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 전양준 청악산우회
지난 2004년 어느 겨울날. 김형일 형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우리 일행은 그 촬영을 돕기 위해 인제군 한계리에 기거하는 정준교 선배님 댁에 모였었다. 우리들의 술 익는 설악의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이틀이 지나갔다. 형일형이 떠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를 시작으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 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손재식 선배와 영화를 제작하는 임일진 감독, 트랑고타워를 꿈꾸는 장기헌과 김팔봉을 소개 받았고, 준교형 댁에도 처음 방문을 했었다. 우리는 모두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를 하고 있었어도 그렇게 가까운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십년지기들처럼 스스럼없이 하룻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손재식 선배는 취재차 동행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틀 동안 ‘웅조철진’과 ‘천국’을 취재했다. 네 명의 클라이머가 함께 개척한 ‘웅조철진’은 각자의 이름을 한자씩 붙여 생긴 루트이름인데, 이 중 ‘철’과 ‘진’은 탈레이사가르에서 추락사한 최승철과 김형진이다. 손재식 선배와 기헌이는 사고 당시 그들과 같이 원정을 갔었고, 김형진은 김형일의 친동생이다. 그래서 기헌이와 형일형이 ‘웅조철진’을 등반했고, 나는 팔봉이와 함께 ‘천국’을 등반했었다. 인공등반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는 약간 무섭긴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등반하고 내려온 기억이 전부다. 같은 사람을 그리워했던 기헌과 형일형은 그때 등반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7년 만에 다시 찾아온 ‘천국’ 올 겨울 다시 천국을 찾아왔다. 날씨가 너무 좋다. 소승폭에서나 볼 수 있는 코발트색 하늘이 오늘도 펼쳐져 있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너덜지대인 계곡과 숲길을 지나 벽에 거의 도착할 무렵 높이가 10m 정도 되는 암·빙벽 혼합구간이 나온다. 난이도가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여기고 장비 없이 오르다가는 사고가 날 위험이 있는 곳이다. 우리 일행은 좌측으로 우회한 다음 다시 하강해 이곳에 진입한다. 벽 위에 오르니 웅장한 바위벽과 빙벽, 그 위로 눈부신 하늘이 펼쳐진다. 그런데 하늘에는 매 두 마리가 빙빙 돌고 있다. 예전 유리창 청소부로 일할 때, 함께 일하던 직원이 매에게 공격받아 머리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인공과 자유등반을 섞여가며 천정 구간으로 진입하고 있는 필자
매를 예의주시하며 정신없이 너덜지대를 올라 ‘천국’ 루트 앞에 도착한다. 하도 오랜만이라 시작지점이 어딘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마침 동판이 눈에 띈다. 형진이와 승철이와의 눈 맞춤으로 ‘천국’이 시작된다. 일행 중 정준교씨와 조금석씨는 사진촬영을 위해 좌벽을 돌아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고, 나는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 초년생인 명희정씨의 확보로 바로 등반을 시작한다. “선생님, 제가 확보 보는 것이 겁나지 않으세요?” 그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간 동문 산악회에서 인공등반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등반해왔지만 100m나 되는 벽은 처음인 그녀는 약간 기가 눌린 듯하다. 간간히 덧장 바위가 있는 벽을 지나 햇볕이 비치는 1피치 테라스에 오르니 마냥 좋다. 7년 전 팔봉이와 왔을 때는 천정구간 크럭스 바로 직전에서 1피치를 끊었었지만, 그곳은 확보자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곳에서 마무리한다. 내가 좀 힘들더라도 로프 정리만 잘하면 위에 쌍볼트로 진입해 바로 천정 크럭스를 등반할 수 있기에, 오늘은 후등자를 배려하기로 한다. 2피치로 출발하자마자 하나가 빠지면 다른 확보물들도 연쇄적으로 뽑히는 바위 무더기를 지난다. 그곳을 지난 후에도 혹시 추락해 바위 무더기라도 밟으면 아래 확보자에게 돌이 떨이질 것 같아, 볼트까지 진입하는 동안 바짝 긴장을 했더니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다. ‘산에 오르다가 불편해 옮겨 놓은 돌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미덕이 있어야 한다.’ 내가 처음 산에 다닐 때 어느 산 잡지에서 본 글이다. 그 후 등반할 때면 항상 낙석을 조심하고 나무를 잡지 않으려는 버릇이 생겼는데, 오늘은 잡으려고 해도 죽어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볼트에 걸려 있는 썩은 슬링을 잡을까 말까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1m도 넘는 슬링을 잡지 않으려고 프렌드를 두 개나 설치하고서야 볼트에 확보를 한다. 슬링을 잡았어도 끊어지지는 않았겠지만, 만약 끊어져 추락했다면 내 체중과 가속도에 바위 무더기는 여지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볼트 위도 덧장 바위이기는 마찬가지라 ‘빠직’ 거리는 프렌드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덧장 바위 안에서 덜렁거리는 촉스톤이 신경 쓰여 레더를 밟지 못하고 인공과 자유 등반을 섞어가며 올랐더니, 쌍볼트에 확보하는 순간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천국 루트는 덧장 바위의 연속이라 낙석이 생기지 않게 등반 내내 긴장을 해야 했다.
겨우 몸을 추스른 후 천정구간을 돌파한다. 언제부터 박혀있었는지 모를 너트에 레더를 설치하고 몸을 띄워 다음 확보물에 레더를 설치한다. ‘여기 슬라이더가 들어갔었는데, 크랙이 왜 이리 넓어졌지? 깊이도 너무 얕은데?’ 예전에 등반할 때는 지금 매달린 너트를 믿지 못해 그 옆에 버드 빅을 박았었다. 내가 설치하고 회수를 못한 것이 생각 날 정도라면, 분명 슬라이더가 들어가는 곳이 있어야 했다. 집에서 나올 때 다른 건 몰라도 슬라이더만은 챙겨왔건만, 이것이 들어갈 자리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할 수 없이 하켄을 두드려 박는다. 마지막으로 프렌드 한 개를 천정 너머에 설치하고 나서야 천정의 공포에서 해방된다. 정준교씨의 회수에 이어 명희정씨의 저깅이 시작된다. “엄마야, 난 몰라. 어떻게 해.” 좌측으로 쏠리는 오버행 저깅을 처음 해 보는 명희정씨의 몸부림은 허공에 몸을 완전히 내던진 후에야 잠잠해진다. “처음 치고는 잘 하는데요.” 조금석씨의 격려에 힘을 낸 명씨는 “발이 닿지 않는다”며 툴툴거리며 일행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하지만 등반을 마친 후 하강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연신 “엄마야”를 외친 후에야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강을 해보니 남자인 나도 발이 바위에 닿지 않아 힘들다. 차라리 토왕폭을 오르는 것이 수월하겠다는 금석형의 말이 실감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 김형일 이제 형일형은 먼 길을 떠나고 없다. 그는 천국에서 동생 형진이와 함께 등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땅 위에는 아직도 그를 보내지 못하는 산친구가 많다. 요즘도 술자리에서 형일형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노라면 형일형은 그래도 참 잘 살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형일형을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가진 특유의 편안함과 친근함 때문이었다. 7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처음 만났던 우리가 밤새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 또한 형일형이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일진이는 술을 사랑하구요, 양준이는 힘이 좋구요, 기헌이는 차분하게 등반도 잘 하고 멋있구요, 팔봉이는 믿음직스러워요. 난 팔봉이와 등반을 가면 너무너무 편해요.” 그 날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나는 일진이와 캐나다 부가부 산군에서 영화 ‘벽(壁)’을 촬영했고, 기헌이와 팔봉이는 형일형과 함께 꿈에 그리던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에서 ‘크럭스 존(Crux zone)’이라는 신루트를 개척했다. 유리창 청소를 하며 아내와 두 딸을 키우던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탈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날 설악에서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중에 다시 연결고리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생전 스탠포드 대학 강연에서 한 말이다. 나는 지금껏 등반을 하면서 이 연결고리가 로프라고 생각했다. 로프는 선등자와 후등자를 연결해 주고, 클라이머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일형과의 추억이 깃든 이곳 ‘천국’을 다시 등반하고 난 후, 카라비너로 생각이 바뀌었다. 날카로운 하켄, 우직한 너트, 듬직한 프렌드 등 각기 개성을 가진 모든 확보물을 생명줄인 로프와 연결 해주는 것이 카라비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일형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우리들을 엮어준 ‘O형 카라비너’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그가 더욱 그립다. ⓜ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필자의 확보를 보고 있는 정준교씨와 명희정씨
|
첫댓글 일취월장~만땅기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