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중첩(波瀾重疊))-2
이막수와 유미림에 태원(太原)에 도착했다. 이막수는 배화교가 머물렸던 장소에 도착하자 타고 남은 장작을 만져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나절 정도 지난 것 같군. 발자국은 살펴봤어.”
“혼주와 양천사이 길로 가고 있어요.”
“그럼 영창평원으로 가고 있단 말이야.”
“그길로 가면 영창평원 밖에 없죠.”
이막수도 그 길을 알고 있다. 영창평원의 혈투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그 길을 잊겠는가? 영창평원을 지나면 무림맹까지는 반나절이다. 이로써 배화교의 목적은 확실해졌다. 놈들은 무림맹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미림. 급하다. 미림은 대륙상회를 통해 이 사실을 군산에 알려줘~ 나는 영창평원으로 달려갈게.”
“위험해요. 같이 가요.”
“걱정하지 마. 그냥 감시만하는 건데 뭘. 절대 위험한 짓은 하지 않을게.”
“정말이죠. 그럼 약속해요. 자요.”
유미림이 손가락을 내밀자 이막수는 손가락을 걸어주고 포근하게 안아준다.
“영창평원에서 기다릴게. 예전에 일사(一死)님이 계시던 언덕 알지. 그곳으로 와.”
“알았어요.”
이막수는 영창평원으로 달려갔다. 유미림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대륙상회를 찾아갔다. 2년 전, 무림맹과 십이사(十二死)간 혈투가 벌어졌던 영창평원에 또다시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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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과 지향은 광동성 뢰주(雷州)로 가는 마차에서 대륙상회 연락망을 통해 해남검파가 쑥대밭이 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서찰을 받았다.
“이런 빌어먹을 나는 어찌 되는 일이 없냐?”
“무슨 말이야?”
“어떻게 한번 공 좀 세워볼까 했더니 이미 끝났다고 하잖아?”
“당신 바보지.”
“뭐야?”
“흑독애가 하늘로 솟았겠어. 땅으로 꺼졌겠어. 놈들이 해남검문 무사들을 끌고 갔다고 하잖아. 그럼 어디로 갔을 것 같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목 위에 달린 건 장식품이니. 생각 좀 하란 말이야.”
“이런 쌍~ 남편한데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참내. 기가 막혀. 누가 누구 서방인데?”
“이걸 그냥 확 넘어트려버려.”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해”
“하여튼 내 팔자도 더럽다니까? 어떻게 하고많은 여자들 중에 이런.........”
“뭐야. 말 다했어.”
곽지향이 버럭 소리치자 악무룡은 얼른 자리를 피한다. 지향의 성격상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앉아요. 장난은 그만하고 들어보세요. 흑독애가 왜 굳이 무림에 영향력도 미미한 해남검문를 공격했을 까요? 배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해남검문에는 대형선박과 그 배들을 운용할 풍부한 인력이 있죠.”
“음~ 대충은 알겠는데, 흑독애가 해남검문을 무슨 재주로 장악했을까? 독(毒)으로 협박한 걸까?”
“놈들에게는 독(毒)보다 무서운 고독(蠱毒)이라는 것이 있어요.”
“고독? 한번 중독되면 시술자의 꼭두각시가 된다는 그 독충(毒蟲)!”
“바로 그거죠.”
“심각하군.”
“아직 낙담할 단계는 아니죠. 서찰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해방에서 해남군도를 수색하고 있다고 했어요.”
“해남군도? 거긴 왜?”
“흑독애가 배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보급로의 확보 때문이었어요. 전투가 장기화 될수록 보급이 승패(勝敗)를 좌우해요. 특히나 배화교나 흑독애 입장에서는 불안한 육로보다는 확실한 해상보급로의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죠. 하지만 중원의 수로(水路)는 장강수로십팔채가 장악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대안으로 해남검문과 해남군도가 장악하고 있는 바닷길이 필요했던 거죠.”
“그만.........해골 복잡하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해남검문을 장악한 흑독애가 해남군도을 노리고 있을 거란 말이죠.”
“왜?”
“해남검문의 배만으로 해상보급로의 확보는 불가능해요. 해남군도의 배까지 합쳐야 장강수로십팔채와 대적할 수 있죠.”
“뭐야. 그럼 놈들이 장강수로십팔채와 한판 붙자는 거야.”
“그건 아직 모르죠.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해요.”
“음~ 아직 해남군도까지 장악하지는 못했단 말이지. 그럼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는 말이잖아.”
“그래요. 우리도 빨리 서둘러요.”
악무룡과 곽지향은 광동성 뢰주(雷州)에 도착해서 타고 갈만한 배를 찾기 위해 나루터로 달려갔다. 하지만 험한 파도를 헤치고 바다로 나갈 배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대륙상회에 연락해 보죠. 그들이라면 혹시 배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지향과 무룡은 곧바로 뢰주에 있는 대륙상회 회원 업소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두 분이 이곳으로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환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서 해남검문에 관한 서찰을 받았어요. 또 다른 소식은 없었나요.”
“사해맹룡의 선단(船團)이 우림도로 가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우림도?”
“해남군도에 있는 섬 중 하나죠.”
“그래요. 혹시 우리가 타고 갈만한 배를 구할 수 있을까요?”
“내일 아침에 사해방 배 한척이 이곳으로 올 겁니다. 저희들이 두 분 소식을 사해방에 전했더니 사해맹룡이 두 분이 타고 오실 수 있도록 배를 보내준다고 했거든요!”
“잘 됐네요. 감사합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일 아침이라고 하셨죠. 그럼 시간이 좀 있군요.”
“저희들이 숙소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폐까지 끼칠 수야 없죠.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림산에서 두 분을 태상장로님처럼 모시라고 했습니다. 자자~ 따라오시죠.”
무룡과 지향은 나루터가 한눈에 보이는 객점에 짐을 풀었다. 대륙상회 회원이 두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향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먼저 목욕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보니 배가 고프다. 지향은 무룡의 방문을 두드렸다.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안을 살펴보니 무룡이 보이지 않는다.
“어딜 간 거야. 혹시 또?”
지향이 급하게 일층으로 내려와 보니 무룡이 한 여인과 창가에 앉아서 열심히 떠들고 있다.
“하여튼 저인간은 잠깐만 한눈을 팔면 저 모양이라니까?”
지향은 성큼성큼 다가가 무룡의 앞에 멈추었다.
“어~ 왔어. 앉아.”
무룡이 얼른 자리를 비켜준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다. 지향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하나보자는 심정으로 말없이 무룡의 옆에 앉았다.
“인사하세요. 제가 말씀드린 지향입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상대가 웃으며 인사하니 지향도 여자의 위아래를 살펴보며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무룡에게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지금 보니 여인은 상당한 미인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한 자루 검(劍)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있는데, 고고한 학처럼 기품(氣品)이 넘치면서도 잘 갈린 칼처럼 날카로운 예기(銳氣)가 느껴진다.
“여기 소저도 배를 찾고 있었데. 그래서 내일 같이 가자고 했어.”
“뭐예요? 우리가 눌려가는 줄 아세요?”
지향이 소리를 지르자 무룡이 얼른 손으로 머리를 가린다.
“무룡님 나무라지 마세요. 무룡님이 거절하시는 걸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지향은 복잡한 눈으로 여인과 무룡을 바라본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던 것일까? 또한 이 여인의 정체는 뭘까? 무룡이 아무리 단순하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과 동행하자고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향의 눈치를 보던 무룡이 슬며시 팔을 내리고 목에 힘을 준다.
“야야~ 곽지향. 그놈의 성질머리 좀 고치지 못해.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아무 때나 소리나 지르고 말이야. 여기 점소이.......”
무룡의 부름에 점소이가 재빨리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여기 주문한 음식하고, 술 가져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물려가고 곧바로 갖가지 음식들과 술을 가져온다. 악무룡이 미리 주문해 놓았던 모양이다.
“자. 지향도 한잔 해.”
무룡이 권하지만 지향은 팔짱만 끼고 있다.
“싫으면 할 수 없지. 한잔 드릴까요?”
“저는 술을 못해요. 대신 제가 따라드리죠.”
여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술병을 받아 무룡에게 술을 따라준다.
“지향님도 한잔 받으세요.”
“사양하겠어요.”
“음~ 제가 불편하신 모양이죠.”
“당연하죠.”
“야!~ 곽지향. 이분은........”
“잠시만. 제가 소개 할게요. 남해 보타암 이희린이라고 해요. 최근 강호로 나와 해남검문을 방문하려고 이곳으로 왔어요.”
“남해.......보타암! 그럼 당신이 혹시 검후(劍后)”
“검(劍)을 다를 줄 알긴 하지만 검후(劍后)라니 당치 알아요.”
상대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검후(劍后)일 줄은 몰랐다. 검후(劍后)가 누군가? 백도 무림의 절대기제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던 인물이 아닌가? 그런데 그 소문만 무성했던 검후(劍后)가 바로 눈앞에 있다.
“두 분이 십이사(十二死)라고 들었어요.”
“그래요. 그럼 더욱 더 이 자리에 앉아있기 거북하군요.”
“왜요? 제가 백도 무림인이라서요? 그런데 누가 저를 백도라고 했죠. 우리 보타암은 백도도 아니고 흑도도 아니에요. 그리고 백도 무림인들이 십이사(十二死)님들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고 있는지 듣기는 했지만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저는 무도(無道)를 수련하는 검사(劍士)일 뿐이에요.”
지향은 스스로 잔을 채워 마신다. 답답했던 모양이다.
“당신을 어떻게 믿죠!”
“제가 두 분을 속여서 뭐해요. 믿기 싫으시면 안 믿으셔도 돼요.”
한 점의 거리낌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힌다. 지향은 머리가 복잡했다. 상대는 검후(劍后)라고 불리는 백도의 절대기제다. 지금까지 백도의 절대기제라는 놈들을 만나보았지만 하나같이 편협(偏狹)하고 자만심만 가득한 한심한 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마치 득도한 고승처럼 차분하고, 당당한 기세(氣勢)가 하늘을 찌른다.
“왜 저희들과 동행하시겠다는 거죠?”
“해남검문은 환검(幻劍)의 절대강자에요. 보타암의 제자는 환검(幻劍)을 비롯한 12검류(檢流)의 절대강자들과 대결해야하는 숙명(宿命)을 가지고 있죠.”
“12검류?”
“그런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 숙명 때문에 같이 가기를 청한 겁니다.”
“숙명(宿命)이라? 한 가지만 여쭈어보죠. 무림의 정의 따위는 당신께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건가요?”
“글쎄요. 저도 무림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이니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그건 차후의 문제일 뿐입니다.”
희린의 눈빛에 한 점의 흔들림도 없다.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향이 젓가락을 들었다.
“제가 좀 예민했군요. 드시죠.”
지향이 음식을 먹자 악무룡은 한숨을 쉬고 술을 마신다. 정말 살얼음판을 걷듯이 불안했다. 천하의 악무룡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무룡은 찹찹한 심정에 목구멍에 술을 떨어 넣었다. 다음날 아침 나루터에 사해방의 배가 도착했다. 무룡과 곽지향이 이희린과 함께 배에 올랐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저희들과 동행하는 분입니다.”
“아예~ 알겠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무룡일행이 탄 배가 속도를 높여 우림도로 행해 출발했다. 백도무림의 절대기제라고 알려진 검후(劍后)가 드디어 강호에 그 모습을 드려내고 무룡일행과 함께 해남검문을 찾아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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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린강 일행이 영창평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영창평원에서 무림맹까지는 빠르게 이동하면 반나절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호리병 모양의 영창평원 입구에 도착하자 날이 어두워졌다. 혁린강은 진군(進軍)을 멈추고 야영(野營)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거대한 군막에 혁린강을 비롯한 마왕(魔王)들이 집합했다.
“모두 앉으세요.”
마왕(魔王)들이 자리에 앉자 혁린강이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드시면서 들으세요. 우린 지금 영창평원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영창평원을 지나 반나절 정도면 무림맹에 도착할 겁니다. 사마(四魔)님께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바로 무림맹입니다.”
“공자님. 여기서 멈춘 여유가 뭡니까? 그냥 이대로 무림맹까지 진격(進擊)해도 되지 않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이곳 영창평원은 특이한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긴 쉬워도 빠져나오긴 힘든 호리병 구조를 가지고 있죠. 예전에 무림맹이 십이사(十二死)에게 전멸(全滅)에 가까운 피해 입은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무림맹 놈들이 영창평원에 매복(埋伏)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죠.”
“무림맹에 생각이 있는 놈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죠. 그래서 밤에 무턱다고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니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두 번째.........여러분께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뵙자고 한 겁니다.”
“그게 뭡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혼란(昏亂)과 공포(恐怖)에 치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공포와 회유(懷柔)로 작전을 변경합니다.”
“공포와 회유? 그건 또 뭡니까?”
“반항하는 자에게는 칼을 따른 자에게는 상을 주는 겁니다.”
“............”
“중원은 넓습니다. 인간들도 많죠. 우리가 그놈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습니다. 대신 놈들 중에 세상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은 놈들과 사리사욕(私利私慾)에 급급한 놈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놈들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반하는 놈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 벌레 같은 놈들을 뭘 볼게 있습니까? 그런 놈들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바로 칼을 들이밀 놈들입니다.”
“그래서 공포와 회유(懷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감히 우리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보여 주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보여주었는데도 끝까지 반항 놈들이라면 이미 우리 편이 되긴 힘든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에게는 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 편이 되겠죠. 물론 그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 편이 됐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놈들이 감히 반역하지 못하게 공포(恐怖)를 심어주면 됩니다.”
“음~~ 대충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하자는 말씀입니까?”
“무림맹을 본교의 지부로 삼을 생각입니다. 또한 이미 점령한 감숙, 사천, 운남성에 지부를 세우고 방금 말한 놈들을 포섭(包攝)할 생각입니다.”
“시간 낭비입니다? 그냥 무림맹 정리하고 소림, 무림, 화선 놈들 쓸어버리면 끝 아닙니까?”
일마(一魔)가 툴툴거리면 말하자 다른 마왕(魔王)들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모두들 일마(一魔)의 말에 동조(同調)하는 모양이다.
“제가 중원 무림이 백도만의 세상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소림, 무당, 화산 등등 백도 놈들만 쓸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놈들은 없나요. 황하 이남에는 중원 흑도 놈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요. 더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십이사(十二死) 놈들이 중원의 힘을 결집(結集)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50년 전에 우리가 패한 것은 개개인의 역량(力量)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중원 놈들 때문이라고. 또 똑같은 같은 길을 걷고 싶으세요.”
주위가 사늘해 진다.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는 혁린강이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처음보기 때문이다.
“우린 복수나 하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점령(占領)하기 위해 왔습니다. 놈들의 씨를 말리면 좋겠죠. 다 죽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죠. 그런데 놈들이 목을 늘어트리고 죽어달라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반항하겠죠. 같이 죽자고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겠죠. 놈에게 우리 형제들도 죽겠죠. 벌레 같은 놈들은 죽어도, 죽어도 끝이 없이 몰려오겠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점점 우리 힘이 약화되겠죠. 그 다음에 패하겠죠. 이런 줄거리를 원하세요.”
“.............”
“그건 아닙니다. 우리는 힘은 최대한 아끼고 놈끼리 미쳐 날뛰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반항하는 놈들만 우리 손으로 정리하면 되는 겁니다.”
마왕(魔王)들이 젓가락을 놓고 고개를 숙인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벌레를 이용해 벌레를 잡는다. 좋은 작전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요.”
벽안환요가 답답했는지 정적을 깨며 말한다.
“흑도 놈들도 있고, 군소방파 놈들도 많으니 쉽게 끝나지는 않겠죠.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 시간이 단축될 겁니다.”
“알았어요.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죠?”
“첫 번째는 피해를 최소로 하고 무림맹를 점령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평불만이 가득한 놈들이나 기회주의자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그 다음에 그놈들을 이용해 반항하는 조무래기들을 정리하고 우리는 진정한 적(敵)을 쓸어버려야죠.”
“알겠습니다. 오라버니들............하실 말씀 있어요.”
환요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혁린강의 논리(論理)에 반박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이해한 것으로 알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무림맹과의 전투에서 항복하는 놈들을 죽이지 마세요. 또한 무사들의 식솔들도 가급적이면 죽이지 마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림맹을 접수하는 것이지 초토화시키지 말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식솔들도 나중에 쓸모가 있겠죠.”
“구체적인 작전은 내일 영창평원을 정찰(偵察)한 이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마왕(魔王)들은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혁린강은 비련(悲戀)과 애련(愛戀)을 대동하고 군막들을 돌아본다. 무림맹과의 전투에서 또 얼마나 많은 무사들이 죽어나갈까? 혁린강이 무거운 마음에 영창평원 입구에 있는 절벽으로 올라갔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아직 겨울이라 동장군(冬將軍)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언제 따라 왔는지 모르겠지만 벽안환요가 옆에 사뿐하게 내려선다. 환요의 금발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비련(悲戀)과 애련(愛戀)도 요물(妖物)이지만 환요 또한 만만치 않다.
“주무시지 않고 따라오셨습니까?”
“이곳이 적진(敵陣)이나 마찬가지에요. 공자님께서 홀로 가시니 걱정되어 따라왔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또 전투가 벌어지겠죠.”
환요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영창평원을 바라본다.
“이번 전투는 쉽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않아요. 공자님께서 생각하신 작전이 있겠죠.”
“후후후~ 글쎄요. 날씨가 차내요. 그만 내려가시죠.”
혁린강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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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의 대회의실에 맹주를 비롯한 마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배화교의 움직임을 정찰(偵察)하고 조금 전에 도착한 감찰당주가 지도를 보며 보고를 하고 있다.
“놈들의 숫자는 대략 5,0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 이곳 영창평원 입구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놈들이 영창평원에.........그럼 놈들의 목적이 우리 무림맹이라는 말이군요.”
“이럴 빌어먹을..........맹주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요. 싸워야죠. 명색이 무림맹인데 도망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런데 놈들이 5,000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오당, 오향의 무사들을 모두 합쳐야 얼마나 되죠? 잘해야 7,000명 정도지 않습니까?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무림맹의 구성을 보면 오당과 오향이 있으며, 오당은 구파일방의 무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오향은 칠대세가 무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각 당과 향은 각각 500명으로 구성되니 일만의 무사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배화교의 침입에 대비하여 본진을 수비한다는 명분(名分)으로 일부 구파일방과 칠대세가에서 파견한 무사들을 불려들어 현재는 7,000명 정도만 남은 것이다. 사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십이사(十二死)를 잡겠다고 미리 무림군을 조직해 두었기에 이 정도라도 남은 것이지 무림군까지 없었다면 5천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7천이면 놈들보다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리적 이점까지 있는데 설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작전도 없이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작전이라.........좋은 작전 없나요.”
맹주의 물음도 아무도 답을 못한다. 40년 동안 싸움다운 싸움 한번 못해본 놈들이 대부분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맹주는 한심하다는 눈을 주위를 둘려보다가 한숨을 쉰다.
“휴~ 이럴 때, 제갈세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건데!”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쳐서야 사람소중한지 아는 법이다. 제갈세가는 백도의 꾀주머니라고 불리는 가문이다. 그런데 제갈세가주의 딸이 무림공적인 십이사(十二死)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무림맹에서 추출(抽出)해 버렸다.
“지금 와서 그런 말씀해서 뭐합니까? 죽은 아들 고추만지기지.”
“저기 2년 전에 십이사(十二死)놈들이 무림맹에 쳐들어 적이 있었어요. 당시 무림맹에서는 영창평원에 오당과 오향 무사들을 동원해서 놈들을 막고자 했는데, 놈들의 기막힌 작전에 말려서 3천 이상의 무사들이 생매장을 당하고, 무림맹까지 쑥대밭이 된 사건이 있었죠.”
“저도 당시 이야기를 들었어요. 놈들이 영창평원 입구의 양쪽 절벽을 무너트렸다죠.”
“또 있어요. 당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절벽을 무너트리는 작전은 무림맹이 먼저 사용했어요. 놈들이 출구에 있는 협곡(峽谷)에 들어서자 화살과 바위들을 굴려 놈들을 혼란(混亂)시키고 바로 절벽을 무너트렸다고 했어요. 다만 놈들이 그 와중에도 살아남아서 똑같은 작전에 당해서 문제였지만...........”
“우리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겠네요. 사실 영창평원이 뚫리면 이곳 무림맹까지는 반나절 거리 아닙니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던 맹주가 창밖으로 바라본다. 눈발이 거센 것으로 보아 쉽게 그칠 눈이 아니다. 배화교 놈들도 이런 날씨라면 쉽게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되죠?”
“축시(1~3시)가 조금 지났습니다.”
“바로 오당과 오향 무사들을 영창평원으로 파견하세요. 오당은 영창평원 출구에 있는 좌우 협곡(峽谷)에 독(毒)화살과 바위들을 준비하고 매복(埋伏)하세요. 다음으로 오향은 협곡(峽谷) 입구에 진영을 갖추고 놈들을 막으세요.”
“예전에 십이사(十二死)놈에게 사용했던 방법을 쓰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잠시만.........우리 오향만 죽으라는 말입니까? 이거 너무하잖아요.”
맹주의 지시에 오향에 속한 칠대세가 대표들이 즉각적으로 반발한다.
“지금 맹주의 지시에 항명(抗命)하겠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오당과 너무 비교되지 않습니까? 반반이라면 또 모르지만........?”
“작전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오향보고 배화교 놈들과 사생결단(死生決斷)을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향은 놈들과 싸우는 척만 하다가 놈들을 협곡(峽谷)으로 유인하면 됩니다. 그럼 오당이 배화교 놈들에게 화살과 돌을 쏟아 부으세요.”
“............”
“곧바로 오당의 절반이 놈들의 후방을 막고, 오향이 전방을 막아버리면 배화교 놈들을 협곡(峽谷)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음~~ 충분히 가망성 있는 이야기군요. 그럼데 무림군은 뭐합니까?”
“무림군은 만일을 위해서 무림맹을 수비해야죠.”
“치~ 한마디로 우리만 죽으라는 말이군.”
“뭐라고요.”
“아닙니다.”
“험험~ 구파일방과 칠대세가를 비롯한 무림 전역에 무림첩을 발송하세요. 3일 정도만 버티면 지원군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티세요.”
“저기 맹주께서는 영창평원에 안 가시는 겁니까?”
“저는 몇가지 더 챙기고 나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먼저 출발하세요.”
무림맹 무사들이 무기를 챙기는 사이에 수많은 전서구들이 중원각지로 날아올랐다. 배화교가 무림맹을 공격하니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5천의 무림맹 무사들이 영창평원을 향해 출발했다. 무림맹이 2년 전에 벌어졌던 십이사(十二死)와의 전투를 참고하여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看過)한 것이 부분이 있다. 2년 전, 전투에 대해서는 무림맹보다 오히려 배화교가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무림맹은 삼공자인 혁린영이 장악하고 있지 않았는가?
<<계속>>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