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 태양이 잠시 고개를 내밀었던 지난달 23일 오전 광주 북구 일곡병원 앞.
무등산에서 광주시내 북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방점을 찍는 곳, 매곡산과 운암산을 찾기 위한 발걸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특히 이날은 한새봉 지킴이 회원들과 방학을 맞은 학생이 산줄기 탐사에 합류하는 등 그 어느때 보다 북적임 속에서 매곡산으로의 출발을 맞이했다.
산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자작나뭇과의 낙엽 교목인 사방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태껏 만나 온 동종의 나무들 보다 굵기나 높이에 있어서 우월했다. 사방오리나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 곳에 자리잡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쭉쭉 뻗어 있는 자태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청량감을 안겨 주었다.
좌우측으로 공무원교육원과 본촌산단을 끼고 산을 오른지 20여 분 매곡산(梅谷山) 정상(151m)에 도착했다.
매곡산은 한새봉에서 뻗은 줄기로 매곡동(차지 면적 60.61%), 삼각동(9.65%), 양산동(19.32%), 운암동(4.50%), 일곡동(5.92%) 등에 걸쳐 있다.
또 매곡산 산책로 주변 인구는 북구 전체인구의 7.6% 정도인 1만1천608세대, 3만6천677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매곡산 권역은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형국이라 해 옛부터 명당터로 세간에 알려졌다고 한다.
인근에는 1917년에서 1934년에 걸쳐 지어진 민속자료 제 3호 김용학 가옥도 위치하고 있다.
청명한 새 울음소리와 함께 우거진 숲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광주박물관 인근 도로에 다달았다.
길가 자투리 땅에 밭을 일구는 노인의 등 뒤에 서 있는 허수아비와 레이싱 모델의 사진이 인쇄된 소형 현수막이 인상적 이었다.
노인에게 설치 목적을 물으니 밭에 선명이 찍힌 발자국을 가리키며 "고라니를 쫓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도심 한 가운데 고립된 매곡산 어딘가에 고라니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반가운 소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그 녀석의 길지 않은 운명을 점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요기를 마친 뒤 장구봉을 찾아 연제동으로 떠났다.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이어서인지 등산로 초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연제초교와 양산중학교를 품에 안고 있는 장구봉에 올라섰다.
매곡산에서 운암산을 잇는 장구봉의 산허리가 고속도로를 비롯한 각종 자동차 길로 잘려 나가 있었다.
운암산을 찾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넘어서야 하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어 결국 우회를 선택했다. 사람도 이러하거니와 동물들은 어떻겠는가.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이 많은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참을 돌아 운암동 옛 진흥중·고등학교 부지 인근 율곡마을에 도착했다.
그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은 넘어 보이는 왕버들나무 두 그루가 마을 입구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위엄함과 신령한 기운 마저 감돌았다.
마치 운암산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았던 왕버들나무를 뒤로 한 채 북구 지역 산자락 탐사의 종착지 운암산(131m)으로 향했다.
비교적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니 동림동과 첨단지구, 영산강 줄기가 한 눈에 펼쳐졌다.
지난 4월 무등산 정상삼봉(頂上三峰)중 하나인 지왕봉(地王峰)에서부터 시작한 광주 북구 지역 산줄기 탐사의 최종 목적지에 막상 이르고 보니 감회 또한 남달랐다.
희열에 찬 얼굴로 하산을 시작했다. 동림동 삼익아파트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는데 얼마전 우연히 만난 이 곳 원주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때는 용돈벌이를 할 정도로 운암산에 구렁이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파헤쳐진 산허리에는 소나무 대신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동물들이 지나 다니는 숲길에는 사람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물이 가득차 있으니 이 사람의 이야기가 그럴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거의 내려 왔을 무렵, 최근 논란의 중심거리로 등장한 왜가리와 쇠백로, 해오라기 등 도시화 된 철새 밀집 지역이 나타났다.
현재 이 곳에는 새끼를 포함한 철새 1천200~1천500여 마리가 아파트 단지 부근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운암산에 철새들이 몰려든 까닭은 주변에 영산강과 광주천이 위치해 있어 먹잇감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생태학적으로는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나 문제는 인근 주민들이 철새의 냄새와 소음, 배설물 등으로인한 생활의 불편함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이 같은 사례를 놓고 최근 주민과 행정, 환경단체가 머리를 맞댔다고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연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중장기적 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북구 지역 산자락 탐사를 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