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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꿈을 찾아서]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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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서]
유옥희 시집 / 모던포엠출판부 도서출판 채운재(2012.11.3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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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서
유옥희
한낮의 햇볕 내리쬐는
틈새라곤 없는 반듯반듯한 정사각형의
발걸음 잦은 시내의 보도블록 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암흑 같이 어두운 척박한 땅 속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꿈 날개 달고 날아와
믿기지 않게 틈을 비집고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 풀어내며
4차원의 생명 키우는 이름 없는 풀
존재의 본질이 고통임을 깨달아
위험 을 감수하며,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삶의 갈망, 꿈을 찾는 중이네
나들이
유옥희
신호에 막힌
차량 틈
도심 한가운데
노랑나비 한 쌍
온몸으로
포물선 그리며
아슬아슬한 봄나들이
빨라진 자동차 흐름에
한 마리
나비
후르륵 바람결에
짝 잃은 나비
한 마리
제 짝 어디 갔나
길 위에 맴도네
가뭄
유옥희
세안 후에 상쾌한 느낌
볕은 뜨거우나 습하지 않은 바람
비를 쫓아내는 징조라는데
한강 들녘 새로 만들어진 붓꽃군락지
일 년의 고단함, 피워 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모두 잘려 나갔다
내딛는 발걸음 따라 뽀오얀 흙먼지
수십 년 만에 제 무게 감당 못할
두터운 갑옷 입은 잔디와 풀
누렇게 시들시들 몸져 누워있지만
힘찬 빗줄기에 모두 벌떡 일어나
환희의 합창할 날 기다린다
거울
유옥희
발걸음 떼놓는 것조차
눈치 뵈는
잔뜩 부푼 풍선 같은 고3 교실
어쩌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고요한 정적을 깨우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주일 남겨두고
시위 당길 때의 팽팽한 긴장
시간을 움켜쥔 채
무지개를 찾는
아득한 옛날 내 모습
선생의 자리
유옥희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 동산의 과수원
만물 살찌우는 햇살 받고 쑥쑥
막 움 트기 전
가지치기해야 하는데
묘목 사다 공들여 키운 생명
정성과 사랑 아깝다
봄이면 꽃 잔치 열리는 무릉도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후
가지마다 다글다글 열매 맺히고
장마와 태풍 이기고 잘 자라도록
몇 개만 남기고 따줘야 하는데
가지치고 꽃 따주고 열매 솎아주는 적과摘果
순간의 아쉬움 잇다 해도
훗날 온갖 힘든 역경 견디고
희망으로 꿈 이룰 수 있는데
자식이 주는 기쁨과 행복에 취한
눈먼 자식사랑
정성과 사랑만 남았다
인성과 예절, 단체생활의 덕목
미래의 가치 있는 상품,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
선생님은
베테랑 가지치기 정원사
어떤 중독
유옥희
출근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컴퓨터 켜고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초고속 인터넷이
요즘엔 답답
수업 중 울리기전 열어보고 싶은
편지가, 오늘도 혹시나 기다리는
내 마음을 성급하게 만들고
매일 아침 전송되어오는 이메일
길들여지고 있는 나, 이유 있는회심의 미소
어린왕자 같은 동심은 나이와 관계가 없다
은근히 뱌려하는 마음
잔잔한 즐거움 주고
정성어린 우정의 묘약처럼
존재의 이유를 새삼 깨우쳐 주는,
어떤 중독
외출
유옥희
툭툭 투르륵 둔탁한 리듬,
억수로 퍼붓는 장마
숲 속의 산책길
빗속의 안개에 갇혀
초점 안 맞는 사진 속의 그림이 되었다
자동차 도로 옆
운동기구 가득한 동네 작은 공원
인적 없는 벤치,
우산 쓴 할아버지 홀로
빗속에 앉아있다
모정
유옥희
천지개벽의 신비로운 순간도 찰나
눈부신 햇살 가늠하기도 전
느닷없는 먹구름 동반한 코 토네이도
요술쟁이 만화경처럼 재미 가득한
동화 속의 주인공 되어 보는
무한한 상상과 천진난만한
꿈, 꾸어 보지 못하고
염문 모른 채 통째 사라진 사람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원초적 모정의 슬픔
마음의 상처 내색 않다가
쌓인 아픔 핑계 삼아
설움과 원망, 봇물 터진 듯
그리움에 흐느끼는 모정
어머니 전화
유옥희
곁에 젖먹이 있었던 젊은 시절
생사의 위기 용케 넘기시고
거대한 긴 시간 여행 중이시다
돌아보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
아스라한 뱌랑 끝에 홀로 서서
지나온 세월보다 더 힘든
하루하루의 두려움과 무력감을 감추고 사시며
하루 한 번 안부전화 드려도
싶은 산속의 옹달샘 같은 자식 사랑 넘쳐
보고 싶은 절박한 그리움 담아 기다리던 마음,
목소리도 듣기 전에 요즘엔
대뜸 ‘누구냐’ 하신다
사랑
유옥희
뻐-어-꾸-욱
불숙 튀어나온
한 마리 뻐꾸기
뻐꾹
시계 둥지 속으로 사라지네
연등날리기
유옥희
의미를 부여하며
엄숙하게 기도하듯 사는 모습
모두 똑같다
멀고도 아주 먼 지구 반대쪽
험준한 산 넘고 넓고 깊은 강과 바다 건너
속내 이루지 못한 소망
연등에 커다랗게 가득 써
휘휘 돌고 돌아온 곳,
다시 이루어지도록
불 지펴 뜨거운 열망 가득
두 손 모아 정성껏
외국어로 적힌 갖가지 소원
캄캄한 하늘에 얼핏 스치는 유성流星처럼
간절함 이룰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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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삶[生]은 평생[牛]가 외나무다리[一]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즐겁고 행복한 것은 한순간으로, 오히려 살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 앞에 존재 가치에 대한 회한과 무력감, 삶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늘 가슴 속에 담고 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농촌에서의 추억이 전혀 없던 제게 편리하지만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일상을 털어버리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자연을 찾다가 그림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처음부터 시인이 되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연과 소총하면서 나의 내면애서 들끓고 있는 막연한 사상事象들이 자꾸만 나의 밖으로 튀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산과 들과 간과 나무와 풀, 벌과 나비와 새들 같은 자연과 대화하며 그리던 그림 속에서 홀로 하던 말과 그림에 모두 담아내지 못하던 덧들 가슴에 품었던 생각과 말을 시라는 그릇에 담아내며, 아주 조금씩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직은 많이 서투르고 부족하고 또 때론 글 쓰는 일이 버거울 때도 많이 있지만 늘 곁에서 힘 실어 주는 가족들의 용기에 감히 그간 모아놓은 글과 함께 몇 점의 그림을 곁들인 시집으로 첫선 보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감성 잃지 않고 공부하는 글쟁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12월 어느 날에
유 옥 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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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희 詩集 [꿈을 찾아서]
[ 작품 해설 ] -
유옥희 시집 “꿈을 찾아서”
시는 화폭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다르게 담아낼 그릇
시인 우창섭
유옥희 시인은 시인이면서 화가다. 아니, 화가이면서 시인이다.
그에게 무슨 수사(修辭)가 붙든 분명 화가이고시인이다. 순서가 무슨 대수랴.
아마도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에 채워 넣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화폭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달리 담아낼 그릇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시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다소 그림처럼 구도(構圖)속에 갇힌 사각적(四角的)이고 도식적(圖式的)인 냄새가 난다. 무엇인가 표출해내는 것들에 대한 정직성이나 윤리성에 대한 집착이 강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단아하다. 사색의 틀이 반듯하다는 말이 될 수 있겠다.
시를 읽으면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윤리적인 측면에 너무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적이고 너그러운 인품의 냄새가 묻어나 때묻지 않은 맑은 영혼을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T.S.엘리엇이《시(詩)의 효용(效用)과 비평(批評)의 효용(效用)》에서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시인 자신의 정신적 보상(報償compensation)과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제공하고 있다는 시적 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의 “아뜨리에”에 실려 있는 그림을 보아도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이 주된 주제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인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순수하고 담백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의 시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 본다.
먼저 “열정”이라는 시 한 편을 읽어 본다.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럽던 겨울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희망이 부활했는가
연미복 입은 벌의 지휘에 맞춰
노란 드레스 입은 나비와 꽃의 봄을 위한 왈츠
덩달아 마음 들떠 허둥대다 보니
재미삼아 가꾸는 자그마한 과수원
온천지 푸른 바다를 닮아 버린 잡초들의 향연
자태 뽐내며 예서제서 튀어나와
범인 수색하듯 뿌리를 뽑느라고
온몸 파김치 되어 버렸는데
과일나무 꼭대기 위에
호로 하늘 향해 수줍은 꿈 키우며 꽃을 피워 올린
얼굴 보며 손대지 못했네
끈질긴 인내 속, 삶의 열정 피워내는 넝쿨 하나
― 시 “열정” 전문
아마도 시인은 과수원에 올라 잡초를 뽑아내고 있었던 것 같다.
“과일나무 꼭대기 위에/홀로/하늘 향해 수줍은 꿈 키우며 꽃을 피워 올린/얼굴 보며 손대지 못했네/끈질긴 인내 속, 삶의 열정 피워내는 넝쿨 하나”라는 마지막 연을 읽어 보면 시인이 그 과수원의 과일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넝쿨 잡초 하나를 보며, 그 잡초가 피워내는 꽃의 끈질긴 인내와 열정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은 참으로 순수하다.
계절도 봄이다. 봄이란 희망을 가진 계절이라는 의미, 그리고 삶의 청춘과도 같은 활달한 시기라는 의미에서 그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젊은 학생 -모범생도 있는가 하면 다소 말썽꾸러기 학생도 있는- 을 보는 눈길과 우연히 일치한다.
그래서 그는 그 넝쿨 잡초를 뽑아버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그 존재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실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시편에서는 젊은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학교라는 사회 환경이 투영되고 그 속에서 남다른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학교 현장에서 발견되는 이야기 한 토막이 삽입되어 있는 시 “웃음소리”를 만난다.
봄날의 나른한 오후
휴대폰이 교무실의 정적을 깨며
신명나게 울린다
전화기를 집어든 선생님
모든 사람의 시선에 쩔쩔맨다
수업 방해한 괘씸죄로
압수해온 최첨단의 기계
사용법 몰라
너도나도 만져 보지만
꺼지지 않는 소리
사무실 모든 사람 당황하는데
수업중 학생들의 깔깔 웃음,
재미있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 그것도 모르세요?
― 시 “웃음소리” 전문
요즘의 젊은 학생들은 현대문명의 이기인 휴대폰에 아주 익숙하다.
선생님들은 나이가 좀 더 많으므로 그런 첨단 기술이 접목되어 있는 새로운 제품을 만나면 그것에 익숙하게 되기 전에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현장의 이야기이다.
공부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학생으로부터 빼앗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잠시 교단에 영치시킨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온다. 새로운 전화기에 익숙하지 못한 선생님이 전화기의 통화 신호음을 끄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자신들이 지식을 전수받는 선생님도 “모르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쾌감”으로 연결된다. 현대 사회의 현실이 재미있게 투영된 ‘작은 소란’이 무엇인가 마음에 와 긴 여운을 남긴다.
시인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당연하다는 자의식을 드러낸다.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 동산의 과수원
만물 살찌우는 햇살 받고 쑥쑥
막 움트기 전
가지치기해야 하는데
묘목 사다 공들여 키운 생명
정성과 사랑 아깝다
봄이면 꽃 잔치 열리는 무릉도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후
가지마다 다글다글 열매 맺히고
장마와 태풍이기고 잘 자라도록
몇 개만 남기고 따줘야 하는데
가지 치고 꽃 따주고 열매 솎아주는 적과(摘果)
순간의 아쉬움 있다 해도
훗날 온갖 힘든 역경 견디고
희망으로 꿈 이룰 수 있는데
자식이 주는 기쁨과 행복에 취한
눈먼 자식사랑
정성과 사랑만 남았다
인성과 예절, 단체생활의 덕목
미래의 가치 있는 상품,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
선생님은
베테랑 가지치기 정원사
― 시 “선생의 자리” 전문
선생이라는 “자리”(=직업)에 대한 윤리의식과도 같은 그의 신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봄……. 모든 일의 시작이면서, 그 시작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적과(摘果)의 과정을 겪어 보면 그 작은 열매 하나를 따내는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되는지 알게 된다.
“가지 치고 꽃 따주고 열매 솎아주는 적과(摘果)/순간의 아쉬움 있다 해도/훗날 온갖 힘든 역경 견디고/희망으로 꿈 이룰 수 있는데/……/선생님은/베테랑 가지치기 정원사”라는 의식의 단면이 학생에 대한 애정과 소망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선생의 자리”라는 직업윤리 의식을 하나의 자의식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읽게 된다.
이 외에도 어린 학생들의 한순간 잘못으로 소년원에서 교화를 경험하고 있는 현장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시 -“이유 없는 반항, 한순간의 실수로/사라진 무지개, 좌절과 회한을 끌어안고/어긋난 삶의 집단 생활(시 “얼굴없는 아이들” 부분)”- 와도 같은 시를 만나는 것도 시인의 의식에 감추어져 있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다음에는 그의 개인적인 삶이 투영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게 된다.
차량 통행 뜸한 휴일의 아침
거침없이 쌩쌩 달리면
이 세상 모든 것 날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출근길 복잡한 틈 비집고 곡예하며
다른 사람 제칠 때
짜릿함과 통쾌함은 그들을 이긴 승리감
순간, 뒤따르던 차 냉큼 앞서 달리면
잘 나간다 으스댈 것 없이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예측할 수 없는 도로 위의 사고
얽히고설킨 틈 꼼짝할 수 없을 땐
늘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린 삶
잠시 한 박자 늦추며 살라는 충고 같네
― 시 “차를 몰다가” 전문
흔히 겪는 일을 시화한 대목이다.
매우 인간적인 일, 누구라도 한 번 쯤은 겪어 본 일이 “선생”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는- 에게도 일어나고, 그때에 겪는 마음의 흔들림을 아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차를 몰고 가면서 다른 차를 앞질러갈 때의 통쾌함이 인간의 질주 본능과 승부욕을 자극하는지도 모른다. 매우 인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곧 그는 윤리적 판단의 세계로 돌아온다.
“예측할 수 없는 도로 위의 사고/얽히고설킨 틈 꼼짝할 수 없을 땐/늘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린 삶/잠시 한 박자 늦추며 살라는 충고 같네”와 같은 잠언적 태도가 표출된다.
그 외에도 사회현상에 대한 지식인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4대강 사업과 낭비의 현장 고발한 “부자나라”와도 같은 시가 있고, 도시 생활과 농촌 생활의 양극화를 드러내 보이는 “염치 “---” 집집마다 공주 왕자 다 키운/주부들 한가하여/신문마다 넘치는 우울증 방지법//한평생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자식 위해/일하고 남은 삶, 일을 위한 인생,/우울증 올까 병원 찾는 우리들/농촌의 노인들 우울증이 뭔가요? -와 같은 시를 통해 시인은 사회 전반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드러내며 사회적 광정(匡正)의식을 나타낸다.
한들한들 치맛자락 휘날리는
가냘픈 여인의 모습
고된 시집살이 삼십 리 재 넘어 허위허위 가는 길가
어찌 한숨인들 없었으랴
인적도 없는 곳에서 오가는 사람 반기던 꽃이
당신의 모습을 닮아
무척이나 좋아하던 어머니 꽃
전생의 꽃이 환생한 듯한 어머니 모습을 옮겨
예쁜 울타리 만들어 볼까
과수원 언덕길에 몇 송이 심었는데
1년 만에 과수원 아닌 코스모스 꽃밭이 되었네
이제는 뽑아내기도 송구스러운 어머니 모습
뒤죽박줄 과수원이 사라진 뒷모습 쳐다보면
평생 살면서 뒤집히는 일 그것뿐이랴
지나고 보면 속 뒤틀리고 가슴 아린 일도 많았지
허나, 온갖 고초 겪으며 새로운 꿈꾸던
꿋꿋한 꽃, 엄마를 읽는다
― 시 “코스모스.2” 전문
시인의 의식 중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가족에 대한 우애와 사랑이다.
특히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게 투영되고 있다.
“한들한들 치맛자락 휘날리는/가냘픈 여인의 모습/고된 시집살이 삼십 리 재 넘어 허위허위 가는 길가/어찌 한숨인들 없었으랴/인적도 없는 곳에서 오가는 사람 반기던 꽃이/당신의 모습을 닮아/무척이나 좋아하던 어머니 꽃”이라는 표현으로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의식을 드러낸다.
그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코스모스’를 심었다가 온 과수원 전체가 코스모스 밭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보고 그 꽃을 뽑아내는 마음에 그는 “이제는 뽑아내기도 송구스러운 어머니 모습”으로 코스모스를 그려낸다,
이 외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버려지거나 눈길을 자주 주지 않는 강아지와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새 식구”에서는 ‘고양이’를 , “내 친구”에서는 시골집에 있는 강아지 ‘까맹이’를 등장시켜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여 존재에 대한 애정을 담아내고 있다.
안개 자욱한 수묵화 속 남한산성
휘이 돌며
마음을 다스려 볼까
한낮, 유난히, 한치 앞이 안 보이는데
머리 따로 가슴 따로
지혜로운 자신을 믿어야지
홀로 다짐하며 가다 보니
이제껏 내 인생 혼자였네
어느 때이던가
진지한 인연도 있었는데 발길 돌려
너무나 멀리 와버린
일방통행, 되돌아갈 수 없는 길
자존심 하나로 생을 바꾸어 놓고
꿋꿋이 살아온 세월
주인공 되어 독백해야 하는
인생의 후반전
안개 낀 날 소가 길 찾듯 했네
― 시 “안개” 전문
좀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시인의 마음 한 조각이 진솔하며 단정하게 드러나 있는 “안개”는 사물의 형상성의 관점에서 삶의 정서적 영역으로 치환시킨 시의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한낮, 유난히, 한치 앞이 안 보이는데/머리 따로 가슴 따로/지혜로운 자신을 믿어야지/홀로 다짐하며 가다 보니/이제껏 내 인생 혼자였네”라는 언술이 그의 삶을 통과하는 자존심의 영역을 은근히 말해 준다.
솔직히 토로한 그의 언술이 고작 “이제껏 내 인생 혼자였네” 이지만 그 뒤편의 공명(共鳴)의 공간은 아주 오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는 “인생의 후반전/안개 낀 날 소가 길 찾듯 했네”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외로움이나 자신의 견고한 자존의식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인생의 담론과도 같은 시 한 편을 읽어 본다.
바람을 안고 달린다
하늘을 나는 상쾌한 기분
언덕에서
거침없이 내리막길로
평지, 다음엔 숨 가쁜 오르막길
잠시 게으르면 그대로 멈춰버리는
세상의 이치
스스로 노력 없인
절대 이루지 못하는 꿈
앞으로 달리지만
뒤로 나아갈 수 없는
함께 가는듯 하면서도 혼자 가는 길
시작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넘어져도 다시 힘내어 가야 하는
우리의 인생
― 시 “자전거 타기” 전문
사실 인생이란 “자전거 타기”와 매우 닮았다. 앞으로 가기만 할 뿐, 뒤로 가는 길은 없다. 겨우 뒤로 가는 길이란 기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함께 가는듯 하면서도 혼자 가는 길/시작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넘어져도 다시 힘내어 가야 하는/우리의 인생”이라는 그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도 그대로 하나의 사실적 진리이다.
어쩌면 그는 그러한 믿음 위에서 삶에 대한 의식을 다져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를 보기로 한다.
한낮의 햇볕 내려쬐는
틈새라곤 없는 반듯반듯한 정사각형의
발걸음 잦은 시내의 보도블록 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암흑같이 어두운 척박한 땅속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꿈 날개 달고 날아와
믿기지 않게 틈을 비집고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 풀어내며
4차원의 생명 키우는 이름 없는 풀
존재의 본질이 고통임을 깨달아
위험을 감수하며,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삶의 갈망, 꿈을 찾는 중이네
― 시 “꿈을 찾아서” 전문
그는 이 시에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암흑같이 어두운 척박한 땅속/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꿈 날개 달고 날아와”라고 표현하여 인생이란 아주 먼 전생의 업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윤회”의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의식 속에서 “꿈”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이와 같이 그가 섭렵하는 시적 주제에 담긴 꼿꼿한 의식이 시를 단아하고 단단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제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첫 시집”,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애정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집을 5부로 나누어 각각의 장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관점의 세계를 펼쳐내 보이고 있는데, 제1부에서는 일반적 서정적 감성을 다루었고, 제2부에서는 직업과 관련한 선생이라는 의식을 중심축으로 하였고, 제3부에서는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문명적 비판이나 시선을 담고 있다. 제4부에서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관점을, 마지막 제5부에서는 시속의 깨달음을 중심 테제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교직생활에서 얻은 시인 자신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그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 시인의 의식세계에 침윤되어 있는 사상이 어떤 선택도 가능한 감상자들과의 교감에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의 세계를 맛깔스럽고 깊은 감동이 내재하는 시의 세계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의 영혼이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덧붙여 본다.
어쩌면 시에서는 시인의 정신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명제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심성적 한계성은 하나의 흠결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도 인간인 이상 시에서 어찌 완벽함만을 요구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시인이 선 자리에서 그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적 여유와 나누고자 하는 담론이 그의 시를 탐색하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함께 누릴 가치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시인의 닫힘 또는 갇힘의 현상은 그가 살아온 생애의 조건이나 사회적 한계를 의식하는 사이에 두꺼운 벽으로 자리 잡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자유로운 심상의 세계를 투영하게 된다면 더욱 아름답고 단단한 시의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첫 시집을 상재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012년 11월 15일
시인촌에서 시인 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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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T.S.엘리엇이《시(詩)의 효용(效用)과 비평(批評)의 효용(效用)》에서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시인 자신의 정신적 보상(報償compensation)과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제공하고 있다는 시적 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의 “아뜨리에”에 실려 있는 그림을 보아도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이 주된 주제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인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순수하고 담백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아니었을까?
작품해설 중에서
시인 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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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희 시인∥ 화가의 경력
∙고려대학교 석사과정 졸업
∙현) 서울 한영외국어 고등학교 영어교사
∙서양화 개인전 2회
∙한국미술협회 회원 서양화 작가
∙강동 미술협회 서양화 작가
∙월간 모던포엠 시 부분 신인상으로 등단
∙세계모던포엠작가회 회원
∙시인촌 동인
∙모던포엠 동인
∙제9회 모던포엠 문학상 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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