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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망의 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끄싱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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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 가 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 강권하 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 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 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치니라. |
오늘의 말씀은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룻기에서 보면 유대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 자기 부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이라고 하는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유대에 흉년이 들었으므로 저들이 살기 위해 모압에 내려갔다가 남편 엘레멜렉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이 죽은 지 십년 후에 두 아들도 장가를 들었지만 아들 둘 마저도 잃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울면서 두 며느리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들이 나와 우리 가정에 선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선대하기를 바라니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돌아갔으나, 룻은 “어머님, 어머님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저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님과 떠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하면서 룻이 그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자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누구냐? 나오미가 아니냐?” 나오미란 ‘유쾌한 자’ 란 뜻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을 때에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 라고 하지 말라. 나를 ‘마라’라 하라. 나는 살기 위하여 이국땅에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고 슬픔과 외로움으로 돌아왔노라. 그러므로 나를 ‘희락’ 이라고 하지 말고 ‘괴로움’ 이라고 말하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두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함께 인생의 괴로움과 고난을 어떻게 대하였던가를 찾아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본문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시어머니의 권면을 따라서 떠났던 오르바의 이야기는 성경에 더 나오지 않습니다. 시어머와 함께 외로움과 고난의 길을 용감히 나셨던 룻은 드디어 다윗의 할머니가 되어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룻은 비록 모압 이방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고 다윗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역사 연구가인 토인비는 “역사는 하나의 도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문제, 그 자체보다도 그 문제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고 말하였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하루아침에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어떤 소망도,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오늘 아침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고난과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태도를 먼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원망과 불평의 태도.
고난과 문제에 대한 부당성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을 터뜨리는 태도입니다.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나도 양심을 지켜 살았고, 선하게 살려고 애를 썼고, 남을 도와주고 봉사하며 살려고 했는데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다 말인가? 왜 이런 고난이 닥치는 것인가?” 하면서 불평을 터뜨립니다.
그 가장 좋은 예를 출애굽의 역사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의 광야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열 번이나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였으면,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으면, 이 홍해를 건너지 아니하고도 다른 선한 길로 인도할 수 없었겠느냐? 오히려 애굽에 있었으면 고기국물이라도 먹고 살았을 것이 아닌가? 오히려 우리가 거기서 죽었으면 좋을 뻔했다.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의 신을 만들자.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3~4).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나안 복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복지는 갈수록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장래가 가려집니다.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깨어집니다. 사람과 사람, 교회와 교회, 민족과 민족 사이에 원망이 싹트기 시작하고 불평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신뢰가 깨어지고 장래를 향한 소망의 등불이 꺼집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은 “너희들이 나를 원망하고 너희들이 입으로 오히려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을 뻔 했다고 했으니, 너희들이 말한 그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갚을 것이니, 너희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이 없느니라.”(민 14:28~30)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시체가 광야를 덮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무서운 결과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우리 앞에 닥친 고난을 향하여 불평, 불만을 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2. 도피적인 태도
고난에 대한 도피적인 태도입니다. 시편 55편에 보면 다윗은 고난 중에 폭풍이 지나도록 내가 피하리라고 하는 초보적인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장소를 벗어나 평강과 무사의 장소로 안착되어 안주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자처하고 쾌락을 누리시를 멀리 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도피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더 큰 고난을 만나, 마치 혹을 떼러 갔다가 옥을 하나 어 붙이는 격이 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도피적 삶의 태도는 심리적인 면으로 볼 때 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도피함으로써 새롭게 얻어 지는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곧 실패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를 가져옵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 우리는 고난을 필할 길이 없고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문제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3. 자기연민과 동정의 태도
고난에 대한 자기 연민과 동정에 빠지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나보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없고, 나보다 더 억울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자기 연민과 동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신은 건강해 보입니다.”라는 인사를 듣기보다는 “당신은 피곤해 보입니다.” “당신은 외롭지요?” 하는 말이 더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동정하고 연민을 느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하여 고독과 아픔을 즐기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자기 포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숙명적으로 이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깊은 연민에서 자신을 바라볼 뿐, 거기에는 아무런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처음에는 연하게 그렸다가 점점 뚜렷하게 그리게 되면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기 연민과 동정을 자꾸 그려 넣어서 깊은 상처 속에 헤어날 수 없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좌절이고 죽음입니다.
고난은 때로 우리에게 욕망을 제거해 주고, 보다 더 높고 깊은 차원으로 이끄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의 원인을 분석할 수 없고 그 문제를 풀길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고난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삶의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가서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나와 함께 기도하자.” 하셨고, 또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아버지여,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아픔, 수치, 죽음, 멸시에 대한 인간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있었습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들의 아픔과 그 모습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고난 그 자체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바라봄으로서 고난과 맞서서 일어나는 용기,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용기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믿기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는 억울함과 부당함에도 담대히 일어서고, 인내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 그 죽음 뒤에 있는 놀라운 부활의 아침을 주시고자 하신은 것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에 그는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였고, 욥의 친구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원망하는 일이 아니요, 피하고 자기 동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이르는 고난과 역경 뒤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용감히 일어서는 태도, 그것이 바로 믿는 자의 태도이며 참된 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에게 안락한 담요에서 영원히 잠을 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바람 속에 담대히 일어나게 하시고, 죄악의 홍수 속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우리를 세우시는 것이니, 영의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앞에 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죽음 앞에 담대히 일어섰던 자들이요,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고, 고난을 자청했던 분들이 아닙니까? 이 역사 위에서 고난을 도피한 그 누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까? 절망 위에 소망의 깃대를 꽂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친 무서운 고난을 박차고 일어섰던 사람들입니다. 미음과 시기와 좌절이 있는 곳에 아름답고 뜨거운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들, 그들은 바로 고난을 딛고 일어섰던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요, 아픔이지만 십자가 뒤에 숨어 있는 놀라운 부활의 영광은 오늘 우리를 놀라운 승리로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많은 문제를 안고 오신 분이 있습니까? 용기를 가지십시오. 주님은 사랑하는 제제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이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니 내 뜻대로라면 이 잔이 내게서 물러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며 몽둥이와 칼을 들고 오는 원수들을 향하여 당당히 일어서서 가셨으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함께 하느니라”(수 1:9)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역경과 환난의 고난으로 인하여 지쳐 쓰러져 신음하고 계신 분들에게 “자 일어나라.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나와 함께 십자가를 향하여 가자. 부활의 아침을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에 맡기자. 죽으면 살고, 썩으면 열매를 맺나니 낮아지면 높아질 것이요, 섬기면 존귀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을 향하여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용감히 일어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 앞에서 도피하지도, 스스로 동정하지도, 부당하다고 말하지도 말고, 일어서서 주와 함께 고난을 향하여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불평함은 하나님의 뜻을 불평함이요, 고난을 도피하고자 함은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위심함이요, 자기의 연민과 동정 속에 깊이 빠짐은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부인함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반 만 년의 역사를 살아온 이 민족을 향하여, 갈라진 허리로 통일의 그날을 바라보는 이 민족을 향하여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고 명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아름다운 승리가 우리에게 아름답게 열매 맺혀질 때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셨구나!”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우셨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그 크고 놀라운 뜻을 시행하고 계시구나!” 하는 고백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에 이 큰 감격과 승리를 찬송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첫댓글 감사^^*
"고난은 또 하나의 기회(룻 1: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