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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쓰지 않은 이유(고전 9:15-23)
- 앞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성도님은 예수 믿고 복 받은 사람입니다.”
- 오늘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의 제목은 “권리를 쓰지 않은 이유” 입니다. 오늘 제목을 함께 해 보십시다.
* 두 가지 권리
-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5절 초중반절 말씀은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 여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이라는 말은 “권리”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조금도 쓰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면 어떤 권리를 쓰지 않았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첫째, 사도로써, 즉 목사로써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고린도전서 9장 1-14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고린도전서 9장 4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했고, 5절 말씀에는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는 목사와 그의 가족은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공궤를 받을 권리가 있고, 교회는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 둘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음으로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롬 7:14). 그러므로 더 이상 율법이나 인간이 만든 제도, 관습에 매이지 않고 주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갈 5:1). 이에 대한 내용은 고린도전서 8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고린도전서 8장 1절 말씀에 보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디아포라의 문제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문제, 음주, 흡연문제, 춤추는 것, 노래방 가는 것, 텔레비전 시청하는 것, 영화 보는 것 등, 이러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 것도 아니요,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닌 것들입니다.
-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사도로써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써 주 안에서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요?
- 이 시간은 이에 대한 이유를 살펴보면서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 첫째,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 복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 오늘 본문 15절 종반절 말씀에 보면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랑하는 것”은 “보수를 받지 않고 일 한다는 긍지”(공동번역)를 의미합니다.
-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자급자족, 즉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해 가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자비량 선교를 한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고린도전서 9장 12절 말씀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공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권리를 주장함으로 복음을 전파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그래서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될까봐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파견했습니다.
- 사마리아에 도착한 사도들이 성도들을 만나보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성도들이 성령받기를 위하여 안수하며 기도했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 이때 사마리아 성에 사는 유명한 마술사 시몬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놀라워하며,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 오늘날도 보면 무당들이 소위 “신 내림 굿”이라는 것을 합니다. 무당들은 이 굿을 하면서 신 내림 받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요구합니다.
-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는 광경이 마술사 시몬의 눈에는 흡사 신 내림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도 신 내림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안수하여 신 내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 그러자 베드로 사도는 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 그렇습니다. 복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전도자들 중에는 복음을 자신의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롬 16:18. 빌 3:19). 한마디로 복음을 팔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복음장사꾼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데 방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 복음을 담은 그릇을 깨끗이 하라.
-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그렇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되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이 귀한 복음이 전도자라는 그릇에 담겨져 증거된다는 사실입니다(고후 4:7). 따라서 복음이 사람들에게 잘 증거되기 위해서는 복음이 담겨진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복음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기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담겨진 그릇이 더러우면 사람들은 복음의 생명수를 마시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 오늘날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헌금이라는 걸림돌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면 헌금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 교회마다 온갖 가지의 헌금이 있습니다. 십일조헌금, 감사헌금은 기본이고, 주일헌금, 건축헌금, 구역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꽃꽂이헌금, 성미, 백일기도헌금, 천일기도헌금, 월삭헌금, 월정헌금, 신년헌금, 부활헌금, 맥추헌금, 성탄헌금, 그리고 온갖 가지의 작정헌금과 특별헌금이 있습니다.
- 한마디로 별별 종류의 헌금을 다 만들어 놓고, 성도들을 쥐어짜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교회 오는 것을 겁내하고, 겨우 교회에 나왔을지라도 헌금 때문에 복음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교회에 등록하자마자 자퇴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 헌금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선포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 그렇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드리는 예물입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헌금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성경은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의 헌금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 그러므로 아직 믿음이 약한 초신자들에게는 헌금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우리가 언제 헌금을 강요했습니까?”하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헌금을 강요하는 분위기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 다른 사람은 다 헌금하는데 나만 안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거는 완전히 등신 되는 것입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교회 와서 은혜 받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 그리고 교회가 물질에 대한 올바른 청지기 자세를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들은 헌금으로 교회 건물 짓는데 열중입니다. 너도나도 하늘을 찌를듯한 건물을 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헌금을 쓰지 않고 그대로 은행에 모아둡니다. 심지어 헌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 물론 교회도 짓고, 교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경상비도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재정을 이렇게 사용한다면 세상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도 돈 벌어서 큰 집 짓고, 먹고 마시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합니다(눅 12:16-21).
- 모름지기 교회는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재물을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로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우들 가운데 어려운 가정을 도와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가난한 교우를 돌보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이 참된 복음이겠습니까? 또 이웃들 가운데 고난 받는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포로 된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우리 사회의 공의와 정의를 위하여 헌신하며 고난 받는 자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명을 다하는 전도자들도 돌보아야 합니다.
- 그러면 교인들이 더 큰 긍지를 가지게 되어 더 많은 헌금을 드리고, 초신자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헌금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 둘째, 사도 바울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사명자는 청지기다.
- 본문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 주신 것입니다.”
- 여기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보수를 바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셨기 때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은 원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딤전 1:13)였으며,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했습니다.
- 그러던 그가 하루는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붙잡아오기 위하여 가던 길이었습니다. 다메섹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바울 일행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이에 놀라 땅에 엎드러졌는데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이 다시 묻습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라.”(행 26:16).
-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 붙잡힌바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남은 모든 생애를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오이코노미안 페피스튜마이)라는 말은 “나는 청지기직을 부여받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청지기(steward)는 자유인이 아닙니다. 노예계급에 속한 사람입니다. 노예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고 하여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엄한 처벌만이 있을 뿐입니다.
-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본문 16절 말씀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눅 17:7-10). 이러한 고백이 여러분에게도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렇습니다. 사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는 부득불 할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채워주십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본문 18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 여기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은 “복음을 전할 때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값없이 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바꿔서 말하면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바랐던 것입니다.
* 우리도 사명자다.
- 그런데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명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 이 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위대한 명령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전하되 값없이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꾼들에게 때를 따라 놀라운 은총으로 충만히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 물질이 필요하면 물질을 주시고, 사업이 필요하면 사업을 일으켜 주시고, 직장이 필요하면 직장을 주시고, 건강이 필요하면 건강을 주시고,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주십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다.
- 셋째, 사도 바울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입니다.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
-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바대로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이나, 인간이 만든 제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 그런데 사도 바울은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20-22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전도 대상자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 20절 상반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다운 유대인은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롬 2:29).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의 모든 관습과 제도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인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행 16:3. 21:17-29).
- 이뿐이 아닙니다. 20절 후반절에 보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행동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는 “율법에 매인 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여전히 율법에 매여 사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이나 이방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였지만,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율법에 매인 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21절 말씀에 보면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행동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 없는 자”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방인들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율법이 없는 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 또한 22절 말씀에 보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행동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약한 자”란 “믿음이 약한 자”(공동번역)입니다. 아직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성숙하지 못한 자들입니다(고전 8:7). 그래서 여전히 사람이 만든 율법과 관습, 제도에 사로 잡혀 있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믿음이 약한 자 앞에서는 자신도 믿음이 약한 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에 매인 자에게는 율법에 매인 자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믿음이 약한 자처럼 행동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 22절 후반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영혼구원이다.
-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어 그들의 종이 된 것은 어찌 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도 바울의 신앙적 태도를 본 받아야 합니다. 나 자신의 신앙적 태도와 지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도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도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 그렇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낸즉 즐거워하며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한다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을 하신 후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하신 주님의 복음전도의 명령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복음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부득불 해야 할 일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여 전도의 사명을 다하십시다. 또한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약한 자처럼 행동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십시다.
- 나아가 우리 자신이 복음을 담은 그릇임을 분명히 깨닫고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합시다.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과 걸림돌을 제거합시다. 특별히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깨닫고, 선한 청지기 되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주님의 뜻을 따라 선한 사업에 유용하게 사용하십시다.
- 그래서 일꾼들에게 필요들을 채우시되,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통하여 이 땅에서도 넘치는 삶이 되고,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천군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심판주로 강림하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고, 영생의 면류관을 받아, 천국에서 주님의 신부되어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2017. 7. 30 주일 낮 예배. 최성팔 목사)
- 기도 :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은 귀한 전도의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시니 은혜를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들 모두가 복음전도의 사명자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고,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던 주님의 심장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혹여나 우리가 복음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과 지혜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오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