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젊은 사람의 친절한 웃음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카트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누이가 싸 준 반찬이며, 식당에서 사 온 음식들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아파트 입구의 경사로를 끌어올라가는데, 팔에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졌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끌었을 카트가, 이제는 내 나이와 함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그때였다. 옆집 젊은 집주인이 스쳐 지나가다 나를 보더니, 곧장 발길을 멈추었다. “이런 건 젊은 사람이 들어야죠.” 하며 카트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얼떨결에 두 손을 놓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번진 환한 웃음이, 카트의 무게보다 먼저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사람이란 참 묘하다. 몇 해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의 이름조차 모른 채 지나는 일이 다반사다. 층계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만 하고, 문 앞에서 부딪혀도 “수고하세요” 한마디면 그만이다. 그런데 뜻밖의 한순간, 카트 하나 들어주며 건네는 웃음이, 이웃을 전혀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거창한 봉사나 헌신이 아니라 바로 이런 짧은 장면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지난번에도 그랬던것 같다. 자주 인사를 하곤 한다.
나는 문득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어른들에게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었을까.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일조차 자연스러웠는지, 아니면 작은 수고를 대수롭다 여기고 모른 척 지나쳤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젊음은 힘이 넘치지만, 그 힘을 누군가를 가볍게 해주는 데 쓰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오늘의 그 짧은 행동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마움의 기준이 달라진다. 젊을 땐 큰 선물이나 기회가 고마웠지만, 지금은 카트 하나 들어주는 손길, 계단 앞에서 문을 잡아주는 손길, 우편물을 층계 앞에 옮겨놓아주는 손길이 더 크게 다가온다. 세월이 무겁게 얹히는 만큼, 작은 친절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오늘 저녁은 누이의 정성과 이웃의 웃음이 겹쳐져 유난히 따뜻하다. 누이는 여전히 어릴 적처럼 나를 챙겨주고, 옆집 젊은이는 나를 낯선 이가 아닌 함께 사는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그 두 가지 마음이 겹쳐지자, 나는 세상이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을 새삼 얻는다.
어쩌면 삶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누이가 내 짐을 덜어주었듯, 젊은 이웃이 카트를 들어주었듯,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무거운 마음을 들어줄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작은 친절이 이어지고, 웃음이 전해지고, 세대와 세대가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누다 보면,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기일지 모른다.