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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3월 17일 월요일
[(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움을 실천하려면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심판하시거나 단죄하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정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알아차리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해하는 데 바오로 사도가 회심하는 과정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회심하기 전까지 십자가 죽음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런 바오로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시거나 단죄하시지 않고 용서하셨습니다.
바오로는 죄인인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체험으로 배반자 이스라엘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하느님의 자비(예레 3,12-13 참조)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담긴 신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로마 11,32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해하려면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먼저 체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을 판단하거나 단죄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 집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상대에게 잘못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만 보려는 우리의 한계를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자 노력합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겸손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가톨릭 연구소에서 교우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성당에 다니는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성당을 떠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성당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는 신앙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성당에 다니는 이유입니다. 이유는 다섯 가지 정도 되었습니다. 첫째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평화의 인사’를 합니다. 마음의 평화는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필요한 위로입니다. 둘째는 ‘삶의 의미와 목적 발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라는 사명입니다.
셋째는 ‘공동체와의 유대감 형성’입니다. 여행을 가도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함께 가는 것이 좋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안전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는 함께 모여서 기도하였고, 찬양하였습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었고,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가톨릭은 세계 어디에 가도 같은 전례를 하기에 유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넷째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지침’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은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려거든 꼴찌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겸손, 희생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다섯째는 ‘전례와 의식 참여로 영적인 충만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신앙생활의 정점입니다. 고백성사를 통해서 주님을 합당하게 모실 준비를 합니다.
성당을 떠나는 이유도 다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삶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성직자와 수도자에 대한 실망 때문입니다. 넷째는 성당 내에서의 소속감, 교제, 혹은 따뜻한 공동체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교회 조직의 경직된 구조나 변화에 대한 저항, 혹은 내부 정책과 결정 과정에 대한 불만 때문입니다. 교우들이 성당에 바라는 것도 다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신앙 교육 강화입니다. 둘째는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입니다. 셋째는 신자들의 재교육입니다. 넷째는 성당의 시설개선입니다. 다섯째는 청년 사목의 확대입니다.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은 성당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찬례(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미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축복과 감사의 예배입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둘째는 ‘하느님과 깊은 만남’입니다. 모세는 거룩한 곳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성당은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셋째는 ‘죄의 용서와 영혼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셨습니다. 용서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넷째는 ‘공동체로서의 신앙’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교회가 모진 박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몸으로 의지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편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함께 모여 오순도순 사는 것” 다섯째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성당에 다니는 것은 현세에서 축복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현세에서 비록 고난과 역경을 당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당에 다니는 진정한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은 진실한 회개였습니다. 하느님의 법과 계명의 준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의 신앙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늘 하느님처럼 되어가는 것>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하느님이
될 수는 없지만
쉬지 않고
하느님처럼
되어가는 것이니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늘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희망한다는 것은
결코
하느님이
될 수는 없지만
쉬지 않고
하느님처럼
되어가는 것이니
하느님을
향한 희망은
늘 더욱 새롭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하느님이
될 수는 없지만
쉬지 않고
하느님처럼
되어가는 것이니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늘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제르트루다 (Gertrude)
활동년도 : 626-659년
신분 : 수녀원장
지역 : 니벨레스(Nivelles)
같은 이름 :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복자 페핀(Pepin, 2월 21일)과 성녀 이다(Ida, 5월 8일)의 딸로 태어난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는 란덴(Lande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경건한 생활을 본받았으므로 스스로 수도생활에 헌신하고자 노력하였다.
639년 복자 페핀이 사망하자 성녀 이다는 니벨레스에 수도원을 세우고 딸과 함께 입회하였는데, 딸인 성녀 제르트루다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656년에 원장직을 사임한 그녀는 성서 연구와 고행하는데 몰두하였다.
환시의 은혜를 받은 것이 특기할 만하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여행자와 정원사의 수호성인이다.
성 파트리치오(Patrick)
신분 : 주교, 선교사
활동지역 : 아일랜드(Ireland)
활동연도 : 389?-493년
같은이름 : 바드리시오, 빠뜨리시오, 빠뜨리시우스, 빠뜨리치오, 빠뜨리치우스, 파트리시오, 파트리치우스, 파트리키오, 파트리키우스, 패트릭
로마제국의 브리튼(현재의 영국) 식민지에서 지방의회 의원이었던 귀족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389년경 스코틀랜드 던바턴(Dunbarton) 근처 킬패트릭(Kilpatrick)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세 때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열정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꿈 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탈출한 그는 200마일이 넘는 길을 헤맨 끝에 킬랄라(Kilala) 만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항해 준비를 마치고 있던 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노예 생활을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 경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명에 따라 그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를 회개시키려는 열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교황청으로부터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432년경에 성 게르마누스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주교였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를 계승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 추장들과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Roma)를 방문하였고 아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선교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40년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록한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을 썼는데 그것은 일종의 호교서이기도 하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493년 3월 17일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Downpatrick)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상징은 뱀과 토끼풀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내어 없애 버렸다는 것과 그가 어떤 미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 파트리키우스를 기념하는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에 국화인 토끼풀을 옷깃에 달고 녹색 옷을 입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함께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제 안에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제 뒤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제 앞에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제 옆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차지하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제 위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제 아래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고요함 중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위험 중에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친구와 낯선 이의 입에 계시옵소서.
- 성 파트리치오
성 요한 사르칸데르(John Sarkander)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체코(Czech)
활동연도 : 1576-1620년
같은이름 : 요한네스, 요안네스, 조한네스, 조안네스, 조반니, 존, 죤
성 요한 사르칸데르(Joannes Sarkander)는 오스트리아계의 슐레지엔(Schlesien, 실레지아) 태생으로 13세 때에 부친이 사망하자 14세의 어린 나이로 프라하(Prague)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그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올로모우츠(Olomouc) 교구장의 눈에 들어서 교구사제가 되었다.
16세기에 이 지방은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회원의 도움을 받아 이단자의 개종 운동을 전개하여 250명의 개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주위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데, 1618년에 30년 전쟁이 체코 동부 모라비아(Moravia)에서 터졌을 때 난리를 잠시 피하기 위해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홀레쇼프(Holesov)로 돌아와 갖은 고초를 겪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는 1860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5년 5월 21일 체코의 올로모우츠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셉 (Joseph)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활동지역 : 아리마태아(Arimathea)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조셉, 요세푸스, 요제프
네 복음서에 모두 언급되어 있는 아리마태아 사람 성 요셉(Josephus)은 의회 의원이었으나 유대 당국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비밀리에 예수를 따라 다닌 제자이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다가 예수님이 운명하자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고운 베로 싸서 바위 무덤에 모셨다(마르 15,43-46; 마태 27,57-60; 루카 23,50-53; 요한 19,38-42).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한 일이 없고, 하느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프랑스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여 가는 성 필립보(Philippus, 5월 3일) 사도를 수행하였고, 잉글랜드(England)로 파견되는 12명의 선교단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잉글랜드 왕이 하사한 땅에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대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아마도 이곳에서 서거한 듯 보인다.
또 성 요셉은 최후 만찬에 사용된 성작을 물려받은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연령회와 장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동방교회에서는 7월 3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루가23,50-56
50 의회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올바르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51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을 한 일이 없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동네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이었다.
52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53 그 시체를 내려다가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이었다.
54 그 날은 명절 준비일이었고 시간은 이미 안식일에 접어들고 있었다.
55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도 그 곳까지 따라가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어떻게 모시는지 눈여겨 보아두었다.
56 그리고 집에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계명대로 쉬었다.
마르15,43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마태 27,57-61
묻히시다 (마르 15,42-47 ; 루카 23,50-56 ; 요한 19,38-42)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다.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요한19,38-42
38 그 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게 하여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렸다.
39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40 이 두 사람은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42 그 날은 유다인들이 명절을 준비하는 날인데다가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공관복음서의 보도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니고데모가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함께 "유대인의 장례 관습대로" 예수의 시신을 존경스럽게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무덤에" 안장한 점이 크게 다르다.
그대신에 여인들에 관한 언급은 없다.
특히 예수의 시신을 존경스럽게 염하고 깨끗한 무덤에 안장한 내용은 예수 자신이 들어올려져 영광스럽게 된다는 요한 복음서의 독자적인 전승 내용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은 마르코 복음사가의 보도(15,43)에 따르면 "명망있는 의회의원"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 거주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
니고데모도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처럼 숨어서 비밀리에 예수를 따랐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이제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예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를 결정적으로 드러내게 된 셈이다.
또한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의 소유였다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전한다(27,60)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란 표현은 예수의 왕적인 품위와 거룩함에 상응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신 예수의 영광을 시사하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의 이 무덤은 오늘날 "예수의 무덤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 위치했었다고 하며 역사 고고학적으로도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주석에서)
성녀 비트부르가(Withburga)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데르햄(Dereham)
활동연도 : +743년경
같은이름 : 비트브루가 위트부르가 위트브루가
성녀 섹스부르가(Sexburga, 7월 6일)와 자매간인 성녀 비트부르가는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의 왕 안나(Anna)의 딸이다.
그녀는 작은 언니의 뒤를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는데, 노퍽(Norfolk) 연안의 홀크햄(Holkham)에서 다년간 은둔생활을 하였다.
부친이 전쟁에서 서거한 뒤에는 데르햄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주변에 수많은 여성들이 모여들자 그곳에 수녀원을 세웠다.
그녀는 743년 3월 17일에 선종했고 유해는 이스트 데르햄 성당에 안장되었다가 50년 후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녀의 유해는 조금도 부패하지 않았다.
그녀는 위트부르가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