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5월의 마지막날입니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기도 한대, 제가 이동장터를 운영한지 1년을 채운 날이기도 합니다. 2023년 6월 1일부터 운영하여 오늘까지 딱 1년입니다.
코스를 어떻게 외워야할지, 각 코스마다 시간은 어떻게 맞출지 고민과 걱정이 많았던 초기에 비해, 지금은 여유롭게 다니는 스스로의 모습보며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
오월의 마지막, 오늘도 즐겁게 출발합니다.
9시 20분,
오늘도 여느날과 비슷하게 어르신들께서 같은 물건들을 구매하십니다.
"어찌 내가 그거 사는 줄 알면서 안갖고 왔담?"
손주를 주기 위한 불닭볶음면, 아침에 챙긴다는걸 깜박했습니다. 어르신께 바로 점심에 갖다 드린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빵을 내가 여기서 한 너댓게 살려고했는데..."
빵을 제과점에서 납품 받아오다보니 수요일 주문에 차질이 생기면 목, 금 제공이 어려워집니다. 또 목요일날 많이 팔리게되면 금요일날 파는 갯수가 줄어들게됩니다. 많이 받자니 남게되고, 적게받자니 모지라게 되니,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옛날에는 단팥빵을 많이 사셨는데, 최근에는 소보로빵이 더 많이 팔리는 것이 어르신들 입맛도 변한듯 싶습니다. 단팥빵이 어르신들 소화하기가 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소보로의 단맛이 어르신들에겐 더 좋아지나보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르신들 다 계산하고 난 뒤 젊은 삼촌을 기다리는데, 안내려오셔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제가 나왔는데 혹시 이따 점심에 배달 안될까요?" 하시는 삼촌. 제가 온 김에 바로 갖다 드린다고하며 값은 나중에 치루기로 합니다.
9시 45분,
회관에 들리니 어르신들 두분이 나와계십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어르신 한 분이 코피를 쏟고 계셨네요.
"아휴.. 이놈의 코피가 한 번 나면 주루루루룩 나는 것이 멈추질 안당게."
어르신께서 과로를 하셨는지, 최근 일이 많으셨던것 같습니다.
회관에 들어가니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커피 타먹고 가라는 말씀에 제가 타드린다고 하였더니,
"요즘엔 남자들도 커피도 탈줄 알어~ 아 타주면 좋지~" 하시는 어르신들입니다.
아직까지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되고, 누군가를 대접하고 하는 일을 하면 안되나 보나 싶습니다. 여성 어르신들의 삶이 그러하셨겠지요.
직접 타드리고 뜨거우실까봐 찬물 조금씩 섞어 드리니 좋아라하십니다. 어르신들과 맛나게 커피 한 잔 먹고 자리를 나섭니다.
10시 10분,
어르신댁에 가니 안보이던 외벽이 보입니다. 무엇인가 봤더니 어르신 화장실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에서 쓰는 것이 불편하였던 것인지, 지역 청년회에서 지원받아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요양보호사님도 오후에 나오셨지만 오늘만큼은 오전에 나와계셨습니다.
어르신 필요하신 물건 또 고르는 과정에 요양보호사님은 일부 제제를 하셨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은 최소화 하고 없는 제품 중심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셨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물건을 다수로 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시 20분,
오랜만에 나오신 어르신, 공병은 10개.
어떻게 사셨는지도 궁금했지만, 그간의 안부가 더 궁금했습니다.
"내가 몸이 좀 안좋아서, 병원에 좀 있었어~ " 하시며 가슴 안에 상처를 살짝 보여주십니다. 그간 또 힘드셨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어르신 병원 가시는 주기가 점점 더 잦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10시 35분,
원래 이번주에 안계신다고했던 어르신. 회관 앞에 앉아 계십니다.
"내가 원래 안오려고했는데, 군에서 계속 오라고 해서 어쩔수 없이 내려왔어~ 혹시 돼지고기 있는감?"
사전에 미리 말씀을 안하셔서 못갖고 왔지만, 오셨으니 구해다 드려야겠다 싶어서 바로 주문 해드렸습니다.
어르신댁에 설치되어 있는 고독사예방 장치기기를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셨다고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의 집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는 것이 힘드셨겠구나 싶었습니다.
한 어르신 아드님께서는 공병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러고는 회관에 필요한 것과 어머님 필요하신것 함께 사십니다.
아드님께서는 원래 다른곳 살다가 이제 묘량으로 내려와서 어머님하고 같이 사신다고 하며 집을 짓고 계셨습니다. 그러곤 들었던 또 다른 사실,
마을 논에는 홀로 산책을 하는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해당 청년이 원래 의경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경 때 내부 폭력으로 인해 머리를 다쳐서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 무슨 사연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 청년을 다시금 보게 됩니다.
10시 50분,
오늘은 여러 이야기를 많이 듣고 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어르신꼐서 집 앞에서 오래 기다리셨네요.
어르신께서는 별 말씀안하시고 막걸리와 다른 것들을 함께 사십니다.
"막걸리에 식초 넣어서 약으로 쓰면 고추 약에 아주 좋아." 하시는 어르신.
어르신들의 친환경 농법(?)들을 보면 참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11시 10분,
어르신댁에 가니 어르신께선 지난번 외상값을 모두 내시려고 하셨습니다.
"지난번 공병 51개랑해서 같이 계산 해봐~" 하시는 어르신.
그러곤 "이것좀 확인해봐봐 또 뭐가 날라왔는지." 하십니다.
어르신과 아드님 건강검진 받으라는 안내 통보서. 종이가 날라와도 알 수가 없고 읽을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입니다.
기존에 요양보호사를 계속 함께 하면 좋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도 불편하시다고 하니, 어르신의 삶이다 싶습니다.
11시 15분,
어르신이 늘 회관에 계셔서 오늘도 회관에 있으신가 싶었는데, 오늘은 집에 계셨습니다.
집 마당 옆에 상추가 엄청나게 있는 상태. 어르신께서는 뜯어가라며 이야기 해주십니다. 함께 동행한 혜린 학생과 함께 저녁에 먹을만큼 조금만 뜯습니다. 어르신께선 밑 뿌리 정리해야한다며 다듬어주십니다.
"이렇게 많이 나면 뭐한당가, 먹을 사람도 없고 캘 사람도 없는걸"
그래서 이렇게 잘 받아오면 어르신들께서는 되려 더 좋아하시곤 합니다.
11시 20분,
나무 아래서 두 어르신이 함께 앉아계십니다. 점빵차에 필요한 것이 있으셨나봅니다.
"어르신 지난번 계란 괜찮았어요? 밖에 좀 오래두어서 걱정이 되었어요~" 하니,
괜찮다고 하시는 어르신, 그러곤 맥주 한 박스만 내려놔줘~ 하십니다.
또 옆에 계신 어르신은,
"내가 여기 물건만 가는 거 알지? " 하시며 "화장지 좋은놈으로 한 통 주게나~" 하십니다.
점빵차가 올 떄 까지 나무그늘 아래에서 기다리시며 있으셨던 어르신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을지,
함께 기다릴 수 있는 이웃이 있음은 어르신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1시 50분,
지난번 어르신께 커피 값을 추가로 받았던 것을 환불해드리려고했습니다. 작은 사이즈값을 받아야하는데, 큰 사이즈로 잘 못받았었습니다.
어르신께 말씀드리니,
"돈은 무슨~ 물건으로 받아야지~ 물건 잘 갖고 와~~" 하십니다.
실수도 받아주시고 물건을 되려 더 사주시는 어르신, 감사합니다.
12시 10분,
농번기 덕분에 오가며 보는 풍경이 예술입니다. 어르신의 삶은 농촌을 갖꾸는 예술가이다 싶습니다.
길가 매주마다 하나씩 갖다 놓는 막걸리 집에 가니 어르신들 모여계십니다. 어르신들께서 식사 겸 안주겸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밥 먹고 가라는 것 시간이 늦어서 어렵다고 하니, 급하게 쌈 하나 싸주십니다. 근데... 얼마나 짜고 매웠는지... 물을 연신 찾으니 어르신들이 재밌다고 웃으십니다.
그래도 맛있게 쌈 하나 잘 먹고 인사 잘 드리고 왔습니다.
13시 40분,
학생하고 함께 회관에 방문하니 어르신들께서
"이제 좀 대장 답네~" 하십니다.
어르신들 줄지어서 주문하기 시작하십니다.
"콩나물~"
"나도 하나 주쇼~"
"나도~"
가끔씩 어르신들은 주문하실 때 주문의 소리가 옮겨 붙습니다. 함께 온 학생은 발에 불이나게 뛰어다닙니다.
덕분에 회관에서 많이 팔았습니다. 어르신들도 많이 갈아주셔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지난번 완두콩 주신 대의원님,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씀드리니
"나는 내 먹을거 빼고 다 남줬어~ 또 두집 더 줘야해~" 하시며 웃으십니다.
주변으로 다 나누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14시 40분,
오늘은 아드님께서 천천히 나오십니다. 어르신 집에 계시는지 여쭤보니,
"오늘은 살게 없으니 안나왔겠지~ 함 가봐~" 하십니다.
어르신 집에 가니 어르신께서도 집에 계셨습니다. 근 2주를 못봬서 얼굴봬러 왔다하니 고맙다고 하십니다.
어르신 안부 확인하고 다시 나섭니다. 커피는 다음번에 마시는 것으로 합니다.
15시 10분,
회관에 누워계시는 어르신, 일이 많으셨나봅니다. 평소 같으면 일어나서 장나치고 계실텐데, 많이 힘드셨나봅니다.
인사만 드리고 조용히 나옵니다.
15시 30분,
어르신댁가니, 머윗대 다듬고 계십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지으신 농사. 저를 보시더니 어르신께선 완두콩을 담기 시작하십니다.
"지난번에 포대 날라준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옷도 깔끔하게 입었었는데, 내가 정말 미안해서 말이지. 이거 남도 안주는데 자네만 줄테니 갖고가서 먹게나~" 하십니다.
"올해는 콩이 참 션찮아서 남주기도 부끄러워. 근데 이건 내가 직접 골라놨으니, 밥에 먹어~" 하십니다.
지난번 도와드렸던 것이 별일은 아니었지만, 어르신께 마음의 짐이었나봅니다.
어르신께서 주신 완두콩 잘 받아서, 식구들하고 저녁에 함께 잘 나눠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16시 10분,
마을 나오길, 곳곳에 보리수가 익어갑니다. 오디도 익어갑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집니다. 빨갛게 익은 보리수 몇개 따먹고, 보라빛으로 물든 오디도 몇개 따먹습니다. 돌아오는길 피곤함 조금 달래봅니다.
오늘도 어르신들 덕분에 5월의 마지막 이동장터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