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면류관 / 야고보서 1장 12∼15절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 모두는 신앙의 경주자들입니다. 이 세상에도 크고 작은 많은 경기들이 있습니다. 경기에는 룰이 있고 승자에게는 상이 있고 메달이 주어집니다. 이 상과 영광을 위하여 모두가 땀과 피를 흘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빛나고 영광스러운 상과 메달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시험을 이겨낸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면류관을 쓰려면 시험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시험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벧전 5:8] 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오늘도 성도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예배를 못 드리게 방해합니다. 찬양할 때 다른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은 마귀가 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이 시험가운데서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고, 능히 이길 만한 시험만을 허락하십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날 때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14절 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은 나 때문에 일어납니다. 교회에서도 가끔 보면 섭섭 마귀와 친하신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작은 일에도 곧잘 섭섭해 하고 불평합니다. 내가 시험에 들면 나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이 다함께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행복해하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시험에 들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고통스럽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모두 나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험 든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타락한 도시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지만 그는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욘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그는 타락한 도시 니느웨 백성들이 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태도를 한 번 보십시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받은 존재이면서도 남이 잘 되는 꼴을 못마땅해 하는 요나입니다.요나가 누구입니까? 요나를 거꾸로 하면 한번 해 보십시오. 바로 ‘나요’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있어 내 마음의 상태와 조건이 마귀가 찾아오지 않도록, 시험에 들지 않도록 평소에 관리를 잘해두어야 합니다. 성경 [빌 4:7] 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잘 압니다. 그래서 믿음이 떨어질 때를 기다려 우리를 시험합니다. 문제가 일어날 때 마다마귀는 우리를 시험합니다. // 밭에 보면 배추나 고추를 심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나오는데 그 때에 보면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잡초들이 같이 솟아납니다. 참 신기한 것은 배추나 고추는 거름을 주고 흙을 돋구어주고 물을 대주고 애를 써도 잘 자라지를 않는데 잡초는 거름을 안 주어도 스스로 잘 자랍니다. 이놈들은 고추나 배추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으면서 자랍니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악한 것은 그대로 가만 둬도 스스로 잘 자랍니다. 우리는 마귀가 들려주는 음성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잘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같이 가 처녀요∼ 같이 가 처녀∼.” 할머니는 누군지 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싱글벙글하며 손자에게 밖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도 내가 집에 올 때 그러더니 오늘도 그러더라. 할머니가 그래도 많이 젊어 보이는 모양이다. 손자는 “할머니.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내일 보청기 끼고 다시 들어 보세요”하며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튿날 설레는 마음으로 보청기를 끼고 나선 할머니 뒤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갈치가 천원 요∼ 갈치가 천원∼.”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다른 소리를 들리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다른 길로 인도하려 합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인간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다른 것은 잘 못 들으면서 욕하는 소리는 잘 들립니다. 개 눈에는 무엇이 보인다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한 때 직원이 천여 명이 넘는 섬유회사에 책임자로 근무할 때가 있었는데 가끔 회장이 오시면 공장을 둘러보고 여러 가지 버려진 공구나 자재들을 한 보따리씩 들고 오셔서는 아직 쓸 만한데 왜 이렇게 버리느냐고 관리를 좀 잘하라고 나무라셨습니다. 제 눈에는 잘 안 보이는데 회장의 눈에는 잘 보이는 것입니다. 관심이 그만큼 더 있고 덜 있고의 차이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전에서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말씀대로 행하여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그 시험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시험을 이겨 생명의 면류관을 차지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5절은 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무엇이 죄입니까? 욕심이 죄입니다. 꺼꺼렁 욕심을 버리십시오.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가운데 씨가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는 비록 그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라고 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입니다.(막4:18~20) 욕심을 버릴 때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고 했습니다. 오직 복의 근원은 우리 하나님이 십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환경을 쫒다가 시험 들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잠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우리는 너무 가난하거나 부유함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가난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도는 많이 하는데 부하게도 말라는 기도는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말 죄를 멀리하기위해 부하게도 말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러므로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인생무상관람권이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백자와 청자이야기. 럭키치약이야기. 바다이야기. 괜찮다 괜찮아~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
주님은 더 크게 사용할 사람일수록 더 호되게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특별한 은혜의 대상으로 지목하신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높이시되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훈련과 큰 고난으로 그리하실 것입니다.”- A. W. 토저
-찰스 스펄전 목사는 말하기를 “내 모든 것은 용광로와 쇠망치 덕분이다. 위대하신 교사이신 하나님께 회초리를 맞을 때가 아니고는 나는 천국의 일에 진척을 보인 적이 없다. 우리 집에 있는 최고의 가구는 십자가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눅 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1. 한국교회의 개 교회 중심적 이기주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으로 점철되어 부패상의 온상이 되고 있다.
2. 이제 한국 농촌교회는 농촌지역의 선도적 기능을 회복하여 영혼 뿐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도 앞장서야 한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끝이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잠시잠간 고난이 있을지라도 이는 경건에 이르는 연단의 과정이요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고 나면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희망과 소망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열정이 있습니다. 열정을 영어로 ‘패션(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 속에는 ‘고난’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우리는 ‘더 패션(The Passion)’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온 인류에게 진정한 희망을 안겨주는 주는 열정 그 자체였습니다. 이 열정이 우리 인류를 향해서는 긍휼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긍휼은 영어로 ‘컴패션(Com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함께(Com)’와 ‘고난(passion)’의 합성어입니다. 주님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시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긍휼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Compassion)입니다. 오늘도 죄로 말미암아 주님의 곁을 떠나 방황하며 육신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한 체 고난 가운데 머물러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인생의 고난과 저주에 함께 동참하시는 것이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은 인류에게 진정한 희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긍휼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증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행복을 가져오는 희망의 꿈은 ‘하나님께 대한 열정(Passion to God!)’ ‘인류를 위한 긍휼(Compassion for Man!)’로 나타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믿는 만큼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이제 모든 시험을 이기고 희망을 키워 나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원 드립니다.
기도 : 시험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이산지를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에 걸 맞는 삶을 준비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형통과 쾌락은 절대로 사람을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해주지 않는다.”_ 아브라함 카이퍼
우리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진실 중에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유태인의 격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