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 고미령
그늘에게
'그늘'이라는 단어를 매만지면 고맙기도 하다가 마음이 한없이 저려오기도 한다. 한낮의 뜨거운 뙤약볕 더위를 피하도록 도와주는 긍정의 이름이었다가, 한편으로는 어려움과 고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너의 양면성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오래도록 내 안에서 빛나는 소중한 이름이었다. 너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있어. 올해 팔순이 되신 그분의 삶은 마치 데칼코마니를 보듯 너와 닮은 점이 많아.
불볕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오랜기간 중동지역의 건설현장을 누비던 당신은, 병상의 부모님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늘이 되어주셨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에겐 힘겨운 삶의 더위를 피할 그늘이 없었지만 자식인 나는 당신 덕분에 시원한 그늘에서 머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하지만 그러한 행복함도 잠시, 열사의 땅에서 힘겹게 벌어온 돈이, 20년지기 친구에게 사기라는 영목으로 사라졌을 때, 당신은 물론이고 우리가족 모두에게 꽤 오랜세월의 그늘이 드리워졌단다.
친구의 자식이 수술을 받지 못하면 당장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 한마디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금을 건넨 당신을 오래도록 미워했었어. 당신의 착한 심성을 이용해서 돈을 떼어간 친구의 집에 들렀을 때, 몇 푼이라도 돌려받기는 커녕 끼니를 챙기지 못한 아이들에게 오히려 밥을 사먹이고 오셨다지. 이해할 수 없었고 화가 치밀었어. 당신 때문에 우리집에 드리워진 그늘은 안중에도 없고, 끝까지 당신은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지...
당신은 쉽게 일어서지 못했고, 우리는 각자 뿔뿔히 흩어져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녀야했어. 나는 철저히 이기적인 삶을 살았고 나만의 그늘을 찾아 살겠노라 다짐했다.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키우던 때였어. 밥은 고사하고 맑은 식수가 아닌 오염된 물을 먹고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보게 되었어. 나는 주저함없이 기부약정서를 보냈고, 순간 오래도록 원망하고 미워했던 당신의 '그늘'이 떠올려졌어. 자식을 키우는 아비로서, 친구의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이치를 따지거나 셈법을 적용할 틈이 있었을까? 그저 생명을 살리겠다는 따뜻한 마음, 친구의 어려운 삶에 그늘이 되어주고픈 우정의 표본이 아니었을지 되돌아보게 되었어. 누군가를 향한 이타적인 삶을 형편에 따라 포포하거나 내려놓지 않았던 당신의 신념이 '사랑'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지천명을 넘긴 나에겐 이제 작은 지론 하나가 생겼는데, 설령 내가 당신처럼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 대신, 나는 평생 그늘진 어두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란 사실이야. '너'라는 단어를 매만질수록 감사와 아픔이 중첩되기도 하지만, 내게있어 '그늘'은 아름답게 빛나는 소중하이라는 걸 기억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