰지? 문득 8월에 마감이라며 눈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진연화주간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나도 아직 무엇을 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