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북 예천공항은 2002년 12월 386억원의 예산을 들여 신청사를 준공했다. 당시 중앙고속도로 개통(2001년)으로 승객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아랑곳 않고 추진을 계속했다. 덕분에 여객 수송 처리 능력은 연간 3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늘어났지만, 승객은 1998년 21만7000명에서 2002년엔 3만1800명으로 급전직하했다. 결국 정부는 2004년 공항을 폐쇄했고, 신청사 건물은 비워진 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 중 흑자를 낸 곳은 김포·김해·제주공항 3곳에 불과했다. 2007년에는 그나마 흑자를 낸 공항이 김포·김해·제주공항과 대구·광주공항 등 5곳이었는데 지난해 대구·광주공항도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가장 문제가 많은 양양·울진·무안·김제·예천공항 등 이른바 '5대 문제 공항'을 만드는 데만 국민 세금 8597억원이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지방공항 문제가 전형적인 예산 낭비 사례이자 국가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고속도로 증설과 고속철 개통으로 항공 수요가 줄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수요 예측 등 경제성에 근거하지 않고 선심성 정치 논리에 따라 지방공항을 마구 지었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최인욱 예산감시국장은 "경제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 논리로 지은 공항이 많다"며 "정치인들이 지역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장밋빛 희망으로 지방공항을 짓는 도박을 했다"고 말했다.
항공대 허희영 항공경영대학장은 "정치인이나 각 지자체에서 지방공항을 하나의 '지역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경쟁적으로 추진해 왔다"며 "적자가 나더라도 공항공사가 보전을 해주니 지자체에서는 별 부담이 없었다는 맹점이 있었으며, 공항공사도 주인 없는 공기업이라 적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AFP 통신이 발표한 ‘2007년 황당뉴스’ 가운데 한국 지방공항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한국에는 1억4000만 달러(약 1300억원)를 들여 지었는데 항공사들이 취항을 원하지 않는 지방공항이 있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된 ‘황당 공항’은 아직 개항조차 하지 않은 경북 울진공항이다. 원래 2003년에 문을 열 계획이었지만 AFP 보도대로 항공사들이 취항을 꺼리는 바람에 여태 개항이 미뤄져 왔다. 울진공항을 이용할 승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AFP에서 언급한 울진공항뿐 아니라, 우리나라엔 항공사들이 취항을 꺼리는 지방공항이 많다는 것이다. 대구공항은 지난 11월부로 김포-대구 노선이 폐쇄돼 점점 이용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도 양양공항의 경우, 휴가철인 지난 7월 하루 평균 이용객이 66명에 그쳤다. 상주 직원 수(82명)에도 못 미쳤다. 지난달 개항한 무안국제공항도 1일 평균 운항 대수가 국내선, 국제선 각각 1편 수준이다. 이 공항은 ‘서남권 거점공항’으로 불리는데, 이름과 걸맞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지방공항이 세계적인 놀림감이 된 이유는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정치논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역시 승객이 적어 2004년 폐쇄된 예천공항의 경우, 별칭이 5공화국 당시 이 지역 출신 실세의 이름을 따 ‘유학성 공항’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여기에다 KTX 개통이나 고속도로 신설로 비행기를 안 타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서 공항은 더욱 ‘찬밥’이 되고 있다.
시장원리로 풀어야 할 문제에 정치논리가 개입된 예는 비단 공항뿐이 아니다. 2017년 개통될 호남고속철도는 정치권의 입김으로 역이 4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 덕분에 속력이 떨어져 ‘저속철’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기업·혁신도시도 경제성 면에서 의문이 일고 있다. 이런 사업들이 나중에 외신에 황당뉴스로 또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용역기관이든 공무원이든 책임을 물어 예산 손실의 일부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정책 실명제'를 명확히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엉터리 연구용역을 수행한 기관에는 다시는 공공 프로젝트 수주를 맡기지 않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9/200902090005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