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11 자전거하이킹 춘포 봉개산 산책 삼례비비정
자유인은 자전거로 중학동창 이기태친구와 9:20 송학사거리를 출발, 벚꽃이 활짝 핀 만경강변 자전거길을 달리다.
풍요의 강 만경강 춘포 나루터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며 기태친구가 준비한 간식과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춘포역과 호소가와농장 가옥을 둘러보다.
춘포의 유일한 작은산 봉개산을 느바기로 산책하였다.
느바기가 뭐여.
느바기는 합성어로서 ‘느바기’는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느바기(느리게-바르게-기쁘게의 합성어로서 느바기를 나타내는 것은 달팽이이다.)
봉개산을 산책후 삼례철교의 비비정에 도착, 풍경이 아름다운 비비낙안과 만경강철교를 조망하니 기분이 감개무량하였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두눈이 있어 벚꽃이 만개한 만경강변의 아름다운 장관을 조망할수 있어 감사하고,
두발이 쓸만해 자전거하이킹을 할수 있어 감사하고, 집에 까지 무사히 귀로 할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하루가 흘러가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월을 낚으니 행복하였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중학동창 기태친구와 자전거하이킹 소감
기태친구와 자전거하이킹 춘포와 삼례비비정까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태 친구 그대는 젊은시절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며 함열지역관리소장으로 지역사회에 헌신하였지.
어느시인의 말처럼 추억이란 잊어버리려 해도 잊을 수 없어 평생토록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는 마음속의 일기장이며, 추억은 지나간 그리움의 시간들이기에 그래서 만나면 쓰잘띠 없는 이야기 나누며 느바기처럼 자전거페달을 밟고 봉개산길을 산책하고 삼례 비비정에 와서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하니 감개무량했었네.
비비정에서 삼례 전라선 옛 철교의 모습을 생각하며 내가 수없이 운행하였던 옛 철도인의 향수에 젖어보았수다.
따스함이 묻어 나오는 기태친구와의 자전거 하이킹 즐거웠고 만나서 그냥 쓰잘띠 없는 말의 언어였지만 행복했고 감사했네.
☛hiking시간 및 거리 : 9:30-16:30(7시간) 13.0km 왕복 26km
☛hiking코스 : 영신교회-목천포-만경강변-춘포나루-춘포역-호소가와농장-익산천-봉개산-삼례비비정-귀로
봉개산
봉개산은 춘포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춘포에서 하나뿐인 산으로 고도 49m이다.
춘포의 우리말 이름은 ‘봄개’. 봄개는 봄나루라는 뜻으로 음이 변해 ‘봉개’가 됐다. 봉개산(춘포산)은 춘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중심지이다.
‘춘포산(봉개산)’은 춘포의 넓은 평야지대 들녘에 있으며, 춘포면 11개 마을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춘포면을 관장하는 요충지와 같은 곳이다.
봉개산에 오르니 왠 묘지가 많은지 공동묘지로 지정된 것 같았다.
대장촌(일어:오오바무라)과 호소가와농장 유래
➡대장촌(大長村 조선시대)→대장촌(大場村 일재시대)→춘포(春浦 현재)
부끄럽고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일지라도 대장촌을 알아보자.
오늘 옛 지명 대장촌(현 춘포)을 둘러보며, 느낀점은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이지역의 간판이란든가 건물의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았으며, 내려오는 습관이 있어 쉽게 고쳐지기가 어려운가보다 생각했소이다.
대장교회, 대장촌 유명탕집, 대장촌노인복지센타, 대장공장(옛정미소)등의 간판들이 보였다.
역사적 사실인즉 조선시대에 대장촌으로 마을이름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는데, 일제시대에 가운데 한자가 바뀐 것이 눈에 뛴답니다.
쓰잘대기 없이 대장촌의 유래를 알아보았는지 내마음 나도 모르겠으나 내가 알아보고 싶어 알아보았지롱요.
일제가 한국을 침탈하여 대장촌은 일본인들이 전북 서부 평야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핵심 근거지였다.
1914년 전라선이 개통된 후 대장역은 줄곧 ‘대장역’으로 불리왔으나, 1996년 ‘춘포(春浦)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장이라는 지명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제 잔재라는 것이 역명 교체의 근거였다. 익산시는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조례를 개정해 1996년 1월 1일부로 ‘춘포면 대장촌리’를 ‘춘포면 춘포리’로 개칭했고, 이에 따라 대장역도 춘포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장촌이라는 지명은 일제의 침략 이전부터 조선시대부터 있던 이름이다. 원래 대장촌(大長村)이던 것을 일본인 지주들이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서 대장촌(大場村, 큰 농장이 있는 동네)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대장촌 호소가와 농장은 익산군 춘포면에 관리사무소와 사택 등을 건립하고 농장이름을 넓은 땅이라는 뜻의 대장농장(大場農場)으로 명명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 지역은 대장촌(大場村)이 되었다.
호소가와에 의해 만들어진 대장촌은 인근 평야 3개군 100 촌락에 걸치는 약 1000 정보의 대농장을 설립했다.
농장에 관리사무소, 사택 등을 건립하고 넓은 땅이라고 해서 ‘대장촌 농장’이라고 불렸다.
춘포리 옛 일본인 농장가옥(춘포면)은 1940년대에 건립된 건물로 전북도 지역에 만들어진 대규모 농장 중 대표적인 호소가와 농장에 소속된 주택으로 이 지역의 근대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춘포나루터에 들어 쉬어가다.
춘포는 우리말로 하면 봄나루이다.
봄나루라 불리다가 일본사람들에 의해 대장촌이라 불렸고
일제잔재 청산차원에서 춘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은 춘포나루터입니다.
춘포는 봄이 드나드는 나루라는 뜻으로 춘포나루터는 만경강따라 수많은 배가 드나들어 번성했던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일본 사람들이 들이 넓다고 큰 대(大), 마당 장(場) 자를 써 ‘대장촌’이라고 했다. 춘포에는 아직도 대장의 지명을 딴 상호가 많이 남아 ”대장미용실 대장교회등이 있다.
춘포
춘포의 뜻은 봄나루입니다. 옛날 이곳의 지명 '봄개나루'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지명에 '개'가 붙는 것은 바닷물이 들어 왔다는 뜻입니다. 만경강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감조하천으로 삼례 비비정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만경강은 너른 들을 지나지만 바닷물이 드나들기에 농업용수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주로 교통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만경강 주변의 마을들엔 '포' 혹은 '나루'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춘포도 원래는 '봄개나루'였는데 발음을 편리하게 하기위해 '봉개나루'라 불렸고 춘포에 있는 산은 '봉개산'이라 불렀습니다. 고지도에는 우리말의 뜻을 한문으로 표기하여 '춘포' 혹은 '춘포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익산 구 일본인 농장가옥
➡근대등록문화재 제211호 (2005.11.11)
➡위치 : 전북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 103-3
➡규모 : 2층 목조 일본식건물. 건물 106.78m².
일제강점기 농업 수탈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 주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이 집은 옛 일본인 소유의 호소가와농장에 소속된 건물이다.
건물 지붕은 팔작지붕 위에 일식 기와를 얹었고, 외벽은 비늘벽으로 마감하였다.
농장의 농업 기술자였던 에토가 살았던 집이다. 그래서 에토주택이라고도 불린다.
에토는 당시 이리농림학교에 유학 온 일본인들 중 한 명으로
넓은 농장을 터전으로 삼아 크고 멋진 집을 지었었다.















전라선 구 만경강 철교 등록문화재579호
▷소 재 지: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820
▷구 만경강 철교의 길이 : 476m
전라선 삼례역과 동산역 사이에 있는 철교로, 1912년에 목재로 건설되었다가 1928년 철교로 재건설한 다리. 전라선이 복선전철화 되면서, 2011년10월 철거 논의가 있었지만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3년 12월 20일에 등록문화재579호로 지정되었다.
구 만경강 철교에는 새마을호 객차4량을 개량하여 비비정예술열차(카페 전통품판매)를 운용하고 있다.
만경강(萬頃江) 철교는 스틸거더형식의 철도교량으로 교량상부 구조와 교각 및 교대는 일반적인 교량 형식이지만 건립 당시에는 한강철도 다음으로 긴 교량이었다. 만경평야의 농산물 반출을 위하여 1912년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리∼전주간 경편철도를 개통하면서 목교로 만들었으나 1927년 호남지방의 농산물 반출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제가 경편철도를 국유화하고 일반철도로 광궤화하면서 1928년에 철교로 준공되는 등 일제강점기 당시 호남평야 쌀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증거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출처; 문화재청>









**더 늦기전에**
이제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겨라
되게 오래 살 것 처럼 행동하면 어리석다.
걷지도 못 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보고 싶은 곳
여행할 곳은 가보라
질병을 기쁨으로 대하라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모든 사람은 생로병사의 길을
갈수 밖에 없다.
혹시 병들더라도 겁먹거나
걱정하지 마라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닌가?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게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기회있을때마다 옛동창, 옛동료, 옛친구들을
만나라.
그 회동의 중심은 단지 모여서 먹는데
있는게 아니라
인생의 남은 날이 얼마되지 않은데 있다.
돈!
은행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돈은 쓸 때에 비로서 돈이 되며
죽기전에 쓸 수 있는 돈만이 내 돈이다.
나이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돈과 사랑이 남아 있다면 얍삽하게
아끼지 말고 베풀어라
늙어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 있으면 꼭 사고 즐길거리
있으면 꼭 즐겨라.
아껴야 할 것은 노년의 시간이고
노년의 생각이고 노년의 건강이다
자신이 자신을 진정한 최고로 대접하며 살자.
- 좋은 글 중에서 -
낙화유수-이석화노래
첫댓글 동화친구 건강한 생활
보기 좋습니다
즐겁고 안전한 라이딩 되시길
시간나는데로 만경강변에 자전거하이킹나온다네.
요즈음은 벗꽃이 만개하여 구경할만하다네.
노년의 삶 즐겁게 지내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