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강물이었다가 바닷물로 바뀐다. 되게 짠물은 아니어도 사용할 수는 없다. 모르고 채소와 딸기나무에 주었다가 말라 죽는 걸 보고서야 안 되겠구나 싶었다. 낙동강 물과 합쳐져서 싱거운가 했는데 짜다 짜. 그게 샛강에 들어와 고였다간 좌우로 흘러가곤 한다. 바닷물이 낮아 강물이 들어올 땐 붕어가 나타나고 어떨 땐 숭어가 들이닥쳐 가득히 떠다닌다.
숭어가 입을 봉긋봉긋하며 우우 몰려갈 땐 그물로 뜨면 가득히 잡을 것 같다. 긴 자루 망태를 구했는데 아내가 그러지 말란다. 물을 들어 나르려니 힘들다. 여러 통 줘도 이내 말라 소용없는 일이다. 들고 오기만 잔뜩 어려워 어찌하면 좋을까. 강물인지 바닷물인지 구별이 어렵다. 혀를 대 봐도 간간한 게 덜 한지 더 한지 알 수 없다.
시원하게 물이 흘러가도 그림의 떡이다. 여러 날 뙤약볕일 때는 텃밭이 타들어 가기만 한다. 도랑 가장자리에 다짜고짜 달려들어 우물을 파댔다. 갈대와 나무, 쑥이 엉켜 괭이와 삽질이 어렵기만 하다. 무슨 비닐조각과 소주병, 쇠꼬챙이, 옷가지 등 잡동사니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겨우 여러 날 파서 둘레를 막았다. 물이 고여서 그럴듯하다.
아내가 그런다고 짠물이 단물로 바뀌겠냐며 헛수고는 이제 그만하란다. 바깥 물과 비교해 보니 역시 짭짤하다. 몇 번 퍼내고 바닥을 씻고 씻었더니 조금 덜 하다. 베인 짠물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가늠이 안 되어 염도계를 사서 재봤다. 앞 바닷물은 3, 4퍼센트인데 민물이 섞인 기수는 2 전후이다. 여긴 0.7-0.8이다. 힘겹게 판 우물은 0.1이니 사용해도 안 되겠나. 되나마나 쟀다. 집 반찬과 국은 0.6쯤이다. 소태같이 쓰고 짜면 1인데 한 컵 물을 넣으니 절반으로 줄어든다. 오줌은 0.5이다.
밭에다 퍼부으니 채소들이 내 사내 하면서 생기가 풀풀하다. 아내도 놀라며 그게 어찌 맹물이 되냐며 반긴다. 낙동강 끝에 장자도와 진우도가 있는데 예전에 사람이 살았단다. 우물을 파서 사용했다니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어도 파면 샘물이 솟아 나오는가 보다. 장난삼아 놀기 삼아 하는데 뭐 대단한 농사라고 뻘뻘 무거운 물통을 들어 나르나.
계단을 만들어 엎드려 물을 떠 올리는데 그것도 자주 하니 허리가 시큰거린다. 물통에 줄을 매어 던져서 들어 올린다. 퐁당 빠져서 가득 채워 올리는 게 재주이다. 점점 꾀가 늘어난다. 감자와 오이, 가지, 토마토, 호박에 그득히 부어 넘치게 한다. 이것들이 모두 물먹고 굵어지는 것이 아닌가.
오이와 가지는 자고 나면 주렁주렁 열린다. 물이 부족하면 비비 틀리면서 오그라드는 게 생긴다. 그러다 아 못 살겠다 하면서 일찍이 살살 말라 죽어버린다. 그러던 게 동이째 부어주니 감자는 주먹 크기가 아니라 굵다란 것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호박넝쿨은 설설 기어가는 게 아니라 냉큼 달려서 저만치 간다. 곳곳에 흐드러진 노란 꽃을 피우고 맷돌이 둥그렇게 매달리니 싱그러울 뿐이다.
여름날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넘쳐 우물은 고사하고 텃밭까지 휩쓸고 덮어버린다. 그때 물통과 바가지, 양재기, 대야 등 떠다니는 건 모두 집 나간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까지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는다. 사리가 들이닥치면 샘물은 간곳없고 소금물이 넘쳐 들어와 한참을 퍼내야 한다.
헉헉 푸면서 바닥 까만 개흙을 쓸어 담아 둑을 쌓거나 버린다. 아내가 청소하다가 말고 그만 이물을 못 쓰겠다면서 매우라 야단이다. 이렇게 썩어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어찌 채소에 주겠느냐며 당장 두드려 뭉쳐서 덮으라 한다. 채소고 뭐고 이 물 준 것은 절대로 안 먹겠다며 생떼를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불그스레한 빛을 띠고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게 독약처럼 무서워 보였다. 예전에 바닷가 염전이었다는데 주택지 대단지로 만들면서 매립으로 쌓아 올릴 때 온갖 것들을 내다 버린 것 같다. 수십 년 바닷물과 강물에 씻기면서도 남았다. 그나저나 얼마나 고생하면서 판 것인데 감히 집어치우다니 말이 되나.
저리 난리를 치니 어정쩡하게 하나 마나 생각 중이다. 밭을 안 하면 안 했지. 그 우물물은 긷지 않겠단다.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까짓 이것들이 뭔데 비위를 상해야 하나. 이것 파내고 둑 쌓고 몸살을 했다. 허리가 아파 아직도 세수할 때면 숙이는 게 불편하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하면서 사는데 우물이 공연히 말썽을 피운다.
밭에 가도 샘 곁을 지나치면서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게 왜 그리 속을 썩이는가. 얼마나 지난 뒤 무심코 슬쩍 보니 무엇이 얼른거리는 것 같다. 뭘까 하면서도 모른 척 팽개쳤다가 며칠 뒤 또 스멀거려서 보니 어린 물고기 새끼들이 오물오물 떼 지어 다니는 게 아닌가. 어미는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고 새끼들만 십여 마리 즐겁게 노닐며 살아간다.
썩어서 냄새나고 불그레한 게 거품까지 일어 정말 독성이 있는 물인가 했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은 우물이라 여겼다. 자주 퍼낸 뒤 씻어내고 바닥을 긁어냈다. 검정 개펄을 구석구석 깎아내고 돌담을 쌓아 올려서 만년구짜로 만들었다. 좋아졌는가. 난데없이 저 어린 새끼 물고기가 괜찮다며 헤엄쳐 다니니 말이다.
강물이 넘쳤을 때 산란하고 가버린 것 같다. 물 뜨러 가까이 내려가면 이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반가워라 잘 크거라. 그러고 보니 붉은빛과 지독했던 냄새도 스스럼없이 사라지고 정말 샘물처럼 맑아 보인다.
아내에게
“우물 보세요. 피라민지 버들친가가 살고 있어요.”
첫댓글 물은 썪어 거품올라올지라도 읽다보니 한편의 소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집니다. 이제 우물파는것도, 맑은물 길어 와 채소밭 간수하시는것도 무리십니다.
한번 고장나시면 회복이 더디고 온갖 고생하시는분들 수두룩하십니다.ㅋ
아쉬워도 작물기르시는건 뒷전으로 미뤄두셔요.
시장에서 사서 드셔도 싱싱하고 맛있는채소 많습니다!!
성도님 반가워요.
텃밭할 때 물이 중요합니다.
도랑에 우물을 파 두니 아주 편리합니다.
하릴없으니 밭에가 삽니다.
성도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텃밭 가꾸기도 힘에 벅찹니다
재미 삼아 그르시는데 탈 나면 고생합니다
숭어와 붕어가 같이 논다니 신기하긴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살살 할 게요.
딸기 따는 재미와 물 주고 파 뒤집는 게 운동도 되어 그럽니다.
자꾸 욕심을 내어 넓게 했는데 이제 그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