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사림파의 계보
조선 왕조의 사상사를, 즉 주자학(성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조선의 역사 공부가 된다. 주자학이 조선의 사상사를 지배했다. 주자학을 주도한 사림파의 인물을 공부하면 조선 왕조의 역사가 된다. 조선 시대의 유학자에는 경상도 출신자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이 이름들이 영남 사림파를 이끈 사람들이다. 이들이 영남 사림파의 계보를 만든 사람들이다.
우리는 교양으로 영남 사림파라고 불리는 유학자들을 공부해봅시다. 그들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조선의 사상사. 조선의 역사, 더 좁힌다면 당쟁사 등등을 알게 된다.
영남의 유학, 즉 사림파는 정몽주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 정몽주는 정당문학 김득배로 부터 가르침을 받은 점을 주의하길...) 고려 말에 이색 밑에서 함께 공부한(동문수학을 한. 이숭인도 이색의 제자이다.) 정몽주와 정도전이 갈리었다는 것은 앞에서 공부했다. 정몽주는 개성 선죽교에서 죽고, 길재는 고향인 선산으로 내려와서, 금오산 아래에 서당을 지어서 후학을 양성했다. 학문으로 따진다면 길재는 권근(정도전과 한 패이다.)에게도 배웠으므로, 학문으로 사림파를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길재에게 선산 사람인 김숙자가 배운다. 김숙자의 아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에게 배운다 감종직은 영남의 많은 유학자를 제자로 양성한다. 김종직의 제자가 중심이 되어서 영남 사림파라는 계보가 만들어졌다. 즉 길재 – 김숙자 – 김종직 – 김굉필 – 조광조로 이어진다.
사림파의 학문적 연원은 도학(道學)이다. 학문보다는 실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말하자면 주자학의 ‘의리 실천’을 지킨 고려의 절의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랐다. 그러므로 정몽주를 따른 유학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몽주 이전에 우탁이나, 이색이 있었다.( 난계 김득배에 대한 기술은 빠져있다.)
15-16세기가 되면 농업기술이 발전하였더, 영남 지방을 기반으로 하였던 소농-자영 농업을 기반으로 한 영남 유학자들이 성리학을 주도하였다. 성리학을 道學이라 부를 만큼 실천을 강조했다. 이런 연유로 고려말의 절의파(정몽주 계파)를 자신들의 뿌리로 삼았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조선 왕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도전 일파보다는 정몽주의 ‘의리파’가 더 절실했다.
조선 왕실은 태종 이방원의 쿠데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사육신, 단종의 죽음 등 소용돌이를 치루고 나서---,(모두가 왕권 강화를 위한 사건들이다.) 어느 정도 왕권이 안정되었다.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절의파의 이론이 필요하여 정몽주 계파의 유학자를 등용하였다.
성종 때가 되면 왕실의 권력이 안정되었다. 조정에서는 의리를 중시하는 사림파의 학자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김종직을 위시하여 영남 사림파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신흥 세력을 형성하였다.(신흥세력이 중앙으로 진출하지 훈구파들이 움직인 것이 사화로 나타난다) 이때 정계에 진출한 대표적 인물이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등이다. 김종직은 실천적 학문을 가르쳤고 ,孝弟忠信이 중심 사상이었다. 오륜적 질서를 확립하여 사회를 유교적 질서에 예속시키려 하였다. 이때 중앙 정계에 진출학 김종직의 제자에는 영남 출신들이 많았다. 김굉필, 정여창, 남효온, 조위, 김일손, 김소, 표연말, 유호인, 김백진, 박한주 등이다
김굉필이 벼슬살이를 한 아버지를 따라 한양에 머물면서 제자를 양성했다. 그 중에 조광조가 있었다. 이들이 기호 사람파의 인물이 되었다. 영남 사림파가 기호 사림파와 접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