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홀(Annie Hall)
최용현(수필가)
‘애니 홀(Annie Hall, 1977년)’은 우디 앨런이 각본을 쓰고 주연과 감독까지 맡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4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북미에서만 3,6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그의 대표작이면서 최고작이다.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다이앤 키튼)을 받았다. 그러나 우디 앨런은 고소공포증을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했는데, 아카데미 시상식의 권위주의가 싫어서 불참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100대 영화에서 1998년은 31위, 2007년은 35위를 차지했다. BBC 선정 100대 미국영화에도 뽑혔다.
‘애니 홀’은 작가 겸 감독인 우디 앨런의 독특한 스타일이 완성되는 전환점 같은 영화이다. 그의 이전 영화들이 시각적인 개그를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특유의 언어유희에 더해 내면 심리를 밀도 있게 탐구하면서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농담과 지적이고 재치 있는 대사, 유쾌한 풍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동부와 서부,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생활과 문화의 차이도 보여준다.
뉴욕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희극작가인 앨비 싱어(우디 앨런 扮)와 자유분방한 성격의 가수 지망생 애니 홀(다이앤 키튼 扮)은 연인관계였다가 1년 전에 헤어진 후, 앨비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염세적인 성향이 강했던 앨비는 성장해서도 여전히 죽음과 연애에 관심이 많다. 두 번의 결혼 실패를 거치고 15년째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앨비는 친구와 함께 테니스장에 갔다가 파트너로 온 키가 크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미모의 아가씨 애니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처음 만난 날 애니의 집 발코니에서 와인을 마시고, 가수 오디션을 보던 클럽에서 첫 데이트를 하고 함께 밤을 보낸다. 앨비가 허드슨 강변을 산책하다가 애니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 앨비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는 애니에게 꿈을 이루도록 북돋워 주고, 필요한 공부도 하라고 권유한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아서 바로 동거에 들어가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취향과 사고방식 차이로 자주 다투게 되고 성관계도 시들해진다. 앨비는 자신만만하고 세속적이며 약간 다혈질인 반면 애니는 자유롭고 끈질기면서도 주의가 좀 산만한 편이다. 애니는 자신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앨비가 못마땅하다.
어느 날,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애니가 좀 늦게 오자, 앨비는 파나마 운하에서 오느냐고 묻는다. 애니가 지금 기분이 엉망이라고 하니 앨비는 또 생리 중이냐고 묻는다. 극장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점원이 영화를 시작한 지 2분이 지났단다. 그러자 앨비는 중간부터 보는 거 싫다며 안 들어가겠단다. 결국 전에 본 4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또 본다.
앨비와 애니는 서로의 단점을 보게 되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한 애니는 앨비에게 지쳐서 결별을 선언한다. 그러더니 얼마 후, 새벽 3시에 애니로부터 전화가 온다. 욕실에 커다란 거미가 있다며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앨비는 한달음에 달려가 거미를 때려잡는다. 애니는 거미가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앨비가 그리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재결합한다.
어느 날, 기획사에서 앨범을 내자는 제안이 오자, 애니는 가수의 길을 가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이후 두 사람은 LA에서 함께 머무는데, 앨비는 계속 뉴욕을 그리워하고 LA 생활에 만족하는 애니는 뉴욕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한다. 결국 두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헤어지기로 합의한다. 뉴욕으로 돌아온 앨비는 결별을 후회하고 LA로 날아가 애니에게 청혼하지만 애니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면서 거절한다.
앨비는 첫 희곡을 완성한다. 자신과 애니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질 때까지의 이야기인데,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바꾼다. 세월이 흐르고, 앨비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애니와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면서 지나간 옛일을 추억하고 우정을 이어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애니 홀’의 가장 큰 특징은 내면에 있는 생각을 화면에 드러낸 ‘내면의 외면화’이다. 앨비와 애니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자막으로 보여주고, 애니의 영혼이 침대를 빠져나와 앨비와 말다툼을 벌이며, 앨비가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면서 조언을 듣고, 앨비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행위 등이 그런 장면들이다.
앨비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보자. 영화 초반부에 극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앨비는 바로 등 뒤에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와 저명한 언론학자 마샬 맥루한의 저서에 대해 멋대로 떠들어대는 남자 때문에 짜증이 난다.
앨비는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여러분 같으면 저런 역겨운 친구와 상종하게 됐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관객에게 묻고, 구석에서 마셜 맥루한을 데리고 나와서(?!) 그 남자에게 ‘당신은 내 작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요.’하고 말하게 하여 망신을 준다. 우디 앨런식 유머는 이렇게 리얼리티를 깨트리며 상상을 현실화시키기도 한다.
애니가 입고 나온 독특한 조합의 여러 가지 옷들은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다이앤 키튼은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녀는 1970년대 우디 앨런의 뮤즈이자 연인이었으나, 이 영화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은 다이앤 키튼이 타계할(2025.10.11) 때까지 이어졌다.
이 영화에는 ‘에이리언’(1979년)의 여전사 시고니 위버가 행인으로 6초 정도 등장하는데, 출연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영화 데뷔작을 이런 명작영화로 했기 때문에 전혀 아쉽지 않다.’고 말했다.
첫댓글 영화 감상하기에 좋은 평론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